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mned Thing>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을 찾다 비슷하게 공포와 초자연적 주제를 다뤘다는 앰브로스 비어스(Ambrose Bierce)를 알게 됐다. 현대 문학의 조상님 격인 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가를 찾는 게 더 어려울 테지만 비어스의 단편 몇 편을 읽어보니 확실히 죽음과 미스터리한 존재,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자주 등장했다.
비어스의 작품은 국내에 번역된 것이 드물다. 번역본으로는 '악마의 사전'과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정도가 있는데 모두 절판 상태다. 그 외 호러, 미스터리 단편을 엮은 단편집에서 가끔 이름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다행히 원서로는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어서 <The Damned Thing>, <Halpin Frayser>, <Spook House>, <One Summer Night> 이렇게 네 편을 읽어봤다.
<The Damned Thing>, ‘불길한 것’이라는 제목의 단편은 이렇게 시작된다. 두 친구가 사냥을 나갔다가 그중 한 명이 ‘그것’에게 죽임을 당한다. 살아남은 친구는 눈에 보이지도, 설명할 수도 없는 존재가 친구를 죽였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죽은 친구의 일기장에서는 ‘그것’에 대한 기록이 발견된다. 점점 가까워지는 기척, 공포에 질린 언어들. 무언가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Spook House> 역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제대로 살린다. 폭풍우를 피해 유령이 나온다는 집으로 들어간 두 남자 중 한 명만 살아남고 돌아온 그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Colonel McArdle died in Frankfort on the thirteenth day of December, in the year 1879.”
장소, 날짜 거창하지만 사실을 아는 사람은 죽었으며 이제 독자만 남았다는 걸 암시하는 찝찝한 마무리다.
<Halpin Frayser>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정신적 혼란을 다뤘다. 과거와 현재가 겹치고 인물의 심리가 흐릿하게 흔들리지만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반면 <One Summer Night>는 유머가 한 스푼 첨가된 공포물이었다. 주인공이 정말 죽었다 살아난 건지, 생매장을 당한 건지 알 수 없는 상황. 그런데 그의 무덤을 의대생 둘, 묘지 관리인이 파고 있다. 주인공에게 천만다행인 상황에서 팔을 뻗어 살아 있음을 알렸건만 세 사람은 그야말로 혼비백산 도망친다.
여전히 공포에 떠는 의대생들에게 밝은 미소를 띤 묘지 관리인이 찾아온다. 관리인은 그의 '시체'를 주며 수고비를 요구한다. 긴장감을 주면서도 마지막엔 풍자와 해학이 섞인 결말이다. 살짝 오스카 와일드 느낌이 나는 블랙코미디였다.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이야기와 모르는 작가들로 가득한 세계 속에 살고 있다. 그 수많은 이름 중 하나가 바로 앰브로스 비어스다.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작가를 만나는 일. 비록 영어 공부처럼 느껴졌지만 그 시간이 과연 가치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단연코 ‘예스’다.
의외로 그런 만남은 꽤 큰 즐거움이 된다. 그 시작을 비어스로 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