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삼 잡기
와! 또 잡았다. 한 녀석이 새끼손가락만 한 해삼을 들고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아이들의 고개가 그쪽으로 쏠렸다. 둥둥 걷어 올린 소매 끝단이 물에 젖어 파리하게 부은 팔뚝을 타고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아직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녀석들은 대가리를 처박고 못 들은 체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요굿대를 만든다고 법석을 떨었다. 긴 막대기를 적당히 잘라서 끄트머리에 낚싯바늘을 묶을 때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했다. 손이 닿지 않은 깊은 곳의 해삼도 건져 올릴 거라고 별렀다. 그러나 성과가 영 시원찮은 것이다. 산이나 운동장에서 놀다가도 물때가 되면 아이들은 바닷가로 향했다. 음 바나 붕개(고향의 지명)로 주로 갔지만 해삼을 잡기 위해서는 바위가 큰 음 바가 유리했다. 바위 사이에 고인 물웅덩이는 수심이 낮아서 소매를 걷으면 파래나 몰 밑을 더듬을 수 있었다. 그러다 운 좋게 손에서 물 쿵 하고 만져지면 십중팔구 해삼이었다. 간혹 군수도 눈에 보였지만 고약한 냄새 때문에 웬만한 녀석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해삼을 치켜들고 해맑게 웃는 녀석의 얼굴에 허연 소금꽃이 피었다. 짠물에 저린 반들반들한 이마가 수면에 비쳐서 물결과 함께 어른거렸다.
봄이라 재래시장에도 활기가 넘쳤다. 올 때마다 예사로 지나친 적이 없는 어물전에도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통영 멍게’, ‘삼천포 해삼’이라고 쓴 파란 플라스틱 통이 어지럽게 시선을 끌었다. 다가가 보니 제철 맞은 해산물을 떨이하느라 분주했다. 좋아하는 멍게에 당연히 눈이 갔지만 해삼의 유별난 기억이 스치는 바람에 그 앞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바위에 붙은 미끄러운 실 파래에 헛발을 디뎌 자빠졌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오버랩되었다. 물에 떠내려가는 고무신을 잡으려 허우적거리던 꼬락서니는 참 가관이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엎어진 고무 바케스에서 쏟아지던 맵다리 고둥이며 덩개부리가 한 쟁반 5.000원에 진열되어 있었다. 상큼한 식초에 버무린 제철 해삼 맛은 지금이 최고로 좋을 때다. 해삼과 함께 기억을 싸매듯 받아든 검은 비닐봉지에 왠지 가슴 한켠이 시렸다. 바쁜 세월에 묻혀 사느라 정작 소중했던 유년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일종의 자책감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요놈들이 풀어내는 갯내 이야기를 들으며 막걸리라도 한잔해야겠다. 그래서 구름처럼 흘러 가버린 유년의 이야기 속에서 그리운 친구들을 하나하나 소환해 봐야겠다. 짠 내음이 벌써 코끝으로 스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