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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aleopard May 08. 2024

한국에서 일본을 말하기

인도 수업에서도 일본에 대해 말하는 어떤 관행은, 학문적인 것 이전의 "일상어법"으로 확고하게 존재한다.


인도인들이 영국에 협조한 것을 설명하면서, 강의자가 이렇게 말한다.


"이것을 우리가 친일파야, 라고 하는 것처럼, 친영파야 하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설명하게 될 수밖에 없는 어떤 관습, 그야말로 내셔널한 관습이 우리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친일파"라고 할 때 그것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라고 물어보면 우리들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를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일상어법을 내셔널리즘이라고 정리해버리는 배운 사람들은 어떤 함정에 빠지는가? 친일파에 대한 반감을 폐쇄적인 배타주의로 환원한다. 그래서 타인의 친일파 비난을 비난한다. 그 입장에서, 민족감정은 비판으로 소거할 수 없는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에 나 역시 폐쇄적 배타주의를 취하게 된다는 식의 자기정당화까지는 몇 발자국 떨어져 있지 않다. 요컨대 스스로 주체에 참여해야 할 때, 폐쇄적인 배타주의에 대한 냉소적인 거리감과 동시에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무기력 이외의 자원을 갖지 못하는 경우,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폐쇄적 배타주의자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친일파를 비난하는 것이 반드시 폐쇄적인 배타주의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친일파는 왜 나쁜가? 여기에는 아주 많은 대답이 가능하다. "한국민족"의 일원으로서 "일본민족"을 위해 봉사하는 민족의 배신자이기 때문에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인가 하면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친일파는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들, 약한 사람을 업신여기고 강한 사람에게 굽신거리고 몰래 어두운 곳에서 남을 해치고 자신의 사익을 도모하는 등, 악인이기 때문에 비난 받는 것이다. 친일파에 대한 뉴라이트의 소위 "재평가"가 거의 이런 문제에 착목해서 또 김성수 같은 사람을 과장되게 칭찬하고 그에 대한 과거의 비판들을 과장되게 악마화한다. 이런 불필요한 과장과 난폭한 논의들은 "민족"이라는 관념이 여전히 잘 팔리는(과연?) 상품이라는 증거라고 하겠지만, 소위 '잘 팔리는 상품'이 언제나 '보통 사람들'의 생활감각을 지배하는 것은 아니듯이, "과몰입하지 말라"는 인터넷 커뮤니티의 평범한 지혜가 오히려 인심의 상식에 가까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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