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_ Alice Springs
무엇보다도 어제 밤의 감상을 적어야하겠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지붕 삼아 잠을 청해 보았다. 음... 어떻게 표현하면 그 밤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어릴 적 고향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별이 쏟아질 듯 많다는 표현을 했었는데, 나이를 먹은 지금도 그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왜일까? 아직도 그 때의 감수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님 정말 쏟아져 내릴 듯 많은 것일까? 어쨌든 은하수가 보이고 뚜렷한 별빛을 그대로 갖고 있는 하늘의 모습은 정말 내게로 쏟아져 내릴 듯한 아름다움을 여지없이 남겨주고 있었다. 그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3주만에 나에게 주는 선물로 한모금씩 소주를 마실 때의 느낌은 정말 더 없는 훌륭한 추억이 되고 있었다. 그 밤하늘과 소주를 마시며 순간 듣고 싶은 노래가 떠올랐다.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 왠지 이 밤에 더 없이 잘 어울리는 노래가 아닐까 싶었다. 잔잔한 밤하늘 아래의 소리가 이밤에 어울리는 노래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쉽게도 내가 가진 음악 속에는 ‘별이 뜬다네’ 밖에 없었기에 그 곡으로 아쉬움을 대신하면서 늦은 밤을 맞았다.
호주 밤하늘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 나의 첫 경험은 이렇게 불러보기로 하자.
아침 5시에 눈을 떴다. 다소 긴장한 것일까? 누구보다도 일찍 눈을 떠서 자리를 정리하고 조디(버스기사 겸 가이드)의 아침식사를 도왔다. 밖에 나와서 먹는 음식은 왜 이리도 다 맛있는 것일까?
오늘의 일정은 오전에 울루루의 일출 광경과 그 주위를 돌아보고, 오후에는 킹스 캐니언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울루루에 대한 감상? 아침해가 떠오르면서 그 거대한 바위의 색깔이 붉은 색으로 변해간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은 그 바위가 뭔가에 삐쳤는지, 아님 우리가 너무 진한 붉은 색을 기대했는지 모르겠다. 그저 해가 뜰 때까지 한결 같은 색을 보여주었기에 다소 실망하며 그 곳을 벗어나왔다.
이후 약 3시간 가까이 울루루의 주변을 걸었는데, 음... 다소 실망감이 앞선 여정이었다고 할까? 오늘 아침 눈을 떠 울루루를 등반하리라는 꿈을 갖고 나름대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등반이 안되다는 것이다. 바람이 세다는 이유로 등반이 금지되어 그 꿈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름 오늘이 내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는 아쉬움이 컸던 모양인지, 그 바위 주위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는가 보다. 아쉬움만 가득 했다. 가끔 주변을 다가설 때도 있었는데 작은 바위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어보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Cradle Mt.에 올랐던 것처럼 이 지구의 배꼽 위에 올라 앉아서 이룰 수 없이 거대한 성취감과 환희를 맛보고 싶었는데... 미안하다...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지 모르지만, 너에게 아쉬움을 남기게 해주어서 미안하다...)
울루루 주변에는 그냥 거대한 바위로서의 존재를 넘어 호주의 원주인이었던 애보리진의 역사가 담겨져 있었다. 그들이 그려놓은 벽화, 바위 아래 생겨난 틈에서 지내었던 그들의 생활의 모습들. 비록 아직도 엄청난 냄새를 풍기는 그들이기는 하지만, (앨리스 스프링스의 한 마트에서 그들이 지날 때면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의 독한 냄새가 있었음을 잊지 못할 듯 하다) 나름대로 그들이 지니고 있는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조금은 공감할 수 있었다.
참, 바람 때문에 울루루에 오르지 못했다고 했는데, 아침에 바위 주위를 돌기 시작할 때의 바람의 세기는 정말 너무 강했다. 머리에 씌워진 모자가 날아가는 것은 예삿일이었을 정도로. 아마 바위 위의 바람은 상상 이상이겠지? 이런 날씨에는 정말 올라가지 않은 것이 나의 미래를 위해 더욱 바람직했을지도... ㅋㅋㅋ (이런 것을 일방적인 합리화라고 해야하는건가? ^^ 뭐 나의 자의에 의한 등반 취소는 아니었으니...)
아... 울루루에 대한 느낌이 필요하겠구나. 처음에 책을 보았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단일 바위라고 들었기에 그 하나된 웅장함이 그대로 보일 것이라고 믿었다. 지구의 배꼽, 하나의 돌덩어리, 지금 3.6km, 수킬로 떨어진 곳에서도 지평선 위에 우뚝 솟아있던 그 모습은 정말 거대했다. 언제 이런 장면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울룰루를 멀리서 보며 와 대단하다 여겼는데, 울룰루에 가까이 다가서며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점점 가까이 갔을 때 보여지는 울루루의 상처는 그가 지녀온 오랜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군데 군데 돌이 떨어져 나간 상처와 바닥에 남아있는 잔해, 그리고 바람과 물에 의해서 침식되고 침식되어 만들어진 웅덩이와 골짜기, 그리고 동굴들. 애보리진이 이땅의 주인이라고 하지만, 울룰루가 그들보다 먼저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아온 진정한 주인이 아니었을까. 단일 바위로서의 웅장함도 웅장함이었지만, 그와 함께 보여주는 시간 속의 세월의 흔적은 그의 존재를 더욱 위대하게 만들어 주고 있지 않을까?
더불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가 이곳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가면 꼭 봐야지... 아마 오늘의 기억이 새로울 수 있는 계기가 되겠지.
(혹시 나에게도 잊지 못할 새로운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에 잠겨본다. 마음 따뜻한 사랑을 해보고 싶은 맘을 간직하고 있다면 언젠가 나에게 그런 인연이 나타나겠지? 그리고 순간적으로 불타오르고 꺼져버릴지 않도록 나 스스로도 잘 준비한다면...
오후에는 4시간 이상 버스를 달려 킹스캐니언이 있는 곳까지 달렸다. (이 넓은 땅덩어리... 4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을 갈 시간인데...)
오늘 밤에도 침낭과 함께 별하늘 아래서 잠을 청한다. 딩고라는 야생개들이 지나다닌다고 하지만, 언제 또 이런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까? 오늘밤도 별과 함께 아름다운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