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양지位良池에서 위민爲民을 생각하다

by 강쌍용



위양지位良池에서 위민爲民을 생각하다




이팝나무가 꽃을 피워 절정을 이루던 지난 5월 초다. 아내와 함께 밀양 위양지를 잠시 찾았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어서 한나절이면 홀가분하게 갔다 올 수 있는 거리였다. 근처 농경지의 물을 대기 위해 인위적으로 쌓은 못이지만 풍광이 아름다워 많이 알려진 곳이다.

백성을 위한다고 만든 저수지라 하니 여느 못과는 사뭇 기운이 다르게 느껴졌다. 통일신라 시대와 고려 시대에 걸쳐 축조된 인공 못으로 꽤 오래된 못이다. 5개의 크고 작은 섬을 품은 못은 경치가 수려해서 예부터 이름난 학자나 문인들이 많이 찾아와 풍류를 읊던 곳이다. 특히 못 가운데 위치한 정자 완재정은 이곳의 백미다.

안동 권 씨 후손들이 위양 종중의 입향조인 학산 권상변을 기리기 위해 1900년 세운 정자다. 팔작 기와지붕 건물로 정면과 측면에 각각 3칸과 2칸의 온돌방과 대청을 배치한 구조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수면에 비친 이팝나무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수많은 네티즌 사이에 이름이 알려진 탓일까? 포토존이라 불리는 명당 외짝 문에서 인생 샷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혹은 친구끼리 각자의 사연을 남기기 위해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정성이 대단했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한낮의 뙤약볕을 온통 감수하면서 말이다.

그늘이 진 수양버들 아래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를 깔고 앉아 빈 곳을 찾기 어려웠다. 못의 둘레가 그렇게 적은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팝나무 꽃을 보려는 많은 사람으로 인해 오히려 비좁게 느껴졌다.


‘그래, 그러면 그렇지!’


이 좋은 계절에 설마 내만 꽃구경하러 나왔을라고? 부리나케 달려온 모양새만 괜히 머쓱해졌다. 하기야 만원이 된 주차장에서 돌아 나올 때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미처 생각을 못 한 것이다.

결국 서각 마을 어귀까지 올라가 가까스로 차를 댔다.



해발 500m 남짓 될까? 무연 서각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옥교산에 다발로 쏟아지는 봄볕이 뜨겁게 등을 달군다.

한적했다.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에 귀촌을 안내하는 팸플릿이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잘 만들어진 팸플릿에는 무연 마을 만들기로 벌이는 각종 사업이 소개되어 있었다. 다목적 회관을 조성하고 서각 교실과 벽화거리를 만든다는 설명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유인 대책이 세워지지 않는 한 주민들의 힘만으론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양민을 위해 저수지를 만들었다는 위민사상이 다시 한번 발휘되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했다.

예부터 ‘농 자지 천하지대본農者之 天下地大本’이라 했다. 농업은 천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큰 근본이라 하여 그 중요성을 설파하고 장려하지 않았던가?

이는 곧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하면 나라가 안녕하다는 민유방본民惟邦本과 맥을 같이 한다.

국가의 중심에 백성이 있고 그 백성이 국가의 뿌리임을 밝히는 정신이 바로 민본사상이다.

그 핵심 요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이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먹고사는 문제 해결이 우선시되었다. 식위민천食爲民天이라 하여 ‘먹는 것이 곧 백성의 하늘이다.’라고 했다. 백성을 배불리 먹이는 것이 위정자에게는 최고의 가치고 선이었다. 이러한 위민사상이 지금의 열악한 농촌에 당장 적용되어야 할 시급한 일일 것이다.



어르신들이 교통정리를 하느라 곳곳에서 경 광 막대를 흔들었다. 연로하신 몸으로 더 이상 농사일을 할 수 없는 한계도 있지만, 경험을 전수받고 터득해야 할 사람이 없으니 주말마다 이런 일로 소일하는 것이다.

1시간 정도 느린 걸음으로 위양못 둘레길을 걷는 동안 매료된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대가 약간 높은 둘레길 탓에 남으로 펼쳐진 밀밭이 청보리밭과 함께 발아래서 초록 물결을 이루었다.

차일봉과 비봉산을 수면에 빠뜨린 못이 대책 없이 한가롭다. 바람에 날리는 이팝나무 꽃잎이 체면을 구기는지도 모르고 제멋대로 날아다니다 물 위로 주저앉았다.



노쇠한 왕버들의 흐드러진 가지가 물 위로 간당간당 걸쳐서인지 못 가장자리로 짙은 그늘이 졌다.

붐비는 사람과 아름다운 자연을 대하는 빈약한 경건함 외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위양지位良池, 모름지기 백성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저수지에서 위민爲民을 다시 떠올렸다. 사리사욕에 눈먼 것이 아니라 진실로 백성을 하늘같이 섬기는 위정자를 바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고, 그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융성해 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오로지 백성을 위했다는 위양지位良池! 이곳에서 위민爲民의 따끔한 일침을 위정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하루였다. 그런 마음을 알기나 하듯 이팝 꽃잎이 수면위로 다시 남분했다. 숨쉬기 조차 힘드는지 허걱되는 왕버들이 애처롭다. 나무나 인생이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것은 필연이다. 돌아오는 길 옆 청보리밭이 봄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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