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집이 있어야 하는 이유
동사무소에서 근무한지 한달이 조금 넘었다. '주민센터'나 행정복지센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나는 한글과 영어가 섞인 이 명칭이 어딘지 모르게 억지스럽게 느껴진다. 동에서 일어나는 민원을 처리하는 사무소이니 동사무소가 맞지 않나 싶기도 하고. 그냥 내가 편한대로 부르고 싶다.
들어오고 나서 내게 주어진 업무는 수급자들을 대상으로 한 '전세임대'와 매입임대' 서류를 받는 일이었다.
이번에 이 서류들을 받으면서 뼈저리게 생각했던 것은 '나이 들고 살기 어려울수록 자기 명의로 된 내 집을
사야겠다는 것'이었다. 그 생각을 심어주게 된 계기가 어떤 것이었냐면 '켈리와 델리'자매의 사례를 보고 나서인데, 기초생활 수급자인 켈리씨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글씨를 또박또박 잘 쓰는 사람'이었다.
서류를 꼼꼼하게 잘 읽고 이해도가 높으며 도움이 별로 필요 없는 사람.
LH에 제출할 필수 서류는 신청인 기준으로
1. 주민등록 등본
2. 주민등록 초본(주소이력 포함)
3. 가족관계증명서(상세)
4. 확정일자가 날인된 임대차 계약서 이며
LH가 준비한 붙임 자료로
1. 입주신청서
2. 개인정보 제공 공의서
3. 금융정보 제공 동의서
4. 자산보유 사실 확인서
를 제출해야 한다.
캘리씨는 언니네 집 3층에서 얹혀 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캘리씨는 자산보유 사실 확인서는 제출할 필요 없으며 언니인 델리씨의 집에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했는데 서류에는 임대인의 주민번호와,
임대인이 살고 있는 주소등을 적어야 했다. 다른 것은 별 무리없이 적어내려갔던 캘리씨의 얼굴에는 난색이 드리워졌다.
"언니 주소를 모르는데...."
"필요하다고 해서, 전화로 물어보시겠어요?"
"네"
대답을 끝으로 캘리씨는 핸드폰을 들어 문자로 자초지종을 설명하여 전송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언니인 델리씨는 묵묵부답. 이윽고 캘리씨는 전화를 들어 언니와 통화를 시도했다.
"왜!!!!"
전화를 받자마자 날카로운 음성이 귓전을 때렸다.
"언니 나야. LH 서류 작성해야 하는데 내가 언니네 집에서 무상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대.
언니 주민번호랑 주소 좀 나한테 보내줄 수 있어?"
"너 저번에도 신청했잖아!! 뭘 자꾸 내 정보를 달라는거야!"
뚝.
언니 델리씨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캘리씨의 민망함이 전해져서 그냥 "작성 끝나시면 부르세요" 라고 말하고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캘리씨는 그 후로 몇번 언니와 전화를 시도했다.
"나도 언니한테 전화 걸기 원하지 않아. 그래도 필요하다니까 해야지. 주소 좀 불러줘."
날카롭고 성이 나있는 델리씨의 음성에 비해 캘리씨의 음성은 매우 침착했으며, 주눅이 들어있었다.
언니인 델리는 말 한마디 끝나면 툭툭 전화를 끊기 일수였고 캘리씨는 계속 전화를 걸었다.
전혀 노기가 없는 쩔쩔매는 모습으로... 궁색한 '을'의 자세에서 그녀는 끈질기게 언니와 통화하였다.
"작성 했어요."
한참 후 캘리씨는 침착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작성한 서류에는 언니 델리씨의 주민번호와 현 주소지가 적혀있었다. 언니인 델리씨는 서울 반지하 빌라에 살고 있었다.
"다 준비 된건가요?"
라고 물어보는 캘리씨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캘리씨는 이거 발표는 언제 나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나는 잘 모르겠다고, 나가면서 복지창구에 한번 문의하라고 말씀드렸다.
"먼저번에 신청한 거는 9월 말이라고 했는데 연락 없었고... 전세임대는 4월 말에 발표라고 하고...
기다리는 게 힘들어요. 또 수급자 대상으로 한 임차인 모집이 있을까요?"
" 있으면 주민센터에서 안내우편 갈거에요."
내 대답을 듣고 캘리씨는 "죄송한데 서류 좀 다시 주시겠어요? 다시 신청할 때 전화하기 싫어서." 했다.
나는 서류를 내밀었고 캘리씨는 무상거주사실 확인서를 각도가 다르게 3번 정도 찍고 몇번 씩 확인하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다음에 있으면 또 올게요" 라고 말하고는 캘리씨는 자리를 떴다.
이제 2번의 서류를 받아보았는데 1순위인 수급자라고 하더라도 가점을 매기고, 가점이 높은 순으로 물건을 분배하기 때문에 아마 캘리씨가 선정이 되기에는 어려울 것 같았다.
1순위인 수급자는 이 작은 동에서도 너무 많았고,
가점이 될만한 서류는 캘리씨에게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캘리씨가 먼저 신청했던 전세임대가 부디 선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인사에 담아서
그녀를 배웅했다. 그리고 문득 생각해보았다.
동생에게 3층 빌라를 무상으로 내주고 자신은 반지하에 사는 언니 델리씨의 심정은 어떨까.
좋진 않으니까 그렇게 날카롭게 전화를 끊었겠지.
그리고 언니에게 그런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한번도 화를 발하지 못하는 캘리씨의 심정은 어떨까.
그 역시 좋지는 않을 것이다.
집을 소유하겠다는 생각은 원래 있었지만, 집이 없는 어려운 사람들이 아롱이다롱이 자신의 사연을 호소하면서 자신의 거주공간을 마련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자기 집'에 대한 갈망이 더욱 강해졌다.
돈은 언제 모으나 싶긴 한데... 모으면 되지. 오늘도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사랑하며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