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릿한 순간이다. 날 보는 그녀들의 눈길. 한 평도 안 되는 요금소에 갇혀 늘어진 테이프처럼 인사하는, 그녀들을 위한 나의 이벤트이다.
처음 집을 나설 때부터 작정했다. 오늘은 그녀들에게 내 모든 것을 보여주리라.
내 취미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술에 취한 듯 몽롱한 환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눈을 뜬 채 꿈을 꾸기도 하고, 졸다가, 혼자 달리고 있는 차에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난 모든 것을 차 속에서 한다. 반지하 쪽방에서 생활하는 것은 겨우 서너 시간, 나머지 시간은 모두 차 안에서 보낸다. 부족한 잠도 자고, 은밀한 일들도 그 안에서 해결한다. 교회에 갈 때를 제외하곤 거의 모든 시간을 차에서 보낸다. 난 이렇다 할 직업이 없다. 굳이 직업명을 붙이자면 대리운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처음엔 택시를 몰았지만, 떨어지는 돈이 3만 원도 안 되는 택시보다는, 밤에만 반짝 일해도 5만 원 이상 버는 대리운전이 나아 이 일을 하고 있다.
술 취한 놈들을 태우고 다니다 보면 배알이 뒤틀리는 상황도 많다. 종 부리듯 쌍욕을 해대는 놈들도 있고, 같이 탄 연놈이 정사를 벌이는 일도 있다. 물론 그런 일이 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그런 것은 로또를 맞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어제가 바로 그런 날이었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에 세븐에서 호출이 왔다.
장거리다. 잘 모셔!
52조가 휴대폰을 집어넣으며 입맛을 다셨다. 충주시청에서부터 발목이 예쁜 여자를 뒤쫓던 중이었다.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여자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발목이 예쁜 여자는 전에도 많이 봤던 여자였으니까. 룸살롱 씨엘에 나가는 여자였다. 물고 있던 담배를 길바닥에 던지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대리 운전하고부터 생긴 버릇이다. 이전부터 있었던 버릇이긴 하지만 고착됐다고 해야 할까. 골목의 전봇대가 최적의 장소다. 전봇대를 등지고 벽을 향해 오줌을 내갈겼다. 만취한 손님을 상대하려면 준비성이 있어야 한다. 술 취한 인간들은 어떤 돌발 상황을 만들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네를 잘못 가르쳐 주거나, 시시각각으로 변덕을 부려서, 서너 시간을 길바닥에서 헤맬 수 있다. 대리운전 초기에 팽팽해진 오줌보를 채여 방광이 터질 뻔한 적도 있었다.
백미러 속에서 여자는 남자를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세븐에서 제일 잘 나가는 여자였다. 그들은 충주 교외에서 밤을 보낼 예정이었다. 클럽에서부터 몸이 달았을 남자는 치근대며 여자의 속살을 훔치고 있었다. 여자는 좋은 듯, 싫은 듯 모호한 몸짓과 소리를 내며 남자를 달아오르게 했다. 연수동을 벗어나 남한강을 건널 때 여자가 남자에게 입술을 내주었다. 남자에게 입술이 포개진 여자가 작위적인 신음을 냈다. 여자의 머리카락 속을 헤매 다니던 남자의 손이 여자의 가슴으로 내려갔다.
다릿재 터널을 지날 때 내비게이션이 방향을 가리키자 남자의 손이 여자의 오른쪽 젖가슴을 움켜쥐며 속살을 더듬어 꺼냈다. 여자가 자지러질 듯 교성을 내질렀다. 웃음이 나올 만큼 과장된 소리였다. 52조는 아랫도리가 단단해짐을 느꼈다. 당장이라도 꺼내 어루만져주고 싶었다. 52조는 음악을 켜며 낮게 신음했다.
다릿재 터널을 지나자 다시 박달재 터널이 나왔다. 검은 숲 속에서 입 벌리고 있는 한밤의 터널은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아가리 같다. 움직임 없는 두 개의 눈동자 같기도 했다. 드문드문 지나는 차들은 형체를 가진 물체라기보다는 짐승의 안광에 가까웠다. 두 개의 백광으로 다가왔다가 적광이 되어 사라져 갔다. 박달재 터널을 나오며 52조는 속도를 줄였다. 관음을 좀 더 오랫동안 즐기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정사는 곧 극에 달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사 외에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52조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성기를 꺼냈다.
모텔, ‘숲’에 도착하자 52조가 차문을 열어 주었다. 남자의 품에 안겨 비틀거리는 척을 하던 여자가 52조를 쏘아보며 낮게 욕했다.
변태 새끼!
52조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욕설에 당황하긴 했지만 보여주는 것에 희열을 느끼는 자신으로선 목적을 달성한 셈이었다. 갑자기 여자의 엉덩이가 확대되어 보였다. 팽창한 자신의 성기가 둥실한 엉덩이 사이로 돌진하는 환상이 보였다.
모텔로 들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52조는 모텔 뒤 숲으로 들어갔다. 바지를 내리고 똥을 누며 52조는 자신의 성기를 주물렀다. 행복감이 밀려왔다.
지숙이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심심해서였다. 8년 전, 각각 고등학생과 중학생이던 딸과 아들은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더는 엄마가 필요하지 않다는 듯 엄마의 손길을 거부했고 문을 닫아걸었다. 지숙도 독립을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우연히 본 모집공고는 솔깃했다. 70만 원 남짓한 돈이었지만 용돈벌이로는 괜찮다 싶었고, 빈 시간을 자유로이 쓸 수 있다는 것이 좋았고, 3일마다 쉴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그것은 서류상으로만, 그리고 표면적으로만 내세운 것이었다. 8년째 일해도 임금은 제자리였고, 일은 해마다 늘면 늘었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주변 화단 가꾸기, 쓰레기 줍기, 화장실 청소, 환경미화 등 그때그때 관리들이 시키는 일들을 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밤샘 근무로 인한 만성피로 때문에 3일에 한 번씩 쉬는 비번은 무의미하기만 했다.
지숙의 모니터 옆엔 20가지가 넘는 CS평가 항목들이 붙어있다. 지숙은 틈만 나면 이 항목들을 읽으며 숙지한다. 평가에 걸려 해고되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고객이란 이름의 싹수없는 인간들과의 분란을 피하기 위해서이고, 팀장과의 불필요한 언쟁이 귀찮아서이다.
1. 작업대 위에 두 손을 모아 올린 채, 허리를 90도 돌려, 차창 밖 고객에게 눈을 맞추며 목례를 한 뒤, 활짝 웃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한다.
2. 두 손으로 공손히 돈을 받고, 두 손으로 친절하게 영수증을 건넨다.
3. 화사해 보이는 메이크업(잡티가 보이면 안 됨)과 단정한 머리 모양을 해야 한다.
4. 목소리를 크고 높게 해야 한다.
5. 고객이 들어오기 전에 고개를 내밀어서 그 사람과 눈을 마주쳐야 한다.
6. 차의 뒤꽁무니까지 봐야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항목들이 많다. 나가는 차의 꽁무니를 봐야 하는데 다음 차가 들어오기 전에 고개를 내밀어서 눈을 마주쳐야 한다니, 금붕어라면 모를까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뿐 아니라 앞으로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90도로 돌리라는 것은 관절이 분리된 인형이 아닌 이상은 불가능한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허리 관절을 틀어, 입구로 들어서는 차의 운전자와 눈을 맞춘다. 닭 모가지처럼 길게 늘어난 지숙의 목에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