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장날
구두 닦아라. 윗도리 내오너라. 지갑 챙겨라. 음바 쪽에서 도선 소리가 들리는데도 아버지의 단장은 끝나지 않았다. 아침 내내 분주했다. 어디 갈 사람이 미리 단도리를 해야지, 저래 난리를 친다고 어머니의 핀잔이 쏟아졌다. 평소 입을 일이 별로 없는 외출복은 늘 서툴렀다. 도선이 거의 당도할 무렵이 돼서야 허겁지겁 부두로 뛰었다. 아버지의 얼굴에 벌건 열이 뻗쳤다. 달리면서도 윗도리에 단추를 잠그느라 제대로 뛰지 못했다. 도선을 타고 모처럼 육지로 나가는 외출은 언제나 시작부터 요란했다. 5 일장이다. 읍내에서 5일마다 서는 장날이다. 이런 날은 미뤄둔 일을 한꺼번에 봐야 했다. 장에 가는 길에 우선 목수간에 들러 배를 살펴야 했다. 며칠 전에 어장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배 옆구리의 타락이 내려앉았다. 이를 수리 하기 위해 배를 맡긴 것이다. 선구점도 거쳐야 했다. 저번 장날 살려다 만 등판의 등도 몇 개 사야 했다. 간발의 차이로 도선에 오른 아버지의 호흡이 거칠었다. 도선을 모는 웅갑이 선장님 배려가 없었다면 놓칠 뻔했다. 가까스로 숨을 내쉬는 아버지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이렇게 익숙하지 않은 아버지의 외출은 늘 불편하고 어색했다.
도선은 불과 20여 분 남짓이면 육지에 닿았다. 이발까지 하려면 한나절로는 시간이 빠듯했다. 더군다나 읍내 장에서 막걸리라도 한잔하려면 바쁘게 서둘러야 했다. 요즘처럼 마을버스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10리나 되는 흙길을 걸어서 오르내리는 일은 그 자체로도 버거웠다. 목수간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같이 걸어갈 동료도 없었다. 이런 날은 장이 서는 읍내까지 당도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었다. 아버지에게 장은 특별히 볼일이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물건 팔 일이 없기도 하거니와 구해야 할 물건은 이곳에서 다 해결할 수 있었다. 기껏해야 배나 어장에 필요한 물건 말고는 딱히 살 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의 장마당은 늘 부두의 마을이었다. 어쩌다 만나는 친구와 반갑다고 기울이는 술자리는 항상 몇 차례 돌아야 끝이 났다. 모처럼 머리에 포마드 광까지 냈으니 술잔이 얼마나 가벼웠을까? 그동안의 노고를 잊는 일종의 청량제였다. 거나한 취기는 질기게 들러붙은 가난의 굴레를 잠시 뿌리치는 의도된 일탈이었는지 모른다. 장날은 그렇게 시름을 달래는 아버지의 날이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면 저벅거리며 삽짝을 들어오시던 아버지의 갈지자걸음이 그립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