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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에 만난 도깨비.

<한호가 들려주는 의령 옛이야기>

by 무아노

퇴근길이었다. 횡단보도로 가는 내 앞에 아주 친근해 보이는 아저씨 두 분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길은 좁은데 공간은 없고, 그렇다 해서 두 분 사이를 깰 수는 없으니 그 뒤를 졸졸 따라가야 했다.

"그러니까 거기 도깨비가 많아."

도깨비라는 단어가 단숨에 내 귀를 휘어잡았다. 엿듣는 건 안 좋은 일이지만 이건 불가항력이었다. 티브이 채널을 돌리며 EBS에서나 들을 법한 단어를 길에서 들었으니까.


"징검다리가 있는데 도깨비가 돌을 놨다는 거야. 그래서 홍수가 놔도 무너지지가 않아.", "나무 사이에 샘이 있는데 거기가 도깨비가 노는 곳 이래."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까지 넉넉잡아도 5분 정도였을 텐데 그 사이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집에 와서 도깨비와 징검다리, 샘을 찾아봤다.

대구가 나오지만 얼핏 들은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단서들은 '령'으로 끝나는 지역명, 삼성 가족이라 그걸 토대로 찾으니 '의령'이 나왔다. 그래서 찾은 책이 <한호가 들려주는 의령 옛이야기>였다.


책은 의령에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에 약간의 창작을 더해 동화 형식으로 엮었다. 아쉽게도 도깨비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밖에 없다. 그 하나, ‘한우산에는 도깨비가 산다’ 속 쇠목이의 이야기는 이렇다.

도깨비 쇠목이는 한우 도령과 잘 지내는 응봉 낭자에게 반한다. 골키퍼 있는데 골 넣어보려 망개떡도 선물했건만, 단호히 거절당했다. 그래서 한우 도령에게 헤어지라고 어깃장을 두는데 그가 거절하자 죽여버리고 만다.

응봉 낭자는 반려가 죽었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해 따라 죽고 말았다. 철쭉꽃이 된 그녀를 쇠목이가 먹는데 꽃이 가진 독성 때문에 죽고 만다.


사랑이라 부르기 민망한 집착 때문에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다니. 다른 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들이 산신처럼 인간들을 도와주는 것에 비하면 도깨비가 좋은 존재는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도깨비 '김신'역시 이렇지 않은데.

여운이 남아 인터넷을 찾아봤지만 도깨비보다 눈에 띈 건 망개떡이었다. 비극적인 이야기에서 가장 유명한 게 망개떡이라니. 조금 서운할뻔했지만 오히려 좋은 것 같기도 했다. 망개떡을 먹으며 이야기를 떠올리면 더욱 오래 살아남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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