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본격적인 여름과 함께 시작되는 우기가 장마다. 길게는 거의 한 달 남짓 물세례를 이고 살아야 한다. 제주도와 중부지방을 오르내리며 비를 뿌리는 광범위한 구름대의 영향이다. 집중호우를 동반한 지루한 비는 가뭄 해갈의 일등 공신이다. 그러나 산사태나 홍수로 인해 일어나는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기상청에서 아무리 정확한 예측을 한다 해도 이상기온으로 번번이 엇나가기 일쑤다. 오죽했으면 그 비싼 장비가 할머니 관절 쑤시는 예보보다 못한다고 타박할까? 그러나 이를 탓할 수 없다. 대표적 기후 특성인 삼한사온이 사라진 데 이어 장마의 시작과 끝을 얼마 전부터 예보하지 않기로 했다 한다. 그것은 그만큼 관측이 힘들 만큼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마는 얼추 6월 하순에 시작해서 7월 하순에 이르면 끝이 난다. 이런 질서를 무시해야 할 정도로 자연은 크게 훼손되고 황폐해졌다는 방증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당장 눈앞의 이익에 매몰된 인간들의 무분별한 이기심 때문일 것이다. 환경보호나 탄소 중립을 말로만 외칠 때가 아니다. 불편을 감수하는 실행이 따르지 않는 한 위기는 계속 가중될 것이다. 미루고 있을 일이 아니다. 모두가 각성할 때이다.
춘 새 끝을 타고 내린 빗방울이 바닥에 동전만 한 홈을 만들었다. 장마철이라 하도 쉴새 없는 빗물에 흙이 팬 흔적이다. 흙이 씻겨나간 마당 골을 따라 탁한 갈색 빗물이 흘렀다. 작년 겨울 이운 지붕의 볏짚이 삭으면서 빗물에 섞여 내린 것이다. 마당 한 귀퉁이에는 막 피어나기 시작한 채송화가 고개를 숙였다. 연분홍 꽃잎이 바닥에 뒹구는 봉선화가 비에 애처롭다. 얕은 바람에 머금고 있던 빗물을 떨구는 해바라기는 여전히 하늘을 이고 섰다. 장맛비가 내리는 날의 조화로운 무료함이다. 종일 비가 내리니 어디 가서 놀 곳이 없었다. 대개 이런 날은 콩이나 보리를 볶았다. 마땅한 간식거리가 없던 시절 빠질 수 없는 진풍경이었다. 기름치지 않은 프라이팬에서 다글다글 튀기는 콩 냄새를 맡노라면 저절로 즐거웠다. 때맞춰 콩 볶는 냄새가 콧구멍을 홀렸다. 가까운 기점이 집이 진원지다. 잠시 후면 틀림없이 사발을 든 기점이가 “오빠야!” 하고 들어올 것이다. 콩보다 기점이 볼 마음에 한껏 기대가 부풀었다. 가슴이 뛰었다. 그러나 해가 져가도 기점은 오지 않았다. 조급함에 쌀 두지만 두드리며 신경질을 냈다. 벌써 저녁밥 짓는 연기가 자욱했다. 삽짝에는 장맛비만 속절없이 추적거렸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