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으로 현재 한국 전통문화대학교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인 최진열 교수의 ‘역사 삼국지’는 삼국지 못지않은 분량 1000쪽을 자랑하는 엄청난 두께의 책이지만 댓바람에 읽을 정도로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우리가 역사라고 알고 있는 소설 삼국지와 진수가 쓴 역사 삼국지를 대조하는 시도는 꾸준히 있어왔으나 이 책처럼 가독성 있게 읽히면서 빠르게 넘어가는 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삼국지의 전투, 정치, 경제, 사회상 등으로 나눠 184년부터 240년까지 100년의 역사 중국이 분열되어 군웅할거하던 시기의 역사를 정말 소설 삼국지 읽듯이 흥미롭게 전한 책입니다.
우리는 도원결의 적벽대전의 극적인 승리 제갈량과 유비의 삼고초려 고사 등 역사를 촉나라 중심으로 보려고 하는 경향이 유달리 강한데 그는 중국 역사에서 강남이 중원을 통일한 사례는 송나라와 국민당의 장제쓰 정도라며 인구 수로나 군인 수로나 경제력으로나 삼국의 중심은 위나라가 맞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주희를 비롯해 유학자들이 촉을 정통성으로 생각한 것은 유비가 한족이 세운 사실상의 첫 번째 나라 한나라의 황실의 후손이라는 점 때문이라는 거죠. 화북 지방 지금의 베이징 위로 중국을 다스렸던 나라들은 선비족이나 강족 흉노 등 이민족이거나 이들의 피가 섞인 한족들입니다. 따라서 한족의 정통성을 원하고 몽골이라는 강력한 외적을 상대해야 했던 송나라 시기에 유비와 촉나라가 재평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래서 그는 삼국지연의에서 그려진 조조의 간웅으로서의 모습과 지나치게 신격화된 제갈량의 책략 등을 적당히 가감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입장인데요,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많은 도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걸 하나 고르라면 바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군들의 승률을 기록한 표입니다. 이 표 하나면 진실이 다 드러나게 되어 있죠.
삼국지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영웅 동탁은 5승 5 무 5패입니다. 이런 성적으로 중원을 재패할 수는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죠. 유비도 비슷한 승률입니다. 18승 10 무 15패입니다. 촉나라 인구가 위나라의 4분의 1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이 성적으로는 어떤 경우의 수로도 촉나라가 오나라와 위나라를 격파해 중원을 통일했을 가능성은 거의 0에 수렴한다고 봐야죠. 삼국시대를 끝낸 사람은 조조의 책사이자 2인자인 사마의의 아들 사마염이었지만 사마의가 위나라를 위해 싸웠다는 걸 고려하면 실제 위촉오 삼국지의 승자는 조조가 세운(정확히는 조조의 아들 조비가 첫 번째 황제가 된) 위나라입니다. 조조는 59승 8 무 7패의 기록입니다. 우리에게는 워낙 적벽대전의 패배가 커서 그렇지 실제로는 삼국 시대를 주도했던 이가 조조죠. 지금의 항저우, 선전 시, 홍콩 상하이 등을 다스렸던 오나라의 손권의 성적표는 어떨까요? 4승 14패에 불과합니다. 결국은 조조의 실력이 삼국의 무게중심이 위나라로 쏠리고 결국은 위나라 세력이 촉과 오나라를 멸망시켜 100년 간의 삼국 시대를 끝냈다는 게 저자의 결론입니다. 사마염이 세운 서진도 사마염의 아들 사마충이 역대 중국 황제 중에서 가장 멍청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2대로 단명합니다. 이후 위진 남북조 시대를 거쳐 산비족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양건이 수나라를 세워 중원을 통일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국은 싫어해도 삼국지는 정말 좋아합니다. 이는 중국이 하나의 나라로 통일돼 우리를 괴롭혔던 기억 때문이기도 하죠. 명청이라는 통일 왕조가 아닌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남송으로 분열됐던 고려 시대가 훨씬 자주적이었던 걸 고려하면 통일된 중국보다 쪼개진 중국이 우리에게는 훨씬 더 매력적인 중국이 아닐끼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