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아! 소록도여

붉은 동백

by 강쌍용




고속도로와 국도 그리고 지방도로를 번갈아가며 도착한 고흥반도의 끝자락 녹동항에도 가는 장맛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천형의 섬 소록도가 눈앞에 있습니다. 우산도 받치지 않은 채 우중에 갇힌 섬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시대 다른 얼굴로 이질적인 삶을 견딘 모진 군상들이 가감 없이 들려주는 잔혹한 이야기가 들려오는 듯합니다. 숱한 애환을 말없이 간직하고 있는 섬의 침묵이 서늘한 기운으로 다가옵니다. 때아닌 한기는 비단 순록의 선한 모습 뒤에 가려진 그릇된 선입견을 분별없이 받아들이던 쪼잔한 연유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문둥이의 낙인을 지우지 못한 그들의 슬픈 뒷그림자를 오만한 편견으로 외면했던 자책의 서늘함이라고 말해야 옳습니다.

쓸쓸했던 그들의 실의가 어떠했을지 떠올려 봅니다. 진분홍 동백꽃 모가지가 다발로 뚝뚝 꺾인 것 같은 한숨 소리가 굴복시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원치 않는 질곡의 삶에 모질게 저항했던 그들이 마지막 발악같이 내뱉었을 절규란 또 어떤 것이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합당한 논거도 없이 그들을 터부시하며 배척했던 과오를 단지 무지였다고 변명하는 것은 또 다른 변명을 위한 구실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을 진정 이해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부정하고 싶은 육신에 대한 저주를 안으로 삭이며 온전한 삶을 위해 순간순간 결기를 다졌을 그 섬뜩함이야말 로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진정 그들을 이해하고 보듬어야 하는 명쾌한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시대적 사정이 있었다는 솔직한 자성위에 서로가 더불어 사는 진지한 고민을 다시 해야 할 때입니다. 보듬고 베푸는 온정의 실천은 단순히 너그러움과 인색함의 한계를 구분짓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한 몸을 예사로 뜯어 고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세태를 향해 그들이 던질 것 같은 묵직한 돌 직구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비 내리는 녹동항에서 소록의 침묵을 잠깐이나마 생각해 보는 숙연한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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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집을 돌아 찾아든 장어탕 집에서 시장기를 달래고 나왔지만 부슬비는 여전히 내립니다. 소록대교를 바로 건너면 되지만 호젓한 해안 길을 그냥 지나치기에 너무 아쉽습니다. 유유자적 운전대는 잠두항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 천천히 페달을 밟습니다.

득량만을 끼고도는 리아스식 해변의 절경이 안개비와 어우러져 마치 비현실적으로 연출된 몽환적 세상을 거니는 것 같습니다. 시선을 잠시도 놓아버릴 수 없습니다. 순간의 풍경도 놓치지 않으려는 집요함이 가져다준 선물이라 생각하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기대를 걸고 방문했던 소록도는 아니나 다를까 코로나로 인해 출입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문득 마가렛트 수녀님과 마리안 수녀님이 생각났습니다. 스무 살 남짓 처녀의 몸으로 오스트리아에서 건너와 평생을 소록도 한센인을 위해 봉사하신 천사들입니다. 맨손으로 치료를 하며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한 가족으로 일생을 같이 보냈습니다.

불치라 여겼던 나병과 조용히 맞서 싸우며 문둥이라고 둘러쳤던 견고한 경계의 울타리를 허물어 버렸습니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는 일관된 신념을 그들에게 희망으로 심어 주었습니다.

연로하신 수녀님은 자신으로 인해 오히려 주위에 피해를 주는 것이 염려스러워 조용히 고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요란한 작별도 없이 오실 때 가지고 온 낡은 가방과 “그동안 함께해 주어서 고맙고 행복했다.” 는 편지 한 장이 이별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누가 볼까봐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새벽 바다를 건넜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숭고한 생애의 숨결이 어린 사슴의 섬 곳곳에 배어있을 것입니다.

소록도를 뒤로 하며 아쉬운 미련을 털어버립니다. 어느 날 갑자기 복마전이 되어 찾아든 코로나에 꼼짝없이 잡혀버린 답답한 일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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