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서리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물리지 않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풍덩 소리와 함께 사방으로 물방울이 튀었다. 빨려 들어간 자리로 소용돌이치는 거품이 거센 파도를 일으켰다. 엄청난 가속 때문에 한없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어디까지 내려가는지 알 수 없었다.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가 물속에서도 들렸다. 얼마나 급했던지 벗겨져 나간 고무신이 열 발도 넘게 떨어져 내동댕이쳐 있다. 발바닥이 타는 듯했다. 더이상 따라오지 못한 개가 축강 끝에서 맹렬히 짖었다. 송아지만 한 셰퍼드의 표효에 등골이 오싹했다. 댄마에서 지켜보던 녀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웃옷을 접어 가득 담았던 멸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한참을 어슬렁거리며 짖던 개가 씩씩거리며 사라졌다. 겨우 물 밖으로 나왔다. 녀석들이 건넨 손을 잡고 배에 오르느라 한참 용을 썼다. 정신없이 달렸던 곳에는 아무렇게 꼬꾸라진 멸치가 허옇게 뒹굴었다. 바다로 떨어질 듯 고무 바케스가 축대 끄트머리에서 아슬했다. 줄행랑치는 발길에 차여 몇 바퀴를 굴런 탓이다. 잡아놓은 게마저 전부 도망가버렸다.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다. 어장의 배꾼들이 눈치채기 전에 어서 내빼야 했다.
눈에 빤히 보이는 섬이었다. 예로부터 소나무가 많다 하여 솔섬이라 불렀다. 부지런히 노를 저어가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였다. 바람이 불어 앞 돛을 달면 시간은 훨씬 단축되었다. 게를 잡으러 가는 핑계로 댄마(작은 목선)를 허락받았다. 낙지 잡는 가을철이면 주낙의 미끼로 쓰는 게가 귀했다. 가을걷이로 바쁜 때여서 손이 아쉬운 아버지는 이를 가상히 여겼다. 선뜻 배를 내어 주었지만, 녀석들의 꿍꿍이속은 달랐다. 솔섬에는 커다란 멸치 어장이 있었다. 서너 척이나 되는 큰 대구리 배가 먼 바다로 나가서 멸치를 잡았다. 이라호가 부두로 들어오면 막 삶아낸 멸치를 말리는 그물 발이 더 넓게 늘렸다. 뜨문뜨문 바다풀이 난 모래사장은 삽시간에 멸치 들판으로 변했다. 꾸덕하게 말라가는 멸치는 입맛 당기는 유혹이었다. 게는 축강을 쌓은 돌 틈에 생선 찌꺼기를 미끼로 대충 잡았다. 이때쯤 발 빠르고 간 큰 녀석을 선발했다. 닭서리가 아닌 멸치 서리를 감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이들의 손장난을 예견하고 미리 사나운 개를 풀어 두었다. 이를 감안하지 않은 봉변이었다. 빈 바케스라도 가져가려는 눈빛이 애석했다. 돌아오는 배에서 흩어진 멸치가 자꾸 어른거렸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