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영화 취향은 여든까지 간다.”
어려서부터 SF 영화 SF 소설을 좋아했는데 그 취향은 평생 가는 것 같습니다. 중년이 되어도 여전히 재미있고 여전히 삶의 통찰을 줍니다. 노년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이런 성장과정을 거친 아이라면 대부분 이과를 갔을 텐데요, 저는 문과를 나왔습니다. 문과를 나온 SF영화, 소설 마니아들은 이과 출신과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합니다. 미래에 사용될 기술에 열광하면서 동시에 기술의 부작용에 대해 한번쯤은 더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기술이 인간 삶과 사회에 미칠 변화에 관심이 좀 더 많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인간은 무엇인가? 철학적 화두에 답을 찾으려고 합니다.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해답을 줄 걸작 영화들은 다른 어느 장르보다도 SF 영화에 제일 많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인간과 기술의 관계,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 생각 거리를 던져 주는 영화들이 참으로 넷플릭스에는 많습니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 디스커버리(2017)도 그중에 하나인데요, 이 영화는 사후 세계를 증명하며 낮은 임금 국내 주식 미국 주식 비트코인의 동반 부진 때문에 “이번 생은 망했어”를 외치는 젊은 투자자들에게 한 줄기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일 수도 있겠습니다.
디스커버리(Discovery)는 한 물리학자(로버트 레드포드)가 자신이 만든 기계를 통해 사후 세계의 존재를 확인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후세계가 있고 인류의 의식 중 일부는 그긋으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이후 전 세계에서는 갑자기 자살자 수가 늘어납니다. 한 달 사이에 400만 명이 삶을 스스로 끝냅니다. 그곳으로 가보고 싶어서죠. 현실이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겠지요. 이 영화를 만들 때는 세계 경제가 호황일 때였고 지금이라면 이 숫자는 아마 두 세배는 증가했을 겁니다. 물론 박사는 사후세계가 과학적으로 존재한다는 증명만 했고 그곳이 어떤 곳인지까지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물리학자가 개발한 기계는 일종의 뇌 스캐너인데 죽는 동안 일어난 일들을 시각적으로 기록을 합니다. 죽음 이후에도 그 기록은 이어지는 걸 확인한 겁니다. 그래서 사후 세계가 있다는 것이 증명된 거죠, 로버트 레드포드와 주인공의 두 아들은 기계를 진화시켜서 죽은 사람의 뇌에 연결해 봅니다. 놀랍게도 죽은 사람의 뇌에서도 그 기계는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었던 거죠. 이 영화는 일종의 죽은 자의 fMRI가 등장하는데요, 죽은 사람의 뇌에도 여전히 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현실이 재현됩니다. 인간은 드디어 사후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 거죠,
SF 영화들의 리얼리티는 기술의 개연성입니다. “그게 가능하겠어?”라는 관객의 후기가 나오면 그 영화는 폭망 한 거고 그럴 수도 있겠다면 그 영화는 성공한 거죠. 세계 최고의 미래학자이며 구글의 기술 이사로 안공 지능의 미래를 맨 이빨로 끌고 가는 미래 기술의 차력사 레이 커즈와일은 너무나 장밋빛 미래 기술을 책에서 예고해 한쪽에서는 큰 비판을 받고 있는데요, 그런 그도 인류가 사후 세계를 증명하는 기계를 발명한다는 예언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신선할 수 있는데 개연성에 대해서는 의심할 수 있죠. 영화에 등장하는 이 기계에는 막판에 놀라운 비밀이 드러납니다. 죽은 사람에게서 추출한 기억들의 정체입니다. 그 기억은 천국과 지옥 같은 사후 세계도 아니었고 생전에 경험했던 기억도 아니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했던 생각, 가장 후회되는 기억이 현실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기록된 거였죠. 즉 인간은 죽어서 천국이나 지옥에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선택에서 가장 후회됐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장 후회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그는 자살하려는 여자를 살리고 싶었습니다. 그 현실로 돌아가면서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를 살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방법으로든 그녀의 죽음을 뒤집지는 못 하게 되죠. 죽음 이후의 삶의 발견은 결국 무한반복이었던 것입니다. 니체의 영겁회귀와 다른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한 반복되는 게 아니라 인생의 어느 한 시점부터 초기 세팅 값은 똑같은 상황에서 다른 선택에 따라 다른 인생이 전개되는 일종의 스테이지가 있는 게임 같은 세계였습니다. 이런 평행 세계라면 결국 천국보다는 지옥에 다 가까운 디스토피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하튼 중요한 사실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기계는 사후 세계가 곧 평행 우주임을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의 염원은 평행 우주에서 또 다른 선택이 일어난 후에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거죠. 에덴동산 같은 천국도 아니고 무서운 지옥도 아닌 또 ‘미스터 노바디’에서도 제가 언급한 가보지 않은 길, 즉 다른 가능성이 사후 세계였던 겁니다. 이런 욕망이 있는 한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기술의 개연성은 유지됩니다.
지난번 MZ세대가 사후세계에 매료되는 이유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가장 희망에 가득 차야 할 MZ세대가 사후세계에 이끌리는 이유는 그들이 만날 미래가 굉장히 암울하고 그 사실을 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자조감이 거의 모든 흙수저 MZ세대에게서 발견되고 있는 것과 사후세계 환생 이야기에 그들이 매료되는 것은 강한 상관관계가 있는 거죠
이 영화를 보면서 ‘디스커버리’의 놀라운 상상력이 놓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인간이 죽음 이후에 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그 지점부터 다시 새 인생을 살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한민국 흙수저의 대부분은 결국 탄생 이전을 선택할 거라는 거죠. 금수저 흙수저 등 이른바 수저론은 사회에 대한 불만도 있지만 이런 사회에서 나를 살게 만든 부모에 대한 불만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거죠. 사실 어느 흙수저도 부모를 선택하고 태어난 경우는 없죠. 그리고 만약에 흙수저 부모와 금수저 부모를 영화 ‘미스터 노바디’처럼 선택할 수 있다면 그 누구도 흙수저 부모를 선택할 리는 없다는 것도 분명하죠. 그렇게 되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겁니다. 부모가 달라지면 유전자도 달라지고 당연히 나라는 존재 또한 존재하지 않았던 게 되는데, 기억의 한 시점으로 돌아가 그 지점부터 새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자게가 말이 안 되는 어불성설이 성립되는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만약 금수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 선택을 바꾸려 한다면 세상에는 지금 존재하는 사람이 다 사라지겠죠. 그렇다면 평행우주라는 개념의 정의도 달라져야 합니다. 여기서 MZ세대와 저 같은 50대 중반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저는 아무리 시계를 돌려서 과거를 바꾸고 싶어도 제 딸이 태어난 날(잉태된 날은 정확히 모르니)이전으로는 절대 못 돌아갈 것 같아요. 그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인간이 현실에 불만이 쌓이면 많을수록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번 생은 망했어”를 외친다면 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지고 이런 기계에 대한 발명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질 것은 확실합니다. 이미 메타버스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디스커버리에서 등장한 이 기계가 정확히 같은 모습은 아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인류 역사에 등장할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의 발견은 그 자체가 멋진 디스커버리였어요. 생각 거리를 많이 제공해 주는 영화가 제 기준에서는 언제나 명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