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산 대숲

by 강쌍용


아홉산 대숲



낮은 산이다. 아홉 개의 봉우리와 골짜기를 품은 산이라 하여 지어진 순우리말 이름이다. 아홉산! 일광이나 임랑 해변에서 올려다보면 봉우리가 낮아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근처 함박산이나 달음산에 비하면 그 존재도 미미하다. 해발 361m 불과하니 차라리 높은 언덕이라 하여도 별 무리는 아니다.

이곳에 터 잡고 아홉산 숲을 가꾸어 온 세월이 무려 400여 년, 한 가문의 숲 사랑 명맥이 9대에 걸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남평 문씨의 일파인 미동 문씨 집안이다. 놀라운 일이다. 52만 제곱미터에 걸친 사유지가 숲의 원형을 유지한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경우는 아홉산이 유일하다고 한다.

자연군락을 이루고 있는 금강송은 수령이 거의 200~300년에 달한다. 우리나라 대표적 금강 군락지인 울진의 금강송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밖에 참나무와 편백 그리고 삼나무와 서어나무가 맹종죽, 왕대와 더불어 주요 수종으로 서식하고 있다.



아홉산자락 아래 고즈넉이 자리 잡은 관미헌으로 들어선다. 지금도 산주 일가가 머무르고 있다 하니 한옥의 기품에 더해 대를 이은 숨결이 베여나오는 것 같다.

산에서 나는 고사리마저 귀하게 여긴다고 했던가? 관미헌! 얼마나 산의 소중함과 가치를 존중했으면 하잘것없다고 여기는 고사리에서 이름 석 자를 따왔을까? 눈길이 간 편액의 세 글자에 고집스러운 가문의 기개가 서려 있는 것 같다.

마사로 깔린 너른 마당이 뒤뜰 대숲 바람에 납작 엎드려 있다. 정갈하게 정리된 정원이 한때는 젖소를 키우는 축사 마당이었다고 하니 놀랍다.

천천히 돌아보는 마당 한켠에 우뚝 선 은행나무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나무의 기개도 만만치 않지만, 여느 나무에 비해 유독 수형이 너르고 미끈하다.

저렇게 우뚝하니 필시 사연이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안내판에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1960 ~ 70년대 이 지역 국, 도유림을 위탁관리했던 문의순 어른에 관한 것이었다. 1924년 혼인하고 처가인 경북 칠곡의 기간면 각산에 신행을 갔다가 얻어온 은행 열매가 싹을 틔워 오늘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신혼 길에도 열매 챙기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니 어른의 나무 사랑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몇 걸음 더 걸어 나간 펑퍼짐한 뜨락에 볕을 받은 장독이 정겹다. 미동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 터 잡은 대갓집의 넉넉함을 보는 듯하다.

보통 장독대는 집안의 후미진 곳에 두고 일정부분 울타리로 가리는 것이 통례가 아니던가? 그에 비하면 이렇게 트인 모습이 색다르고 한편으론 도도하게 느껴졌다.

장독에 담았을 묵은 된장처럼 허리춤의 돌담 위로 겹겹이 쌓인 빛바랜 기와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것 같다.

숲이나 장독이나 섣불리 수고를 알아채고 결과를 가벼이 드러내는 법이 없다. 시간의 때가 묻어야 장맛이 나고 계절의 기운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숲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평 문씨 일가가 무던히 일궈온 아홉산 숲은 정말 경이롭다. 땔감으로부터 나무를 지켜야 했을 것이고 홍수나 산불의 위험에 노심초사했을 것이다.

일제 수탈 시대를 거치면서 무단 벌목을 막았을 것이고 끔찍한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숲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담쟁이가 둘러친 돌담을 따라 도는데 이상한 대나무가 보인다. 맹종죽보다 키가 작고 울퉁불퉁한 사선으로 나누어진 굵은 마디가 예사롭지 않다.

친절하게 세워진 팻말에 구갑죽이라고 쓰여 있다. 난생처음 보는 나무라 자세히 살피는데 보면 볼수록 거북 등을 닮았다.

대를 이어 지역의 독림가로 활동하시면서, 2000년에 작고하신 문동길 어른이 중국에서 이식한 대나무가 이렇게 자랐다고 했다.

어디를 가던 나무를 예사로 보지 않는 관심이 귀한 구갑죽을 이곳에 뿌리내리게 했으리라.

소롯길을 따라 햇살이 눈 부시다. 어떤 방면에도 늘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 있다. 일찍부터 숲의 중요성을 알고 그 원형을 지키기 위해 쏟았을 문씨 일가의 정성이 이 아홉산 숲에 고스란히 배 있는 것 같다. 같은 종가의 자부심인지 남평 문씨 일파인 아내의 걸음걸이가 유독 가볍다. 숲에 취한 듯이 그 위세를 피해 띄엄띄엄 내디딘 발은 어느덧 맹종죽이 기세를 뻗친 만평 대숲을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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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종죽은 국내에 분포하는 대나무 중 가장 굵은 대나무로 맹조죽이라 불리기도 한다.

땅속으로 뻗어나가는 줄기 마디에서 돋는 죽순은 생장 속도가 빨라 하루에 거의 50~60cm는 예사로 자란다.

껍질에 흑갈색 반점이 있고 어두운 윤택을 띠며 재질이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한때는 공예품이나 생활용품에 쓰이지 않는 곳이 없었으나 플라스틱에 밀려나면서 지금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밀생된 대숲 옆으로 우람하게 솟은 금강송이 그 자태를 자랑한다. 고고한 소나무의 기개와 지조의 대나무가 나란히 공존하는 아홉산 숲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난다.

쉽게 부화뇌동하지 않는 대나무의 절개가 혼탁한 세태를 꾸짖듯 푸름을 펼쳤고, 홍조 띤 우람한 금강송의 의연함이 어떤 기상보다 우뚝하게 솟았다.

진한 솔향이 일렁이는 대숲 물결을 타고 아내의 코끝을 간질인 탓인지 연신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문중의 자부심이 다분히 섞여 있는 앙망진 비음이 앞서가는 길잡이를 자꾸 주눅 들게 한다. “그래, 인정한다. 당신 가문 최고다.”

조용히 산길을 따라 걷는 한가로움은 서두를 이유가 없어 좋다. 느린 걸음이라야 온전히 느끼는 묵직한 산의 기운을 제대로 흡입할 수 있다.

사소한 일에 매료되었던 따분한 일상이 낯설게 밀려난 자리로 산바람이 몰고 온 청량함이 스며든다.

“아, 좋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 즐거움, 오늘 일은 오늘에만 일어나므로 지금 누리지 못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

하찮은 일에 짜증 내며 눈앞의 파랑새를 잡겠다고 요동치던 날들이 아득했다. 한낱 스쳐 갔던 파랑새는 다시 날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다리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불확실한 미래도 지금 누리고 즐기는 행복을 상쇄할 만큼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기 때문이다.


굿당인가? 산마루 어귀에 세워진 헛간 같은 서낭당이 눈길을 끈다. 한낮인데도 약간 으스스한 기운이 든다.

저마다 사연을 쏟아낸 물증을 남기려는 듯 천 원짜리 지폐가 재단에 수두룩하다. 바람에 날려갈까 염려하는 마음이 지폐를 누른 돌멩이에서 묻어난다.

영험한 신령님께 정성을 바친 모든 사람이 소원성취하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 나왔다.

멀리 일광 바다가 푸르게 남실거린다. 이 산 너머 만화리에 차를 대고 임도를 따라 걷다 보면 이곳에 닿을 것이다.

잠시 틈을 내면 누릴 수 있는 자연의 시혜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잠시 숨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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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정갈하고 고요했다.

400여 년에 걸친 남평 문씨 일가의 숲 사랑이 산자락마다 꿋꿋하게 박제된 것 같다.

눈앞의 이익만 좇는 경망스러운 세태를 나무라듯 숲은 우거지되 소란스럽지 않았다. 우람하고 의연한 기품을 모나지 않게 풍겼다.

더딘 산행이 끝나갈 무렵 청설모 한 마리가 눈길을 끌었다.

“아홉산 숲이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니야.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이 산에 불어 넣은 혼이 지금도 자라고 있는 것이야!” 청설모가 들려준 말이었다.

쏴 ~ 바람 한 자락이 대밭을 훑고 지나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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