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미리 본 10년 뒤 일본의 눈물

by 신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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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8일이면 고래에다 히로카즈가 찍은 최초의 한국 영화 ‘브로커’가 개봉하는데요, 고레에다는 본국인 일본보다 한국에 팬들이 더 많은 아주 희귀한 감독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마 봉준호 박찬욱 감독 다음의 인기라고 볼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2018년 칸느 그랑프리를 받은 ‘어느 가족’이 300만을 동원했고 나머지 작품은 15~30만 명 정도 봅니다. 우리와 큰 차이가 없죠. 고레에다는 일본의 정치와 일본의 우익에 비판적이며 재일교포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러를 찍은 적이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친한파 예술인이죠. 저는 ‘브로커’ 이후에도 어쩌면 다른 배우들을 기용해 새로운 한국 영화에 도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를 좋아하고 그의 영화에 출연하기를 원하는 한국의 영화배우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요.

저는 이번 칸느 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감독상이든 작품상이든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원래 칸느가 좋아하는 감독인 데다 송강호라는 배우의 인기 또한 세계적이니 기대할 만하죠. 사실 저는 국내에서 반일 감정이 극에 달한 2020년에 CJ가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배두나는 이미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 ‘공기인형’에서 주연을 맡은 바 있습니다.)와 함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연출하는 영화를 찍는다는 소식에 무척 놀랐습니다. 저는 지금의 한일관계가 조금 더 미래지향적이었으면 하는 입장 이어서요, 특히 고령화 사회와 저출산과 저성장의 늪에 빠진 일본 사회의 대응책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게 분명 있고 어떤 점에서는 서로가 도울 수 있는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고레에다의 한국 영화 연출 소식에 환영을 했죠. 그런 입장을 더욱 강화시켜준 작품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제작 총지휘를 맡고 5명의 일본 신예 감독이 찍은 옴니버스 영화 ‘10년’(2018년 제작, 한국에서는 2019년 개봉)이었습니다.

고레에다 영화는 좋게 말하면 잔잔하고 나쁘게 말하면 지루하죠. 일본 영화는 역대 세계 최고 영화감독 중 한 명인 구로자와 아키라를 배출했지요. 구로자와는 기억으로 치면 섬광기억 같은 감독입니다. 공포 두려움 경이 등의 격한 감정과 결합하여 강렬해서 영원히 기억하는 기억이 섬광기억이죠. 그러나 고레에다는 이런 기억만이 인생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고 나면 기억하지 못하는 일상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런 면에서 실제 고레에다에 영화적으로 영감을 준 감독은 느린 템포로 롱 테이크를 수시로 구사하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입니다. 가족이 항상 카메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고요. 5편의 단편은 일본이 마주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와 동시에 고레에다 특유의 여백과 절제라는 방법을 사용해 최대한 느릿느릿 다루고 있죠. 노인 문제, 일본의 재무장, 방사능 문제 등입니다. 노인 문제는 일본 소설 ‘70세 사망 법안 가결’과도 비슷한 급진적인 해결책(물론 감독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극단적인 고령화 사회가 처한 마지막 수단의 측면이 더 크죠), 75세 이상으로 일정 수준 이하의 부를 지닌 노인들에게 자발적으로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는 안락사 패치를 제공하는 미래를 그립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끔찍한 디스토피아 영화죠. 사랑하는 아내를 황궁 옆에 묻어주었고 자신도 결국 죽음을 선택한 75세 남자가 어쩔 수 없이 죽음 직전에 직면. 하게 되는 두려움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그런 남편의 손을 죽은 아내(죽어가는 남자의 환상이었겠죠.)가 꼭 잡아주는 모습에서 국경을 초월한 공감을 진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는 필연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이 갖는, 즉 유에서 무로 돌아간다는 원천적인 공허감 때문에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한의 외로움을 느끼겠죠. 일본인처럼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싫어하고 타인과 선을 분명히 긋고 조용히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사회라고 해서 죽음이 갖는 원천적인 외로움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1편은 텅 빈 병실 침대에 안락사를 택한 노인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장면을 롱 테이크로 보여주는 데 국경을 초월해서, 연령을 초월해서 참으로 슬퍼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안락사 패치를 목에 붙여주는 간호사들은 아무 표정 없이 묵묵히 맡은 바 일을 정말 사무적으로 수행하고 있어 스산함을 더욱 키워주고 있죠. ‘피안 75’라는 역설적인 제목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죠.

영화에서는 노인이 되면 생산은 물론 소비도 하지 않아서 국가 경제에 치명적 악영향을 준다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안락사 패치를 선전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일본의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을 넘어 40년을 향해 치닫는다면 일본이 세계 역사 최초로 노인 대국을 만났듯이 일본이 세계 최초로 노인 안락사 장려 국가가 되는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록적인 엔저에도 불구하고 일본 수출이 적자라는 건 국가 경제가 사실상 성장을 완전히 멈추었다는 뜻이죠. 비슷한 시점에 일본에서 70세 이상이면 무조건 안락사를 해야 하는 상황을 그린 블랙 유머 소설이 나왔거든요. 일본이 갑자기 출산율이 높아지거나 대대적으로 미국처럼 이민을 맏아들이지 않는 한 고령화의 덫에 빠진 일본의 비극은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도 국가 부채가 GDP의 두 배가 넘는 상황에서 정부가 노인 복지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에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죠. 일본은 IT나 인공지능 등에 경쟁력은 미국이나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게도 밀리는 상황이 도래했지만 여전히 생명과학이나 의학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갈수록 평균 연령은 높아지고 치매처럼 간병 인력이 필요한 질병은 늘고, 암처럼 단기에 죽음으로 치닫는 병은 극적으로 줄 것입니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작가는 일본이 20세기까지 한국을 대중문화에서도 압도했는데 서서히 격차가 줄어들다 최근 들어 영화나 음악에서 크게 밀리게 된 이유를 문화적 요인, 심리적 요인 탓으로 돌렸는데 제가 볼 때는 고령화의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에서 BTS나 기생충 오징어 게임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작가정신이나 창의성 덕분이기도 하지만, 양질의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소비해주는 젊은 계층이 상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이죠. 그러나 일본은 그 숫자가 갈수록 줄어들고 사회적으로 부양해야 할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면서 대중문화가 혁신을 하고 도약을 할 토대 자체를 상실해 버렸습니다. 나이가 들면 미래는 어두워지고 과거만 밝아집니다. 그래서 과거에 더욱 연연하고 미래지향적이 아닌 과거지향적이고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가 더욱 고착되는 거죠.

고레에다 감독은 일본이 징병제를 실시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새 출발 한 미래의 모습도 그립니다. 아름다운 나라를 위해 군인이 되어달라는 포스터를 놓고 젊은이와 할머니가 대화를 하는 장면이 나오죠. 2차 세계대전으로 아버지를 잃은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름다운 나라라면 젊은이가 나라를 위해 죽을 일이 없는 나라가 맞는 것 아닐까요? 고레에다 감독이 평화헌법 8조를 고치려는 일부 극우 세력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 듯합니다. 그런데 고령화와 군사력이 강했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정반대 방향으로 치닫는 양두 독수리 같은 모습으로 일본 사회를 왜곡시킵니다. 결국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국가가 최후의 지경에 이를 수 있는 상황이 되죠. 사실 아베를 비롯해 자민당의 우파 세력들이 꿈꾸는 나라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의 꿈은 시진핑이 꾸는 중국몽 이상으로 망상에 불과합니다.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은 30~40년대 천황이 죽으라면 죽던 그때의 청춘이 아닙니다. 고갸르와 오타쿠가 20대와 그 이하를 사로잡고 있는 시대에 그게 가능할 리가 없죠.

극우로의 회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인구 구조에 이미 일본은 접어들었습니다. 저는 짐 로저스의 말 대로 일본의 선택은 대대적인 이민 정책의 수용 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급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고 그에 따라 사회의 활력도 서서히 떨어지는 상황에 접어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입니다. 2058년으로 예상되는 국민 연금 고갈의 예상 시기는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의료비의 부담은 앞으로 점점 더 늘어날 겁니다. 지금 현재도 죽기 전 1년 동안 쓰는 의료비는 환자 1인당 월 210만 원(상당액이 의료보험으로 나갈 겁니다.)으로 어마어마합니다. 일본의 노인들은 저축률이라도 높지,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더 노인 빈곤율(믿기지도 않는 46%입니다.)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입니다. 게다가 출산율은 갈수록 떨어져 이미 일본보다 밑으로 떨어진 지 오래됐습니다. 2022년은 30만 명 밑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입니다. 일본의 10년 뒤가 우리의 20년 뒤가 될 우려가 점점 더 리얼리티를 얻게 되는 상황이죠.

어번 대선에서는 고령화 저출산 같은 우리 사회가 처한 근본적인 문제보다 좀 더 단기적인 이슈에 치중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우리가 지난 몇 년간 성취한 몇 가지 성과, BTS의 빌보드 차트 넘버 1, 오징어 게임의 넷플릭스 1위,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등에 너무 심취돼 있어 더 먼 미래, 어쩌면 일본보다 끔찍한 악몽이 될 수도 있는 미래를 애써 외면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학실히 우리는 장기적 사고를 하면서 먼 미래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일이 아니라 닥치면 해결한다는 스타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생각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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