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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가득한 밤하늘과 만난 멋진 소주 한 잔

3월 27일 _ Alice Springs

by 와이즈맨

6시에 떠나는 투어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그만큼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했다. 어제 저녁을 먹지 않아서 찾아온 허기는 더욱 일찍 일어나게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제 비행기를 놓칠 만큼 늦잠을 잤던 기억에 사로잡혀서였을까? 새벽 내내 서너번은 잠에서 깨었던 것 같다. 1시, 3시, 4시, 결국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먼저 시계를 끄고 간단하게 샤워를 했다.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기고 있노라니 함께 투어를 떠날 친구들이 슬슬 일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한시간 여를 보내고 투어 버스에 올라탔다. 작은 콤비 버스에는 나와 함께 하는 23명의 일행이 있었다. (내가 24명 중의 한 사람이었겠지만, 그래도 나를 중심으로 23명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구나. ㅎㅎ) 오늘 일정은 낙타농장, 울루루, 카타추타 그리고 울루루의 일몰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DSC_5238.JPG <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지구의 배꼽, 멀리 보이는 울룰루 >


그 하루의 일정을 보내고 세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길고도 긴 버스 일정. 넓은 땅덩어리라고 표현하는게 더 어울리겠지? 울루루에서 카타추타를 가는 길은 그다지 멀지 않았지만 오전 내내 버스만 타고 이동한 것 같다. 큰 도시에서 관광지 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 뿐인데, 마치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듯한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 이 나라 땅덩어리가 넓기는 넓은가 보다. 그리고 긴 버스 일정 속에서 남는 것이 있다면 수평선까지 뻗어있는 2차선 도로의 모습. 영화에서만 보고 사진으로만 봤던 그 장면을 버스를 타고 가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나름대로 일어서보고 줌을 당겨보고 노력했지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그 장면을 잡는 것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버스가 잠시 쉬어가는 틈을 이용해서 그 길의 모습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었다. 그 드넓은 곳에서 서있다는 것만으로 기억에 남고도 충분한 것이었다. 누군가가 사진을 찍어주기를 바랬지만, 사진 찍는 이가 나 혼자 뿐이었기에 어울리지 않는 셀카로 만족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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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땅, 도로가 만나는 지평선 . 참, 넓다.>


두번째, 파리. 이놈의 파리들. 앨리스 스프링스에 도착해서 파리가 많다고 느꼈지만, 시내에서의 그것은 정말 장난에 불과했다. 관광안내 책자에서 플라잉 넷이라는 파리 보호용 모자를 구입하는 게 좋을 것이라는 조언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어느 사진엔가 볼 수 있겠지만, 이놈의 파리들은 사람 무서운 줄을 모른다. 쫒아내도 금새 와서는 다시금 달라붙고 아예 내 곁에 붙어서 함께 여행을 즐기는 것 마냥 떨어질 줄을 모른다. 차가 아닌 밖에 있는 시간의 3분의 1은 아마도 파리 쫒는데 시간을 쏟고 있지 않았을까? 물론 저 파리들도 나름대로 살아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겠지만, 나도 내 공간을 지키기 위해서 침입자를 막으려 노력한 것은 아닐까? ^^ 내 존재에 방해가 되는 모습을 보니 우리는 서로 공생하기는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DSC_5120.JPG < 울룰루를 배경으로, 파리와의 사투 중 >


세번째는 뜨거운 날씨. 음 뭐라고 해야할까? 찜질방에 가도 잘 나지 않는 땀이 그늘에 앉아있어도 쉽게 흐르는 것을 보면 이 놈의 날씨가 어떤가를 이해될 수 있지 않을까? 울루루 국립공원에 들어갈 때 36.5도가 넘어서 등산을 할 수 없다는 말에 적잖이 실망을 했지만, 아마도 이 날씨에 그 곳에 올랐다가는, 음...... 아마도 욕만 진탕 하면서 올랐거나 아니면 도중에 포기했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 같다. 호주에 와서 하늘과 바다와 구름에 반해서 정말 이곳에 더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건만 앨리스 스프링스에 와서는 정말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곳 중 하나가 되어버리는 듯 싶다. 지금 밤 10시가 다되어 가는 시각인데 계속해서 목이 마르고 물을 찾는 것을 보면 아마도 오늘 탈수가 무지하게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서울에서도 쉽사리 겪지 못할 그런 날씨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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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나추나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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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추나의 트래킹 코스 >


점심은 직접 만든 햄버거를 먹고 저녁은 가이드 겸 드라이버가 직접 해준 파스타? 국수? 아무튼 서양 면발을 먹었다. 그 맛은 음....... 영화 식객에서 라면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 가장 배고플 때 먹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면발을 처음 한입 먹을 때에는 다소 싱겁고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하루가 힘들고 배가 고팠는지 결국 한접시를 깨끗이 비우고, 드라이버에게 요청하여 한 그릇을 더 해치우고 말았다. 감사하는 생각,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음식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라고 할까? 언제나 쉽게 만들고 쉽게 버리는 음식들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되리라는 생각을 했다. 매사에 감사하라는 성격의 말씀이 이와 같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것이었지만, 모든 것에 감사하라는 것의 작은 의미를 알 수 있는 순간이 되고 있었다.


DSC_5301.JPG < 드디어 해가 저문다. 아름다운 석양과 함께 >


드디어 야외에서 지내는 밤이 찾아왔다. 야외 캠핑장에서 흙바닥에 매트를 깔고 침낭을 덮고 밤하늘을 천장 삼아 잠드는 날이다. 그리고 나에게 했던 약속을 드디어 실천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서울에서 가져온 소주. 그 소주를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먹으리라 다짐했었다. 그리고 그 순간까지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는 날이 되었다.

그런데 그 동안 열심히 살아왔나? 그에 대해서 확실하게 내가 어떠했다고 말을 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그동안 이곳저곳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려고 했던 나에게 소주 한병 정도의 선물을 괜찮지 않을까?

어설픈 나 자신에 대한 합리화가 아니라 그 동안의 경험과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 더욱 열심히 노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선물을 주고 싶다.


호주에 와서 가장 그리운 것? 정말 많다. 누군가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도 그립고, 상추에 가득 삼겹살을 얹어 먹고도 싶고, 조개구이도, 누군가와 함께 마시는 술잔도 매우 그립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 가장 그리운 것은 바로 소주 한잔이 아닐까 싶다. 소주의 맛도 좋겠지만, 생소한 나라 호주를 찾아 한달 가까운 시간을 지내온 나를 위해 선물로 남겨주고 싶은 소주 한잔이다.

오늘 밤 그 작은 선물을 주고 싶다. 아니, 지금의 나에게는 너무도 큰 선물을 남겨보고 싶다.


별이 가득한 밤하늘과 만난 멋진 소주 한 잔.

병주야, 고생했다. 어때, 괜찮지? 살만하지? 넌 앞으로도 멋지게 살거야.


하늘에 별들이 너무도 많다. 은하수가 보일 정도로. 어릴 적 시골에서 보았던 쏟아질 듯 느껴지는 별들의 향연이 이곳 호주에 와서 다시금 나를 향하고 있다. 이 아름다운 Starry night를 소주 한잔과 함께 앞으로 더욱 잘하리라는 다짐을 남기며 함께 하고 싶다.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아름다운 밤이예요!!”


정말 오늘 밤은 내게 너무도 아름다운 밤이다. 너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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