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굉장히 작아졌다

3월 24일 _ Loncestone & Hobart

by 와이즈맨

어제밤 잠들기 전에 감기약을 먹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느껴지는 목의 컬컬함은 이미 나에게 감기가 완연했음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었다. 왠지 따스한 온돌방에서 지지면서 다시금 잠을 청하고픈 간절한 느낌이 더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감상은 나에게는 단지 바램일 뿐 더 이상 현실 속에서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더불어 오늘은 나에게 호주에서의 또 다른 일상을 준비하도록 얘기하고 있었기에 다시금 침대 밖으로 나와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계획은 5시 30분에 론서스톤을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몸도 안 좋고 오전 시간이면 시내를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았기에 1시로 버스를 변경했다.


시내를 돌면서 City Park를 가보았는데, 잘 정리되고 깨끗한 공원 한 켠에는 일본원숭이 우리가 있었다. 10여마리 남짓의 원숭이들이 따스한 오전 햇살을 받으면서 제각기 할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서로 털을 골라주는 원숭이의 모습을 보면서 매우 평온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사랑하는 사이일까?) 누워있는 원숭이의 털을 골라주는 또다른 원숭이. 그들의 모습 속에서 느껴지는 평온함과 행복감은 결코 부정적인 단어와 감상을 떠올릴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고 있었다.

'나도 저렇게 평온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나의 환경을 탓하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내가 살아가야 할 이 환경 역시 나의 몫인 것이고, 그 안에서 어떤 감정과 느낌을 선택할 것인가는 역시 나에게 주어진 몫이다. 그러기에 내 스스로 평온함과 사랑을 선택하고픈 것이니까...

DSC_4883.JPG
DSC_4884.JPG
< 사이좋은 원숭이 커플 >


이 곳 론서스톤은 호주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도시라고 한다. 이틀 전 이 곳에 처음 도착했을 때 시내를 충분히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 시내를 돌면서 아직까지 과거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을 수 있었다. 도심의 거리 역시 높은 고층 건물보다는 100년 가까운 오랜 세월을 간직한 건물을 그대로 활용함으로써 그 역사와 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저게 사암의 위력인가...) 사암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 버텨오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1분, 2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늙어가고 있다.

1분 2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그 도시에 결코 늙는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도시에는 더욱 생기과 열정이 열리고 있는 듯 하다.

나에게도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고 더욱 그 열기를 더해가는 젊음과 열정이 있기를...

나의 삶에 지치고 힘든 어둠보다 더욱 밝고 강한 에너지가 함께 하기를...)


참, 지나는 길에 우체국이 보였다. 갑자기 편지를 쓰고 싶었다. 그리고, 우체국에 들러 호주에서 보내는 첫번째 엽서를 보냈다.


DSC_4903.JPG < 호주에서 나에게 쓴 첫번째 엽서 >


오래된 도시이다보니 그 안에 위치한 교회 또한 오랜 시간을 이 도시와 함께 버텨온 곳 중 하나였다. 호주에 와서 고딕 양식의 오래된 건물을 밖에서만 바라보았었는데, 오늘은 과감히 용기를 내어 그 교회로 들어갔었다.

'아..... (나는 굉장히 작아졌다.)'

고요함, 엄숙함 그리고 그 안에서 울려나오는 파이프 오르간의 소리는 그 안에 서있는 나의 존재를 더없이 작은 존재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교회 안에서 울려 퍼지는 파이프 오르간 소리가 교회의 신성함과 엄숙함을 더해주는 듯 했다. 지금까지 나서기 좋아하고 남들 앞에서 잘난 척하기 좋아했던 나였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나는 정말 매우 작은, 정말 너무도 작아서 말 한마디, 숨소리조차 감히 꺼내기 어려운 존재였다. 교회는 그런 엄숙함을 남겨주고 있었다.

그리고 교회에서 느껴진 엄숙함은 나에게 여느 신도처럼 의자에 앉게 만들어 주었다. 태어나서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는 내게 매우 생소한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작은 기도를 올려보았다. 그 작은 존재가 처음으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내 비록 당신의 존재를 모르지만,

당신이 있음으로 인하여 많은 이들의 삶에 커다란 빛을 주고 계십니다.

더불어 당신의 밝은 에너지가 남아있다면

저에게도 작은 베품을 나누어주시기를 바랍니다.'


DSC_4912.JPG
DSC_4923.JPG
< 우연히 찾은 교회, 방명록에 이름을 남긴 나 >


DSC_4915.JPG
DSC_4920.JPG
DSC_4918.JPG
< 나를 작게 만든, 작지만 너무도 큰 교회 >


길을 걷다 우연히 보그스 양조장을 발견하게 되었다. 보그스란 맥주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1800년대 이후부터 만들어져오는 태즈매니아 사람들에게는 자부심과 같은 맥주라고 한다. 그 한켠에는 Center for beer’s lover라는 이름의 작은 보그스 맥주 박물관이 있었다. 구경은 무료라고 하길래 그 안에 들어가 보았다. 작은 전시관에는 보그스 맥주의 역사를 충분히 남겨주고 있었다. 사실 지금까지 여러 박물관을 보아왔지만, 가장 작았던 이 박물관이 나에게는 더욱 인상이 깊었다. 어쩜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 자연보다 맥주를 좋아해서가 아닐까... 좋아하는 것에 더욱 큰 관심이 쏠린다고 하니 말이다...


DSC_4924.JPG
DSC_4942.JPG
< 보그스 맥주 >
DSC_4951.JPG < 맥주 러버르르 위한 곳이라니 >


그렇게 시내를 쭈욱 돌아보면서 맡겨 놓은 짐을 찾기 위해 숙소로 돌아와서 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었다. 그 순간 Wire를 침대에 묶어 놓고 그냥 나왔음을 깨닫고 다시금 숙소로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그것은 그 자리에 없었다. Staff가 청소를 하면서 끊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물어보았지만 그것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군가 분명 가져간 것이다. 너무도 화가 났다. 작은 것이기는 하지만 여행에 와서 뭔가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은 아니다. 왜 남은 것을 탐하고 가져갔을까에 대한 원망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아침에 보았던 타이완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고, 방을 썼던 서양 사람의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 안에는 물어볼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결국 나는 그대로 길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순간 생각이 들었다.

'누구를 탓할 것인가? 결국 최초의 잘못은 자기 물건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닌가.

남을 탓할 것도 없고,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더욱 미련을 남기려고도 하지 말자.

그저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자...'

(그리고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거 가져갈려고 비밀번호 알아낼려고 얼마나 고생했을까... 으이그...)

그래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더욱 조심하고 노력하면서 살면 되는 거지... 웃을 수 있지? ^^


DSC_4954.JPG < Goodbye Loncestone >

버스를 타고 호바트로 다시금 돌아왔다. 버스에서 잠들어 있으면서도 느껴지는 목의 컬컬함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빨리 나아야할텐데...


4시 가까운 시간이어서 해가 지기 전까지는 아직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감기로 인하여 컨디션도 안 좋고, 뭔가 먹고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밥과 미역국을 먹고 지금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내일은 비행기를 타고 애들레이드 공항으로 간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다시금 비행기를 타고 앨리스 스프링스로 떠나야한다. 앨리스 스프링스 비행기가 아침 9시이기에 시내로 나갔다가 다시금 돌아오기가 쉽지 않을 듯 하여 내일은 공항에서 밤을 맞이할 계획이다. 낯선 곳에서의 노숙이라 다소 긴장과 기대감이 없지 않으나, 감기로 인한 몸상태가 더욱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여행 속에서 불운보다는 행운이 더욱 많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기에 걱정 따위는 이곳에 남겨두고 떠나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잠시 후에 나가서 맥주를 사와서 마시면서 잠을 청해볼까 한다. 술을 입에 댄지가 오래된 듯 하여 오늘은 나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주어도 괜찮을 듯 하다.

(감기 때문에 조금 걱정은 되지만, 오히려 몸에 열을 발산시켜서 따뜻하게 잠을 잘 수 있게끔 해주겠지? ^^)

keyword
이전 04화이제는 나도 행복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