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떡볶이로부터: 떡볶이 소설집>
나는 감히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길거리 음식을 떡볶이라 하겠다. 고추장, 짜장, 라면사리, 차돌박이, 소시지까지 품을 수 있는 너그러운 음식. 하지만 나는 이 떡볶이를 마음껏 먹지 못한다. 매운 걸 못 먹기 때문이다.
죠스떡볶이, 엽기떡볶이 등 '매운맛'을 앞세운 브랜드들이 늘어나면서 나 같은 '맵찔이'들은 점점 떡볶이에서 소외되기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도 천국이 있었다. 바로 ‘디델리(D.deli)’다. 라볶이 전문점인 디델리는 달달한 맛이 기본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진짜로 김밥을 주문해 국물에 찍어 먹으면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그릇을 싹싹 비웠다. 하지만 새콤달콤한 떡볶이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었고 결국 나의 천국을 잃고 말았다.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디델리를 찾아 나섰다. 집 주변엔 매장이 없고 가장 가까운 곳은 지하철로 30분 거리였다. 멀다면 멀지만 맛집 찾아 해외까지도 가는 마당에, 다른 시로 지하철 타고 가는 건 할 만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디델리를 기억하는 친구가 나의 여정에 동참해 줬다. 무려 친구의 차를 타고 편히 갈 수 있는데 고민은 평일 오전만 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럼 반차 내지 뭐. 그렇게 오픈런했다.
너무 맛있었다. 배가 아플 거란 걱정 없이 마음껏 먹고 3인분을 포장해서 돌아왔다. 달콤하면서 감칠맛 가득한 떡볶이를 먹은 기쁨이 가시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떡볶이에 대한 글을 보고 싶었다.
떡볶이에 관련된 책은 많다. 레시피는 당연하고 동화, 역사와 과학서적, 에세이까지 있다. 몇 년 전 베스트셀러였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처럼 말이다. 그중 눈에 들어온 책은 떡볶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쓴 글을 모은 『당신의 떡볶이로부터: 떡볶이 소설집』였다.
책은 총 10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크게 나누면 현실적인 이야기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이야기로 구분할 수 있다. 현실적인 작품들에서는 떡볶이가 인물들의 일상에 깔린 배경 역할을 하고 판타지 작품들에서는 떡볶이 자체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핵심 소재가 된다.
현실적인 이야기 중 하나를 소개해보겠다. 조영주 작가의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떡볶이'는 스위스에서 40년을 살다가 한국에 돌아온 '해환'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맘껏 먹는 한식 중 떡볶이에 꽂혀 전국 일주하는 그녀는 서울의 떡볶이 전문점 끼니에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 레시피를 묻는다. 스위스에서 해 먹을 것이지 가게를 낼 건 아니라는 말에 가게 주인은 레시피를 알려주는데 특히 '사랑'이 중요하다고 알려준다. 사랑이라니 그 애매한 재료를 해환은 넣을 수없었다. 왜냐면 그녀는 이 떡볶이를 남편을 독살하기 위해 만드는 거니까.
판타지 작품 중에서 '좀비와 떡볶이'는 좀비로 인해 세상이 무너진 뒤의 이야기다. 남은 인류는 부락 규모로 버티고 그중 주인공 김민성은 마을 할아버지가 말하는 떡볶이에 꽂힌다. 귀한 쌀이나 밀로 왜 떡이라는 걸 만들었던 건지, 재료는 왜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지 궁금하고 먹고 싶은 욕구를 멈출 수 없다.
민성과 친구들은 책을 통해 떡볶이에 들어가는 재료를, 포장지를 통해 조리법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재료를 만들기 위해 하는 노력은 생존에 필요하지 않은 일이라며 어른들의 노여움을 산다. 결국 주동자로 몰려 쫓겨나는 벌을 받는데, 친구들이 함께 나간다. 결국 그들은 떡볶이를 향한 열망으로 새로운 터전을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이어간다.
좀비와 떡볶이가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가 있다. 순식간에 문명의 편리함을 잃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인터넷, 전기, 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떡볶이는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떡볶이를 정말 쉽게 먹는다. 배달 주문이나 마트에서 파는 양념장과 떡으로 10분도 안 되어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고추장부터 직접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면 막막하다.
사랑하는 것들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디델리를 찾으며 깨달았다. 좋아하는 음식을 '언제든 맛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디델리를 찾아 나선 여정은 단순히 떡볶이를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작은 천국을 지키려는 노력이었다.
떡볶이 한 그릇이 주는 따뜻함, 친구와 나눈 소소한 수다는 더욱 소중한 추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