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_ Loncestone
7시 55분에 Cradle Mt.로 떠나는 버스가 온다고 했기에 평소보다 일찍 아침을 시작해야 했다. 눈을 떴을 때 컬컬한 목에서 느껴지는 감기기운과 싸늘함이 왠지 몸이 좋지 않음을 여겼다. 영화를 보다 늦게 잠들었던 이유인지, 그 동안의 피로가 누적되어오고 있는 것인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아마 이것저것 다 누적되어 있는 거겠지.) 이 상태로 오늘 일정이 가능할까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사항에 대하여 번복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어쩜 오늘의 일정도 나에게는 일이자 의무가 되어버렸으니...) 서둘러 씻고 어제 만들었던 소시지와 식빵 한 조각으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했다. 우유를 먹지 않아서인가, 화장실에 잠시 앉아보았지만 빈수레(?)만 요란할 뿐이었다.
(어제 아야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난 호주에서의 시간동안 나에게 단 하루의 휴일도 없었음을 느꼈다. 짧은 시간 속에 많은 일정을 소화해야 했기에 휴일을 가질 만한 여유가 없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와서 잠시 생각해보면 단지 여행만을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을텐데, 너무 환경에 휩쓸려서 생활하지 않았는가 하는 감이 없지는 않다. 내일 오후 늦게 호바트로 떠나니 내일은 나에게 잠시 휴식과 생각할 여유를 줘봄이 어떨까. 더불어 아들레이드에서는 마지막 퍼스의 일정만을 남겨놓고 있으니 캥거루 아일랜드 대신 이번 여행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나의 인생에 대한 다짐을 할 수 있는 시간으로 남기는 것이 나에게 더욱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7시 50분경 버스 기사를 만나서 일본인 친구와 싱가폴 친구 5명과 함께 크래들 마운튼으로 떠났다.
가장 먼저 들른 곳은 Sheffield란 곳인데 Mural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단어는 내게 생소한 단어였다. Visitor Center에 물어보니 길주변의 벽에 그려놓은 그림을 일컫는다고 한다. 알고 보니 1980년대 이후부터 주민들이 마을을 나쁜 경제 상황을 해결하고 나름 홍보를 하기 위하여 집과 담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이라고 한다. 작은 타운 안에 수십여개의 그림들이 있었는데, 나름대로 사실적인 그림으로 역사와 환경과 자연을 담아내고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대중화되지 못하고 다소 익숙하지 못한 모습이다. 우리도 역시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주변을 가꾸고 홍보할 수 있는 노력도 필요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져보았다. 30여분이면 충분히 돌 수 있는 그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 곧바로 Cradle Mt.로 향했다.
Cradle Mt.에 도착하여 나름대로 어떤 코스인지 살펴 본 후에 다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어떻게 그 높은 산중턱에 호수가 만들어졌을까. 신기함 뿐만이 아니었다. 호수는 아름다움도 가지고 있었다. Dove Lake와 함께 있던 세개의 크고 작은 호수는 Cradle Mt.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었다. 음... 표현력이 없는 내가 과연 어떻게 표현을 해야할까라는 생각을 잠시 가져보았다.
문득 그 산을 오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이 그렇게 아름다운 명산이라고 하는데, 이와 견줄 수 있을까?’
물론 지리산이 더욱 아름다우리라고 믿는다. 사실 그 산을 오르면서 한가지 욕심이 들었다면 지리산을 꼭 한번 올라보리라는 것이었다. Cradle Mt.가 이렇게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는데 명산이 많기로 유명한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제일 유명한 지리산의 자태는 이보다 더 훌륭하면 훌륭했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Cradle Mt.의 호수와 구름을 지리산에서도 바라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만은 남겨놓고 있었을 뿐이다.
점심도 먹고 두시간여를 들여 나름대로 Lookout에 올랐다. 길을 시작할 때 멀리 보이는 Lookout을 바라보면서 언제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솔직히 조금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점점 그곳에 가까워지면서 느끼는 심장의 박동수는 결코 느려지지가 않았다. 하지만 빨라진 심박수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황홀감에 절대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올라왔다는 성취감, 그 곳에서 바라보는 대자연의 장관은 정말 감탄을 감추지 못했고, 그곳에 올라있던 얼굴 모르는 다른 이들과도 환한 웃음과 큰소리의 인사를 아끼지 않게 해주었다.
산, 하늘, 호수가 만나는 그곳의 모습.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만큼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그곳.
그곳에서 빈 노트를 꺼내어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Do-Dream. I’m alive!”
그 글을 열심히 사진에 담았다. 그리고 그 산과 하늘과 호수를 향해 외쳤다.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행복하라.”
“세상 모든 것들, 사랑합니다.”
지난 시간 너무도 어둡고 힘든 시간을 내게 주고 있었다. 나 스스로 그러한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버리고 싶다. 그 높은 곳에, 넓은 곳에 지난 시간의 아픔을 남겨 두고 싶었다. 더 이상 그 짐은 가져가기에는 아직 난 젊고 아직도 해야할 일들을 너무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제는 나도 행복하고 싶다.'
울고 싶다면 울어도 좋다. 지난 시간을 돌이켜 그 시간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울고 싶다면 실컷 울어도 좋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자. 너무도 힘들고 어려워서 내려놓지 못했다면 오지 만리 떨어진 이곳에 버리고 가자. 다시금 이 모든 것들이 나를 찾아오지 못할 만큼 먼 이곳에 버리고 가자. 버릴 수 있기에 지금의 눈물도 부끄럽지 않고, 힘들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눈물은 지금까지 울면서 살아왔던 지난 시간에 대한 마지막 선물이 되어 줄 테니...
'이제는 나에게 행복을 선물해보자. 너에게 남은 것은 행복이란 선물 밖에 없을 테니...'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온 기분이 든다. 그곳에서 외칠 때 느꼈던 그 쾌감. 어쩜 고등학교 다닐 때 깜깜한 운동장을 돌면서 실컷 고함을 지르면서 느꼈던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 15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그 해방감을 맛보는 듯한 느낌. 영원히 잊지 않으리라. 그리고 지금 가지고 있는 나의 행복에 대한 자신감이란 선물, 평생 놓치지 않고 가져가리라...
이제는 나도 행복해지리라...
그런 자신감을 갖고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