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톨게이트 2.

2. 그 일이 있기 전, 톨게이트

by silvery rain 이혜영

뭐지? 그게 첫 느낌이었다.

일상적이지 않은, 예측할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불쾌감도 느낄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 있다. 삶에는 그런 것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안정감이라는 단어를 마음 편히 쓸 수 없다.

처음 이곳에 배치되었을 때 전임자로부터 A4용지 한 장을 받았다. 종이에는 차번호와 차종, 차주의 인상착의가 메모되어 있었다. 그 차들이 언제쯤 이곳을 지나는지에 대해서도 명시되어 있었다. 용지를 무심코 받아 들었지만, 차번호에 죽죽 그어진 빨간색 엑스자로 보아 좋은 번호들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내 생각은 들어맞았고, 전임자와 직원들의 흥분된 보충 설명이 있은 후 그것은 명확한 것이 되었다. 그 번호들은 노출증이 있는 변태들의 차였다.


내가 다니던 여학교 주변에도 노출증 환자가 있었다. 그런 변태들을 환자라는 단어로 불러도 좋을 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그들은 즐기기 때문이다. 시선을 즐기고, 경악을 즐기고, 공포를 즐긴다.

늘 우리들의 등교시간에 맞춰 차를 닦던 택시기사가 있었다. 우리들은 그 남자를 '언덕 위의 왕자님'이라고 호칭했다.

언덕에 위치한 학교에 가려면 등이 축축해질 만큼 땀을 흘려야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등이 축축해질 무렵, 사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차를 닦고 있는 남자.’ ‘휘파람을 불며 열심히도 닦고 있네.’ ‘자기 차를 굉장히 아끼나 보다.’ ‘즐거워 보이네.’ 풍경과도 같은 하나의 장면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남자의 행동이 날 생각하게 만들었다. 옆을 지나려던 순간 차 닦기에 열중해있던 남자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난 그것이 어떤 행동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남자를 비켜 지나가려 했다. 그러나 남자가 날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 내 쪽으로 돌아선 남자의 손엔 연체동물 같은 성기가 쥐어져 있었고, 그 성기는 다급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좋은 시력에 비해 그런 쪽으로는 눈이 밝지 못했던 나는 그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채지 못했다.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만 직감적으로 들었을 뿐.

그날 이후로 난 남자의 성기와, 그것을 쥐고 흔들던 손놀림과, 휘파람 소리를 잊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난 이곳에서 그런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된다.


한 평 남짓한 요금소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다. 이 세 개의 출구 사이로 차량들이 통과한다.

요금소 직원의 근무 시간은 하루 여덟 시간, 3교대 근무다. 새벽 여섯 시부터 낮 두시, 오후 두 시부터 밤 열 시까지, 그리고 밤 열 시부터 이튿날 새벽 여섯 시까지다. 출근하면 모두 비슷한 패턴으로 일을 시작한다. 동전, 고무줄, 영수증 롤, 근무 기록장 등을 챙겨 근무 가방에 넣어둔다. 집합하라는 호출이 떨어지면 회의실에 앉아 지시사항을 듣는다.

지시사항의 대부분은 참을성에 관한 것들이다. 고객이 욕을 해도 참아야 하고, 쓰레기를 던져도 참아야 한다. 동전이 날아와 얼굴에 박혀도 참아야 하고, 고객의 침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도 참아야 하는 것이다. 회의가 끝나면 자신이 들어갈 요금소 번호를 확인한 후 교대 시간에 맞추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톨게이트 요금소에서 일한 지 3개월째. 3개월이면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적응이 되기는커녕, 이 일은 하경에게 늘 새로운 긴장감을 준다. 이곳 근무자들은 대부분 주부들이다. 젊은 아가씨들은 거친 운전자들 때문에 오래 다니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삶의 질곡과 연륜 덕분에 어지간한 일에는 끄떡도 하지 않지만, 그런 질곡과 연륜을 가진 주부들도 당황케 할 만할 일들이 이곳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하경이 휴학하고 일거리를 찾아 거리를 배회할 때는 돈만 많이 주는 것이면 아무거나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아무거나’에도 제약이 따랐다. 그것에 대한 핑계는 하경의 엄마가 제공해 주었다. 엄마가 있기 때문에 하경은 아무거나에 발 담글 수 없었다. 엄마에 대한 사랑이 깊어서도 아니고, 자신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 헌신적이어서도 아니다. 책임감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엄마가’라는 자책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일정량의 급여가 나오고 일 년여 가까이할 수 있고,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혼자 부스에 앉아 돈 받고 건네주는 이 일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푼돈 벌자고 하루 종일 서빙할 필요도 없고, 컵 닦고 접시 닦으며 손 부르틀 일도 없고. 괜찮은 자리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53 나 787X 경차.

주로 여자들이 타는 차다. 긴장감이 이분의 일로 줄어든다. 차종과 색깔을 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물론 근거가 없긴 하지만 우리들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윈도가 내려간다. 다행히도, 여자다.

안녕하세요?

여자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먼저 건네는 인사를 들으면 고마움에 가슴이 두근거릴 때도 있다.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건네자 여자가 과자 봉지를 건넨다.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밝은 웃음을 보낸다. 이런 사람들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헛된 희망을 품어본다.


77 버 94X2 승합차.

주로 남자들이 타고, 장거리를 자주 다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차다. 짐을 싣고 다닐 일이 많은 사람이거나, 여행을 많이 다니거나, 가족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지저분한 차의 상태와 유리에 비친 앉은 키로 보아 남자다.

유리창이 열리고 남자의 얼굴이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어, 수고!

유들유들한 얼굴이 웃으며 인사한다. 유난히 웃음기 가득한 남자의 표정에 반사적으로 경계심이 든다. 통행권을 정산하는 내내 신경이 쓰이지만 그렇지 않은 척한다.

청하라... 이름 좋네! 조선족인가?

아뇨.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이름 멋지네! 청하 씨, 우리 차 한 잔 할까? 청하 한 잔 하면 더 좋고. 나 청하 무지하게 좋아하는데.

거스름돈과 영수증을 건네자 남자가 손을 잡으며 능글맞게 웃는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손을 빼며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한다.

뻣뻣하긴! 못 생겨가지고!

기분이 상한 남자가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급가속을 해 사라진다.


60 마 4X70 중형차.

열린 창문으로 소리 없이 흰 손이 나온다.

안녕하십니까?

네…….

귀찮다는 듯 짧은 대답이 끝을 흐린다. 마주 인사해주면 자신의 가치나 지위가 하락되기라도 하는 것일까? 흰 손을 가진 여자는 억지 대답을 하며 통행권을 내민다. 나 역시 기계적으로 거스름돈을 건넨다.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건넨 내 손에 뭔가가 쥐어진다. 쓰레기다.

미안하지만, 이것 좀 버려줄래요?

‘미안하지만’ 이란 문구에서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거절하고 싶지만 뒤탈을 생각해 참는다. 그런 사람도 있었다. 쓰레기는 휴게소에서 버려주십시오,라고 말했더니 창문 밖으로 쓰레기를 던져 버리고 간, 그런 사람.


62가 40X4 소형차.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생글생글 친밀감 있게 웃는 얼굴이다. 40대 중반에서 50대 사이의 아줌마라 불리는 사람이다. 마주 웃어주며 정산을 한다.

어머! 나 임청하 좋아하는데...

네에.

임청하처럼 얼굴도 예쁘시네.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임청하. 궁금해서 찾아보니, 강단이 있어 보이는 중국 여배우였다. 나쁘지 않았다.

65다 36X0 SUV.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경상도 억양의 남자가 만 원권과 함께 통행권을 내민다. 얌전해 보이는 인상이다. 남자의 옆에는 여자 일행이 있다.

7300원입니다.

저, 죄송한데요. 얌전한 인상이 소심한 어조로 말을 건넨다.

예?

이 근처에 큰 마트 있습니까? 이마트 같은.

단양에는 없고 제천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시간쯤 걸립니다.

그럼, 거기 말고 다른 마트는 없습니까?

농협 있습니다. 30분 정도 걸립니다. 우측방향으로 나가시면 됩니다. 길게 늘어선 뒤차들의 눈치를 보며 안내를 한다. 좀 비켜주면 좋겠다는 눈길을 보낸다.

그래요? 그럼........

내비 찍어라. 내비. 뭘 자꾸 묻노? 바쁜 사람한테.

나와 눈이 마주친 옆 좌석의 여자가 눈치 빠르게 남자를 채근한다.

아, 예. 감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남자가 껌 한 개를 내민다. 감사히 받아야 할지, 사양을 해야 할지 잠시 갈등하다 웃으며 받는다.

52 조 X69X 검은색 준 중형차

차가 서서히 선다. 앞 차가 시간을 많이 소비하면 다음 차는 급제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언짢음의 표현이다. 이 차의 운전자는 성격이 느긋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도 모르니까 욕먹을 준비를 하며 긴장한다. 검게 선팅 된 앞 창문이 내려간다.

안녕하십니까?

의례적이지만 좀 더 정중함을 담아 인사를 하자 남자가 통행권을 건넨다. 요금을 정산하는 내내 남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뭐지? 간절함을 담고 있는 저 눈빛은? 절박함이 담긴 눈빛이다. 왜 저러지? 흘낏 남자를 내려다본다.

‘옷도 희한하게 입었네.’라고 생각한다. ‘검은색 양복을 입었는데, 바지는 살색이네?’라고. 그러다 갑자기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듯 얼굴이 달아오른다. 남자의 손이 날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고등학교 때와 똑같은 양상.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갈망과 애처로운 손놀림. 10초가량의 짧은 시간 동안 남자는 자신의 중요한 곳을 보여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다. 혹시라도 내가 자신을 보지 못할까 봐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정산기에서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영수증과 거스름돈을 내미는 나에게 남자가 말을 건넨다.

손이 안 닿는데요.

성기를 주무르던 손이 내 손에 닿는다. 놀라 손을 빼자 남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요금소를 빠져나간다.

52조가 매연만 싸질러놓고 꽁무니를 내뺀 후에도 하경은 남자의 성기를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한다. 52조의 성기와 고등학교 때의 성기가 겹쳐지며 동일시된다.


하경이 다음 차의 거스름돈을 떨어뜨린다.

다음 손님에게는 영수증을 건네지 못하고,

그다음 고객들에게는 인사도 건네지 못한다.


“오늘 ‘바바리맨’ 왔었다며? 너 많이 놀랐겠다. 괜찮아?”

유니폼 상의의 단추를 풀며 도미가 묻는다. 도미의 가명은 동미다. 이름을 기억해두었다가 사무실로 전화해 추파를 던지거나 성희롱을 해대는 운전자들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다. 도미의 물음에 하경이 고개만 끄덕인다. 청하는 하경의 가명이다.

“빌어먹을 새끼가 왜 하필 너한테 왔다니?”

김수진이란 명찰을 달고 있는 지숙이 사물함의 문을 신경질적으로 닫는다.

“맞아! 우리 지숙 언니한테 왔어야지!”

도미가 빙글빙글 웃으며 팔꿈치로 지숙의 옆구리를 건드린다.

“어머, 야! 나는 뭐 그런 놈 보는 거 좋아하는 줄 아니?”

“아니, 그런 놈이 언니 같은 배짱을 만나야 그거 빠지게 달아나지!”

“염병할 놈! 그냥 확, 자지를 잘라버려야 돼.”

“맞아! 그런 놈들 나타나면 꼬추를 잘라버려야 돼. 그런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 천정에서 가위가 자동으로 스윽 내려오는 거야. 자동감지센서가 달려있어서 그게 보이면 확! 잘라버리는 거야. 어때?”

“아우, 야!”

“왜?”

“더럽잖아! 그거 누가 치우라고!”

“그건 또 그러네.” “근데, 너 저장했어?”

남자에 대한 힐난과 조롱을 끝으로 도미가 하경에게 묻는다.

“아뇨.”

“왜 안 했어?”

“그냥. 놀라서.”

“하긴! 나도 첨엔 그랬다. 그게 잘 안 되더라. 그리고 요즘은 그 새끼들이 CCTV가 있는 걸 아니까, 누르기 전에 잽싸게 창문 올리고 내빼더라. 쥐새끼 같은 놈들.”

“다음엔 놀라지 말고 잘해. 그런 놈들은 무시하는 게 젤 좋아. 약간 비웃는 표정을 지어주면서 무시하면 뻘쭘해하더라. 좆도 쬐끄만 새끼가 어디 우리 임청하한테 까불어! 죽을라고.”

하경이 씁쓸한 표정으로 웃는다.

keyword
이전 02화[장편소설] 톨게이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