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 감

by 강쌍용

풋 감


외가 뒤뜰에는 큰 감나무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다. 해마다 탐스러운 단감이 열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어른들은 품종이 참 좋은 나무라고 추켜세웠다. 술이 큰아버지 집에도 큰 감나무가 있었지만 떨 감이라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지금이야 흔한 감나무지만 당시는 귀했다. 지난봄 장독대 위에 떨어진 하얀 감꽃을 주어며 감이 빨리 열리기를 기다렸다. 주렁주렁 매단 감꽃 목걸이를 목에 걸고 으스대기도 했다. 감나무를 타고 올라가면 지붕 너머 깽 문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왔다가는 도선이 보이고 머구리 배 밥 짓는 연기가 자욱했다. 따라온 동생이 위를 쳐다보며 “형아, 많이 열렸나?” 하고 물었다. 함께 오르고 싶은 간절함이었다. 그쯤 물까치 한 마리가 감나무 가지로 날아들었다. 불청객을 눈치챘는지 앉지도 못하고 빙빙 돌았다. “응, 새까맣게 열렸다.” 듣지 못했다. 요란하게 우는 물까치가 소리가 대답을 삼켜버렸다. 감꽃 줍던 동생 손만 다시 분주해졌다. 감나무 이파리가 볕을 가린 흙담 밑에는 푸른 이끼가 땅을 덮었다. 떵 실하게 달렸다. 바람에 떨어져 춘새 밑에서 구르는 풋감이 어느새 밤톨만 해졌다. 붕개 헌 학교 옆 떨 감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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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로 스며든 달빛이 방안까지 훤히 비쳤다. 터진 문살 하나가 뒤 봉창 문 종이를 뚫고 나와 젓가락 같은 달그림자를 지었다. 담벼락에 기댄 깻단이 밤바람에 넘어지는지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귀밑까지 들렸다. 동틀 기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달구 새끼도 조용했다. 이렇게 얕은 바람에 감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날이 새면 외갓집으로 달렸다. 땅에 뒹구는 풋감을 줍는 포만감은 세상 어디에도 비길 데 없었다. 구석구석 빠진 곳 없이 훑다 보면 두 손이 모자랐다. 낙하에 패인 상처는 바지에 대고 쓱쓱 문질렀다. 한입 깨물면 떨떠름한 풋내가 혀끝을 감았다. 하나 줍기도 힘들 때가 있었다. 풀이 죽은 이런 날은 유독 외할아버지 헛기침 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상하다 싶어 엉거주춤 서 있으면 할아버지는 토실한 감 몇 개를 손에 쥐여주셨다. 슬쩍 앗아가는 아이들 먼저 챙겨 두신 것이다. 아직 떫은 풋감은 소금물에 담그거나 보리쌀 더미에 묻었다. 말랑하게 익어가는 풋감을 보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단지를 열었다. 짭조름하게 간수가 베이면 기점이 생각에 벌써 가슴이 뛰었다. 늦은 봄날 감꽃 목걸이를 줄 때도 그랬다. 청등 같은 풋감은 그렇게 낯 붉은 설렘으로 가을과 함께 익어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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