묏등의 신문고
미처 눈도 뜨기 전이다. 먼동이 막 트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부터 난잡한 욕지거리가 묏등에서 울려 퍼졌다.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에는 독기가 잔뜩 실려 있었다. 듣고 있으면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중얼거리는 듯하다가도 이내 목이 터지라 외는 소리는 처연했다. 딱히 대상이 정해져 있지도 않으면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삿대질은 동네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어떨 때는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그 자리 퍼지고 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 그렇게 동네를 아수라장으로 몰아넣으면서 억울함을 달랬다. “도대체 무슨 일이고?” 뜻하지 않는 고함에 골목으로 불려 나온 사람들이 쑥덕거렸지만, 내막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렇게 묏등에서는 연례 행사처럼 통곡 같은 목청이 때때로 들려왔다. 사는 동안 누구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을 한 번씩 당한다. 억울하다는 것은 자기 의사에 반해서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모함이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던 그것에 따르는 분노의 유발은 피할 수 없다. 돌덩이 같은 무게가 가슴을 억누르면 당사자는 견디기 힘들다. 이렇게 답답한 상태는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그것이 깊어지면 마음의 병이 생기는 것이다.
동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묏등은 억울한 심정을 알리는 곳으로 제격이었다. 일종의 신문고 자리인 셈이다. 조선 태종 때 대궐의 문루 높은 곳에 종을 달았다.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은 종을 쳐서 억울함을 알렸다. 일종의 민원 창구였다. 신문고를 울려서 왕에게 직접 문제 해결을 호소하는 제도였다. 이날 동네의 핫이슈는 당연히 이른 아침 묏등에서 울렸던 신문고 소리였다. 그렇게 욕지거리를 퍼부었으니 양심에 찔린 범인이 나타날 거라고 다들 기대했다. 그러나 저녁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신문고의 내막은 저녁 밥상에서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배 물 칸에 넣어둔 대왕문어가 간밤에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힘들게 잡은 것을 누군가 훔쳐 갔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범인을 모르니 욕이라도 퍼부어야 화가 풀릴 것이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진 것은 제대로 닫지 않은 뚜껑 때문이었다. 스스로 빠져나간 문어를 두고 범인 탓만 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부주의만 만천하에 알린 꼴이라고 혀를 찼다. 어쨌든 묏등은 신문고 역할을 톡톡히 했다. 억울함을 풀어줄 그나마 공개된 장소였다. 독기어린 욕쟁이 할매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