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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플 성수동의 진짜 정체

<젠트리피케이션 쫌 아는 10대>

by 무아노

대학교 시절 친구들을 만나려 하면 대부분은 2호선 강남역이 약속장소가 된다. 좀 질린다 싶어 그 주변의 역삼역이나 신논현역을 찾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이제 식상해졌다. 이야기의 물꼬를 트는 건 그 장소가 주는 인상과 분위기인데 우리들은 너무 오랫동안 강남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엔 소위 '핫플'을 가자고 제안했다.

신용산역과 삼각지역 사이의 용리단길과 2호선 성수역. 둘 다 핫플이었고 먹고 마시는 건 같았다. 그러나 성수의 팝업스토어라는 구경거리가 우리의 발걸음을 결정지었다.


성수역의 개찰구에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강남과 다른 부분이 보였다. 우선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들. 서울에 관광객이 많아졌다더니, 사실이라는 게 느껴졌다. 또 나잇대. 아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반짝반짝 빛이 났다. 친구들 역시 성수역에 발을 딛자마자 바뀐 분위기를 알아챘기에 우리들은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역을 나서며 주제는 다시 확 바뀌었는데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었다. 내가 몇 년 전 성수를 온 건 면접을 위해서였다. 기억 속의 성수는 실거주민과 일자리를 위한 지역이었지 '핫'할 이유가 없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 인근의 낙후된 지역이 개인, 지자체의 노력으로 활성화되면 대규모의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말한다. 관련된 책을 찾아보니 워낙 전 세계적으로 발생해 읽을거리는 많았다.

그럼 복잡한 시선은 빼고 본질을 설명하는 책을 보고 싶어 청소년을 위한『젠트리피케이션 쫌 아는 10대』를 골랐다. 얇아서 읽은 건 절대 아니다.


책은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다. 강남 어느 길거리에서 행인이 망치에 폭행을 당했다. 둘의 관계를 알아보니 피해자는 건물주, 가해자는 그 건물에서 장사를 하던 세입자였다.

가해자는 서촌에서 오랜 시간 장사하며 가게를 일궈 맛집으로 유명해진 식당의 사장이었다. 그러나 새로 바뀐 건물주가 월세는 네 배, 보증금은 세 배 넘게 인상했다. 항의하자 불만 있음 나가라는 말만 돌아왔다. 그 당시에는 임대차보호법이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았기에 강제집행을 당하게 됐고 2년이 넘는 갈등은 폭행이라는 마무리를 짓게 됐다.


극단적으로 끝난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제주도, 양양, 경주를 보면 원주민들이 개발을 꺼려한다는 기사를 많이 볼 수 있다. 소음, 쓰레기 투기, 불법 주정차 시비 그리고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골칫덩이라면서. 이쯤 되면 ‘불편하긴 해도 돈은 벌잖아. 꼭 나쁘기만 한 건가?’ 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저자는 '좋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대한 답을 이렇게 내놓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선사하는 이득과 혜택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누리는가."

예를 들면 이렇다. 원주민이 1억을 받고 나가면 그 이후 소유자는 30억으로 팔아 이득을 얻고, 30억을 주고 산 새로운 소유자는 손해보지 않기 위해 월세나 보증금을 올린다. 이것이 과연 공정한 거래고 사회에 도움이 된다 할 수 있을까?


성수에서 본 이국적인 푸드코트, 아파트, 주말이라 닫힌 공장, 아예 문을 닫은 공장을 노출 인테리어로 꾸민 카페들이 떠올랐다. 아파트에 사는 원주민과 일하는 직장인들에게 이 모든 변화는 그리 반갑지 않았을 수 있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와 점심시간 안에 밥 한 끼 먹기도 어렵고 출퇴근이 전쟁이라는 기사들을 여러 번 본 기억이 있다. 그날 보았던 성수의 반짝임엔 어쩌면 누군가의 걱정이 조용히 깔려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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