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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숙면을 취하지 못하지?

3월 26일 _ Alice Springs

by 와이즈맨

어제밤 시내로 들어와서 숙소를 잡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인 듯 했다. 밤에 잠이 들면서 하루가 이렇게 길었는데 과연 공항에 있었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가졌다. 어디선가 추위와 싸우면서 생고생(?)을 하고 있지 않을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감기 들어서 골골대는 내가 굳이 살 필요는 없는 고생이지 않았을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시계는 7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6시 30분에 맞추어 놓은 시계는 어느 순간에 꺼져있고 난 이미 늦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저런 꿈을 꾸면서 세네번은 깨었던 듯하다.

'왜 이렇게 숙면을 취하지 못하지?'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체력? 왠지 답이라고는 그게 제일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뿐이었을까.

(문득 시간이 점점 흐르고 서울로 돌아가야할 시간이 다가올 때쯤 나에게 조급증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기에 돌아가기 싫다고 했던 누군가의 말처럼 나 역시 이곳에서 한달이란 시간을 겪으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면서 다시금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을 맞지 않을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지?)


< 앨리스 스프링스로 향하는 비행기, 하늘이 참 푸르다 >


비행기를 타고 앨리스 스프링스에 내렸다. 감기 기운에 두꺼운 트레이닝 점퍼를 입고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괜찮은 듯 하더니 공항을 빠져나와 조금 머물다 보니 이곳의 기온을 감히 실감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늘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햇볕 아래 있었다면 아마도 음...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햇님의 힘이 얼마나 커다란 지를 알아야할 듯...


공항에서 내려 공짜로 주어진 Haven이란 숙소의 버스를 기다리면서 프랑스에서 온 Gerome이란 친구를 만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곳의 명물을 겪을 수가 있었다. 바로 파리였다. 왠 파리가 자꾸 달려드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새에도 서로 파리를 쫓느라 허공에 팔을 휘두르기가 일쑤였다. 떼로 몰려더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놈의 파리는 내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 와서 날 괴롭히는데, 정말 짜증이 날 정도라고 할까?


버스를 기다리면서 근 한 시간을 그 프랑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럽인들도 서로 얼굴만 봐서는 어느 나라 사람인지 잘 모른다고 하며, 덩치가 큰 사람들은 북방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했다. 그가 동양인을 봤을 때 일본 사람은 다소 둥그런 이미지를 갖고 있고, 프랑스도 우리나라처럼 운전석이 왼쪽에 있다는 얘기도 나웠다. 우연히 다가온 버스에 왼쪽 조수석에 앉은 예쁜 사람을 보면서 Pretty Driver라고 착각하면서 웃었던 이야기도 떠올랐다. 영어 사전 찾아가면서 버벅 거리며 나누던 대화도 즐거웠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왠지 모르게 스스로 기분이 좋았나 보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먼저 말을 거는 나를 보았다. 물론 버벅거리는 영어이고, Sorry?, Parden?을 남발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래, 이런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는 거지, 잘하는 것이 뭐그리 중요하겠어? 나 스스로 노력하고 즐거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니?

(지금 이어폰으로 자우림의 Carnival amour가 흘러나온다. 왠지 기분좋게 만들어 주는 이 노래가 갑자기 좋아지는 것은 왜일까?)

그러고 보니 이곳도 참 하늘이 푸르다. 기분이 좋아지니 푸른 하늘을 보는 여유가 생겼던 것일까?


< 앨리스 스프링스에서도 예쁜 호주의 하늘 >


내일은 아침 일찍 투어를 떠난다. 침낭이 필요하다길래 아래 층에 있는 투어 데스크에 가서 물어보았으나 임대 가격이 꽤 비싸게 느껴졌다. 혹여 싼 값에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나에게는 역시 행운이 따르는 것일까? 숙소 앞에서 청소하는 동양인을 만나 어디서 왔냐고 물었을 때 'I’m a Korean.'이라는 말을 듣고 서슴없이 악수를 청하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근의 K마트에서 침낭을 싸게 판다는 말을 들었다. 반가운 소식에 마트를 찾았고, 침낭을 17.5불, 24불에 팔고 있었다. 대여하는데 15불이라는데 차라리 사서 보관하는 게 더욱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금(?) 24불을 들여서 침낭을 냉큼 사왔다. 음... 뿌듯함? 침낭값을 치르고 나오면서 왠지 모를 뿌듯함에 침낭을 꼬옥 끌어안아 보았다. 촌스럽나? ㅋㅋㅋ 하지만 그냥 기분이 좋은 걸 어떻하니? 근데 왜 좋은걸까? 음... 모르겠는데... 그럼 어때... 그냥 기분 좋으면 그만인거지. 하하하


앨리스 스프링스의 파리는 시내를 향해서 걸어가는 순간에도 여전한 극성이었다. 이 놈들도 이곳의 열기가 싫은지 나의 모자 아래로 들어와서는 도통 가실 줄을 모르고 있었다. 서로 살자고 하는 짓이지만 안 그래도 짜증나는 더위에 이 놈들까지 이렇게 힘들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휘저어도 작은 파리 한마디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 이기고 지는 싸움은 아니겠지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이렇게 살아가는 거 아니겠니? ^^


그러고 보니 이곳에 대한 날씨 얘기가 없었구나. 잠시 만난 한국 청년의 얘기를 들어보니 오늘 기온이 37도라고 한다. 덥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정말 컥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여름에는 40도를 웃도는 날씨라 지금은 그나마 서늘하다고 한다. 하하하, 웃음만이 절로 남아있는 이유는? 40도가 아니라지만, 지금의 날씨 만으로도 나에게는 너무도 힘든 시간이었다. 다행히 숙소 안에서는 에어컨이 있어서 더위를 모르고 시원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담배 한대 피우고자 베란다에 나가있는 순간에도 다시 땀방울이 흐르고 있었다. 그 더위와 땀방울은 감히 시내 관광을 하겠다는 여유를 남겨주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여기서 푹 쉬고 투어 다녀온 후에 시내를 돌아보자.’ 덕분에 오후에는 나름대로 책도 보고, 꾸벅꾸벅 졸아보기도 하고,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일기도 써보고 있다.

(지금 내 주위에는 노랑머리, 갈색머리, 파란 눈의 떡대 건장한 남녀들이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나름대로 일행인지, 여기서 만났는지 어울려서 음식을 만드는데, 왜 난 혼자인거지? 슬슬 눈치를 굴려보는데? 음... 아무래도 얻어먹을 만한 사람은 없는 듯.ㅋㅋ 하지만 나 말고도 여기저기 혼자서 시간을 떼우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뭐 어때? 나 이렇게 기분좋고 여유있게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행복하게 좋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배는 고프다. ㅎㅎㅎ 나도 조금있다가 밥하고 미역국 끓여서 먹을거다. ㅎㅎㅎ


내일은 새벽 6시에 아웃백으로 떠나는 투어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오늘처럼 늦잠자는 일이 없어야 하는데. 어쩜 어제는 밤에 먹고 잤던 감기약에 실수를 했는지도. 내일은 잘 일어나야지. 더불어 우리 방에는 나 말고도 같은 투어를 떠나는 친구들이 6명이나 있으니 뭐 내가 안 일어나면 깨워주고 가겠지? 믿는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내가 먼저 일어나 그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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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돈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처음에는 500만원의 예산을 계획했으나 나름 계획을 해보니 400만원 한도 내에서 여행을 마칠 수 있을 듯 싶었다. 아낀 돈으로 다른 것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지금 남아있는 돈이 400불 정도, 그리고 앞으로 약 300불 정도의 여유가 남아있는데, 과연 그 돈으로 남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오늘 시간관리 책을 읽으면서 인생을 컨트롤한다는 것은 시간을 컨트롤 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시 인생에 주어지는 각각의 사건을 컨트롤을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을 했다. 그래, 내게 주어진 각각의 사건을 잘 계획하고 컨트롤 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 여행을 통해서 얻어야만 하는 것이 있다면 더 큰 비용이 들더라도 투자할 수 있는 여유는 반드시 남겨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참, 오늘 마트에서 새우깡 한봉지를 사왔다. 나름대로 내일 밤은 내가 바라고 바라던 별 아래에서의 첫날 밤인데 소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새우깡이 필요할 듯 하다. 멋진 밤이 될 것 같다. 그 밤을 기대하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일찍 잠들 수 있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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