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타작

by 강쌍용

보리타작


허공에 원을 그린 도리깨가 보릿단 위로 작렬했다. 한치의 사정도 배려 않는 완벽한 타격이다. 매몰찬 두드림에 숨을 곳을 찾지 못한 낱알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한쪽에서는 스르릉스르릉 탈곡기가 쉼 없이 돌아갔다. 보리타작이다. 집채만 한 보릿단을 지고 내려온 아버지가 주전자를 입에 대고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탈곡기 소리와 도리깨 치는 부산함으로 타작마당은 마치 오일장같이 북적거렸다. 6월 이맘때면 보리타작이 한창이었다. 마늘과 양파 수확까지 한 테 겹쳐 열손이 보태도 표가 나지 않을 만큼 바빴다.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도우라고 거의 한 주를 가정의 날로 지정해 주었다. 일이 바쁘고 일손은 부족하니 아이들 작은 도움도 아쉬운 시기였다. 더군다나 물때에 맞춰 어장일까지 해야 하는 아버지에게는 노동의 과부화가 걸린 연속의 날이기도 했다. 보리를 베면 먼저 타작마당으로 날라야 했다. 지게에 얹은 보릿단을 지고 좁은 들길을 따라 옮기는 일은 고됐다. 누가 대신해 줄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일이었다. 고단한 가장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가는 길이었다. 발을 잘못 딛거나 짐이 기울면 몸의 중심을 잡느라고 애를 먹었다. 비틀거리고 가면서도 끝내 무거운 짐은 내리지 않았다.

낟알.png


도리깨가 쉼 없이 보릿단을 두들겼다. 일정한 박자로 휘둘리는 도리깨 살이 휘~리릭 바람을 갈랐다. 한 대씩 얻어맞고 꼬꾸라지는 누런 보릿대가 오뉴월 따가운 햇볕에 반질거렸다. 허리가 잘리거나 옆구리가 터진 몰골은 처참했다. 그럴 때마다 꾸역꾸역 보리알을 토해냈다. 도리깨가 지나가면 꺼죽뿐인 보릿대를 걷어냈다. 덕석 위로 수북이 쌓인 보리알갱이가 허기를 달래듯 올망졸망했다. 꼭두새벽부터 숫돌에 낫을 벼리고 지게 끈을 새로 훑이는 등 바쁘게 서둔 결과물이었다. 알곡을 담은 나무바가지를 자루에 쏟아부으면 뿌연 겨 가루가 함께 일었다. 배를 채운 마대는 주둥이를 야무지게 묶어 아버지가 또 집으로 날랐다. 까꾸리로 끌어낸 보릿대를 아이들이 날랐다. 낟가리를 쌓는 아버지의 등에 땀이 베어 맨살이 훤히 비쳤다. 지치고 힘들어도 내색 않는 아버지는 언제나 강하고 미더웠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허투루 하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흘리는 땀만큼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는 언제나 아버지를 주눅 들게 했다. 어디서 기인하던 가난을 단박에 끊어낼 방도는 없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보리타작의 낟알은 모처럼 위안이었다. 반주로 드신 막걸리 한 사발에 아버지의 얼굴이 벌겋게 익어 갔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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