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노력은 중독이 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들이 있었다.
몸도 마음도 축 처져서, 마치 탈수된 듯 메말라 있던 시간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런 순간에도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었다.
움직이기조차 힘든데도, 자꾸만 뭘 해야 한다고,
일어나야 한다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 갈망은 곧 중독이 되었고,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다름 아닌 ‘일’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최선을 다했다.
그랬기에 더 빨리, 더 깊이 번아웃에 빠졌다.
침대 밖을 나서는 것도 고통이었고,
세상과 단절된 채 숨만 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무언가를 지나치게 하면 중독이 되고,
그 중독은 결국 나를 잠식해버린다는 걸.
심지어 사람조차도.
관계에 최선을 다했던 만큼, 상처도 깊었다.
회복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깊게 파인 마음의 상처가 아물길, 조급해하지 않고 오래 기다렸다.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전까진, 그냥 나를 안아주기로 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러는 걸까?”
그 물음에서 시작된 치유.
내가 나를 치유해보고 싶었던 거다.
좋아하는 게 뭘까.
힘 들이지 않고, 즐겁게 할 수 있는 게 뭘까.
하나씩 해봤다.
작고 사소한 것부터 천천히.
습관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조금씩, 차근차근, 오늘도 내일도.
그런데 알게 되었다. 습관도 지나치면 중독이 된다는 걸.
그렇다면, 차라리 책에 중독되어 보자고 생각했다.
텍스트 중독.
책은 읽을수록 생각이 깨어지고,
세상은 더 넓게 열려갔다.
특히 전자책은 가볍고 간편해서, 일상 속에 쉽게 스며들었다.
그렇게 쌓이는 나의 루틴,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얹어 하나의 ‘능력’으로 만들었다.
그러다보니
무기력과 중독 사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도 감정도…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내가 조절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가 많아, 새로운 관계를 두려워했지만
이제는 내 안에 기준과 선이 생겼기에,
어떤 사람을 만나도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나를 지킬 수 있게 된 것.
어렸기에 더 아팠고, 몰랐기에 더 쓰러졌지만,
이제는 단단해진 나를 마주한다.
누가 인생을 공짜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부딪히고 깨지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렇게 견뎌내는 수밖에.
그리고 돌아보면,
그 모든 아픈 과정이 나를 성장시켰다는 걸 안다.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다.
약해 보여도, 한심해 보여도 괜찮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진짜 회복의 시작이니까.
“지금의 고통은 언젠가 너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 돌아올 거야.”
— 하루키
서두르지 말자.
나와 천천히, 오래오래 친해지면 된다.
30대쯤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보호막처럼
삶은 그렇게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고, 또 걸어가며
우리는 그렇게 인생을 배워가는 거니까.
꾸준함이 나를 성장시킨다
-글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