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은 악마의 달>
'여름 싫어 겨울 좋아맨'인 나는 그런 단순한 이유로 이 책을 골랐다. 물론 금서였다는 점도 흥미를 끌었다.
초반, 화려한 키스신과 자유로운 연애를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해 이남자, 저남자를 비교하는 모습은 마치 '남주 찾기'가 주요 요소인 장르문학을 떠올리게 한다. 아니, 어쩌면 이 작품이 그런 흐름의 선구자였을지도?
"아, 누가 남주가 될까?"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큰 착각이었다. ‘인간의 심성과 미덕을 타락시킨다.’ 이 책이 금서로 지정된 이유를 생각했어야 했다.
<8월은 악마의 달>은 하이퍼리얼리즘에 가깝다. 바람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는 생활상, 휴가지를 찾은 여자와 그녀를 유혹하려는 남자들. 전반적으로 그려지는 풍경은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다.
주인공 엘런은 바비라는 남자를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람둥이인 바비는 그녀와 자려 하지 않는다. 궁금해서 계속 읽었더니, 결국 엘런이 바비를 어르고 달래 목적을 달성하고야 만다.
이게 해피엔딩인가? 싶었지만, 엘런은 성병에 걸린 듯한 증상을 보이며 휴가를 망치고 만다.
그 시대에는 더 조심스러웠을 일이었고 엘런은 불안과 자책에 휩싸인 채 검사를 받으러 간다. 그리고 의사에게 듣는다.
"임질은 아닌 것 같아요......"
성병은 아니라니, 해피엔딩은 해피엔딩이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면 묘한 기분이 남는다. 정말 해피엔딩일까? 성병은 걸리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엘런이 겪은 감정의 파도, 인간관계의 허망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전염병을 옮긴 바비는 다시 만날 수 없다. 그와의 짧은 관계는 그렇게 끝나버린다.
결국 이 책은 '행복해 보이는 순간에도 어딘가 불안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행복은 너무 짧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그래서 이 책이 금서가 되었을까. 외설과 불경, 그리고 모두가 쉬쉬하던 것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내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 든 건 그 때문이다. 기꺼이 목숨을 바치며 현실에 없을 절절한 사랑을 나누는 로맨스 판타지를 읽던 나에게, 이 책은 판타지 없이 너무나 현실 그 자체였다. 어쩐지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 더 싫어졌다.
하지만 에드나 오브라이언이라는 작가에게 흥미가 생겼다. 가톨릭 국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아일랜드에서,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내비친 작가.
그녀는 이 작품 이전에 소녀 삼부작을 출간했고 모국에서 금지를 당했지만 또다시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을 냈다. 금지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미 우리는 넷플릭스, 19금 웹소설의 자극적인 맛에 익숙해졌다. 그렇기에 이 책은 외설로 여겨지기보다는 솔직한 작품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그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시대를 지나 이제야 제대로 읽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