사후세계는 어떻게 MZ 세대를 사로잡았나?

by 신진상
저승 최후의 날.jpg

흔히 MZ 세대를 가리켜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며 돈을 밝힌다고도 하죠. 그만큼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현실적이란 뜻일 겁니다. 그런데 대중문화로 보는 MZ세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기존 여느 세대보다 사후세계 귀신 영혼 빙의 저승사자 같은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황당무계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정준호 주연의 드라마 ‘지금부터 쇼타임’을 비롯해 JTBC 드라마 ‘쌍갑포차’, 비가 의사로 나온 드라마 ‘고스트 닥터’, MBC 드라마로 김희선이 주연한 '미래' 등 손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로 눈길을 돌리면 사후세계를 다룬 연상호 감독의 ‘지옥’이 떠오르죠. 1000만 관객을 1편과 2편 모두 동원한 영화 ‘신과 함께’도 이런 장르에 속하죠. 영화나 드라마는 MZ세대만의 전유물은 아니라서 MZ 세대가 사후세계나 영혼에 특별히 관심을 더 많이 갖고 있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MZ세대가 거의 수요층의 전부를 차지하는 웹 소설이나 웹 툰에서는 이런 장르의 인기가 훨씬 더 높습니다. 오죽하면 회빙환이라는 유행어까지 나왔겠습니까? 회귀, 빙의, 환생이 워낙 자주 등장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어쩌면 웹 툰과 웹 소설의 성공 방정식일 수도 있겠습니다.

지난해 SF어워드 웹 소설 부문 대상을 받았고, 카카오톡의 웹소설 플롯팸 카카오페이지의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웹 소설 ‘저승 최후의 날’의 인기 역시 MZ세대가 사후세계에 아주 관심이 많다는 증거겠죠. 공학박사 출신 SF작가인 시아란 박사가 쓴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는 1500 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책이지만 마치 무협지를 읽듯이 술술 넘어갑니다. SF 소설은 세계관과 캐릭터를 알면 절반은 이해가 되는데요, 세계관이 더 중요합니다. 저승 최후의 날은 지구 즉 이승이 블랙홀의 방사선의 영향으로 멸망하면서 너무 많은 인간들이 사후세계로 몰려들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죠. 저승은 죽은 자가 49일 동안 임시적으로 머물며 7번의 재판을 받아 환생과 축생 등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승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졌으니 환생이나 축생 등을 선택할 방법이 없는 저승도 결국 파멸하는 이야기입니다. 이승과 저승은 연결되어 있고 저승의 뿌리가 이승이라는 전제, 수많은 드라마와 웹 툰 웹 소설에서 설정한 상황과 유사합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드라마 웹 툰 웹 소설의 공통점은 사후세계는 생전에 인간이 가졌던 믿음이나 즐겨 본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현실과 거의 동일한 형태로 죽음 이후의 삶을 이어간다는 내용이죠. 즉 저승에서도 우리 사회와 비슷한 제도와 조직이 있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든지 배설하는 유기체의 활동만 없다 뿐이지 나머지는 똑같습니다. 심지어 문서 작업도 노트북으로 합니다. 그 노트북은 삼성전자가 만든 건지 LG 전자가 만든 건지, 아니면 저승에도 저승 나름의 대기업이 있는 건지는 설명이 안 됩니다.

캐릭터는 염라대왕을 비롯해 비서실장 등 천당과 지옥과 환생을 결정하는 저승의 시스템 속의 관리들이 나오며 한날한시에 죽은 다양한 직업의 한국인들이 등장합니다. 특별한 주인공 없이 등장인물이 모두가 주인공인 옴니버스 영화와도 같은 전개죠.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때로는 철학적이면서 실제 현실을 반영하는 그런 내용들이 많은데요, 저자는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은 사후세계의 묘사를 통해서 세 가지를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코로나 팬데믹 위기와 러시아의 일방적 침략으로 인한 전쟁과 물가 상승 및 이에 따른 주가와 비트코인의 폭락 등 지금 현 세상이 누가 보기에도 말세로 마치 모닥불을 향해 달려가는 부나방 같다는 어둠의 세계관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가장 최악의 공포는 죽는다는 두려움이죠. 이런 상황에서 모든 존재의 근원적 공포인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이 이어진다는 발상은 그 생각만으로도 공포를 이겨내 줄 힘을 제공해주기도 합니다. 종교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웹 툰 웹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이 대신해주고 있는 셈이죠.

또 한 가지 이유는 첫 번째 분석과는 결이 다른데요, 영끌 세대로 불리는 MZ세대가 기성세대에 대해 비판의식을 넘어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기성세대 때문에 이승에서 부자 되기는 어려우니 다음 생애를 꿈꾸자는 식의 자포자기에 빠져 있다는 우려죠. 사실 취업이나 재테크 등 MZ세대들 의욕은 넘쳐나지만 세상은 그 의욕에 조소를 보냅니다. 그들이 느끼는 불만과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되죠. 그게 문화소비로 증명이 되는 중입니다. 말도 안 되는 사후세계 드라마나 웹 소설을 소비하는 게 현실에서 뉴스를 보는 것보다 낫다는 거죠. 얼마나 세상이 끔찍한지 보여주는, 혐오스러운 뉴스로 가득 찬 현실 세상보다 인생을 리셋하고 부자로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주는 사후세계가 차라리 공정하다는 거죠.

세 번째 시사점은 두 번째에서 이어지는 건데요, 사후세계 역시 현실세계의 종말과 함께 멸망한다는 이야기는 현실세계의 유일한 질서, 자본주의의 빠져나올 수 없는 거미줄이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필연적 귀결을 보여주고 있다는 뜻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현실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너무나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부자는 갈수로 소수가 되어 갑니다. 가난한 사람이 건강이 안 좋아 상식적으로 저승에 먼저 갈 확률이 훨씬 높지요. 결국 이런 추세로 간다면 현실 세계는 늙은 소수의 부자만이 살아남아 망할 수밖에 없고, 저승은 죽어 오는 사람들은 넘쳐 나지만 살아서 환생하는 사람은 갈수로 줄어들게 되면서 갈 데 없는 영혼의 증가로 소설처럼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저승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정신적 공간일 터인데 물리적인 크기가 뭐가 중요할까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일단 이승과 현실의 쌍둥이 이론을 믿는다면 현실이 싫어서 사후세계로 도피했는데 이곳도 절망이 엄습하면 도대체 MZ세대는 어디로 도망가야 할까요?

이 번에는 이 사후세게흘 과학적으로 따져보겠습니다. 이 소설울 읽고 제가 좋아하는 신경정신과 의사이며 국내 최고의 뇌졸줄 전문가로서 재미와 고급 정보가 가득 담긴 책들을 쓴 김종성 울산대 의대 교수의 ‘뇌과학 여행, 브레인 인사이드’가 생각났습니다. 이 책에서 김 교수는 사후세계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합니다. 가능성 0이라는 거죠.

김종성 교수의 뇌과학여행 브레인인사이드.jpg

저자는 묻습니다.

인간이 그 모습 그대로 사후세계로 간다면, 1살이 되기 전에 죽은 아기는 그 모습 그 상태로 저승에 갈까요? 인격이 성숙되지 않은 상태에서 똥오줌도 못 가리는 아기를 저승에서는 누가 돌볼까요?

말기 암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간 환자라면 어떻겠습니까? 죽을 때 살아 있을 때의 기억과 느낌을 모두 가져간다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장시간 겪다가 죽은 이들이 사후세계에서 어떤 마인드로 살아갈지에 대해서 인간의 상상력은 답을 해주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저승세계는 왜 인간만이 가는 것인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시해주기도 어렵습니다. 지구에는 수억 년 동안 수많은 생명들이 존재했고 우주까지 확장하면 우리와 같은 지적 생명체도 얼마든 존재할 수 있는데, 이들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세 번째 제가 볼 때는 사후세계 존재론에 대한 쐐기라고 생각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우리 몸은 기생충 박테리아와 함께 구성돼 있죠. DNA에도 이들 박테리아의 흔적이 있고 인간이 움직이는 에너지 생산 공장인 미토콘드리아 역시 박테리아에서 기인한 겁니다. 우리가 죽어서 생전 모습 그대로 간다면 우리 몸에 있는 DNA 기생충 박테리아는 어디로 가는 걸까요? 각자의 저승이 따로 있는 건가요?

물론 임사체험을 통해 유체이탈을 해보았다, 사후세계에 가보았다는 주장은 지금도 빠지지 않고 TV 서프라이즈 등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주장도 실험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습니다. 김종성 교수에 따르면 앞으로도 없을 듯하고요. 제가 생각해도 이런 현상은 저산소증에서 오는 일시적 환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과학적으로는 물론 사고 실험을 해보아도 사후세계는 말이 안 되는 거죠. 어찌 보면 사후에도 세계가 있다는 말은 인간의 언어유희이고 일종의 모순어법인 셈이죠. 소리 없는 아우성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누가 사후세계가 있는지 물어본다면 공자님의 이 말이 지금도 여전히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제 위기는 지나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