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읽는 밤
저녁을 막 물렸다. 누가 억지로 밀고 들어오는지 찌그러진 양철 대문이 삐거덕거렸다. 아침에 있었던 개구리 소동 때문이었을까 식구들의 눈이 일제히 녀석을 향했다. 낮 동안 또 무슨 사고를 쳤길래, 다분히 의심의 눈초리였다. 술이 큰아버지 산개구리 소동으로 아버지의 일장 훈육이 끝난 후라 긴장이 더했다. 어두워진 이 시간에 마땅히 찾아올 사람이 없었다. 이내 죽담에서 “용이네! 방에 있나?” 하고 어머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밥상을 들고 나가려던 어머니가 다시 상을 놓고 문을 열었다. 앞집 종철이 할매였다. 방에 있던 애들이 우르르 마루 끝으로 몰려나가 인사를 했다. 어른들이 집에 오고 갈 때는 언제나 정중하게 인사해야 한다고 아버지는 늘 가르쳤다. 걱정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확신이 들었는지 아버지가 반갑게 마중했다. 엄마가 방을 좀 더 밝힌다고 호롱불의 심지를 있는 대로 끄집어 올렸다. 까만 그을음이 문틈 새로 들어온 바람을 타고 천장으로 날아갔다. 아버지가 내준 아랫목을 극구 사양하던 종철이 할매가 겸연쩍은 듯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이들은 알아서 작은방으로 건너갔다. 문도 닫히기 전에 아버지가 녀석을 불렀다. 혼을 내던 목소리와 확연히 달랐다.
“좀 더 크게, 또록또록 읽어라! 할머니가 잘 알아듣게!” 아버지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모처럼 녀석으로 인해 느껴보는 뿌듯한 희열 같은 것이 묻어났다. 고향을 떠나 이 작은 섬에 안착하기까지 늘 변방에 머물던 아버지의 지대한 포만감이었다. 잘 읽고 있는 애를 나무란다고 엄마가 곁에서 쏘아붙였다. “아이구, 잘 들린다.” 하며 종철이 할매가 손사래를 쳤다. 문맹의 답답함이 해소되는 벅찬 순간에 약간의 불편함은 대수가 아닌 듯 엷은 미소를 지었다. 별 내용도 없는 편지는 언제나 비슷했다. ‘이곳에서 몸성히 잘 있으니 어머니도 걱정 마시고 잘 계십시오.’ 너무 뻔해서 싱겁기까지 했다. 그러나 종철이 할매는 아들의 편지를 들으며 눈물을 글썽였다. 할매가 왜 눈물을 흘리는지 까닭이 궁금했다. 가물거리는 호롱불이 기척에 자꾸 팔랑거렸다. 목에 잔뜩 힘이 실린 아버지가 “한 번 더 읽어드려라!”하고 채근했다. 종철이 할매도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잠시 부스럭거리더니 깜박했다며 주머니에서 눈깔사탕 몇 개를 내놓으셨다. 글자가 아까보다 훨씬 크고 선명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읽는 내내 말을 더듬었다. 사탕 쪽으로 자꾸 눈이 쏠렸기 때문이다.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