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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단어들 05화

다시, 봄

by 박정훈

미타테見立て. 다시 봄이라는 뜻의 일본어 단어가 다시 떠오른 것은 동네 수육집에서 늦은 저녁을 먹을 때였다. 집집마다 하나씩 흔하게 있었던, 그러다 유행에 밀려 대문 밖에서 한뎃바람을 맞는 모습 역시 흔하게 보였던 자개장, 그 장의 문짝 하나가 식당 모퉁이 한쪽에 액자처럼 걸려 있었다. 위아래로 길어 수묵화를 배접한 족자 같았다고 하는 게 더 어울리는 표현이겠다. 그 문짝에는 검정을 배경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빛깔을 미묘하게 바꾸는 소나무와 두루미의 어울림이 새겨져 있었다. 다채롭다 할 수도, 모노톤이라 할 수도 없어 미묘하다고밖에 묘사할 수 없는 색이자 빛이었다. 그 문짝에 눈을 고정한 채 밥을 먹었다. 자개장의 문짝을 하나의 작품으로 다시 본 주인장의 안목에 경의가 일었다. ‘할머니 방의 유물’로 불리는 오명과, 그에 앞서 가구라는 원래의 용도를 잊게 한 그 안목에 말이다.


‘미타테’를 알게 된 것은 일본 다도의 완성자라 불리는 센노리큐千利休에 대해 이것저것 알아보는 과정에서였다. 그는 화려하게 빛나고 값비싼, 당물唐物이라 불리는 차도구들 대신에 농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먹먹한 색조의 잡기들을 다도의 자리에 대수롭지 않게 꺼내놓았다. 이 물건이 어디서 온 것인지, 이 물건의 원래 쓰임새가 무엇인지에 개의치 않았다. 다른 이들의 시선과 평판을 살피지 않았음도 물론이다. 본디의 출처와 용도를 잊고 다시 봄에 온 맘을 기울인 까닭이다.


미타테. ‘보고 판단하다’ ‘고르다’ 등의 뜻을 가진 동사 ‘미타테루見立てる’의 명사형인 미타테를 문자 그대로 풀어 견見 옆의 서다는 뜻의 입立에 유의한다면 서서 본다는 의미가 된다. 見은 견해라는 더 너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입立 역시 입장이라는 더 나아간 뜻을 품고 있으니 어떠한 입장이나 상황에서 보는가에 따라 보는 바와 그에 대한 견해, 의견, 생각이 달리 생긴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보는 것. 남들이 보는 자리에서 비켜나서, 다들 그렇다 하는 견해에서 벗어나서 보는 것. 사물의 키가 낮다면 서 있는 내 몸을 그대로 낮추어 눈높이를 같게 하고 잠자코 보는 것. 매일 같이 보는 것이라고, 그래서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이라고 안일한 마음과 식상한 눈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유심히 보는 것. 그렇게 보면 다시 보인다. 물건의 형태, 빛깔, 질감 같은 외형적이고 감각적인 것뿐만 아니라 쓰임새 역시 다시 보인다. 하찮은 것을 귀하게 사용하게 될 수도, 귀한 것을 무심하게 다루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무용無用의 미덕을 발견하게 될지도, 더 나아가 무용과 유용의 분별을 넘어서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디 물건에만 해당할까. 우리가 지나고 있는 시간도, 우리를 담고 있는 공간도,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까지 다시 보인다. 혹, 서게[立] 되는 건 본다는 행위가 아니라 나와 나 자신을 둘러싼 모든 걸 새롭게 보려는 의지일까.


알맹이가 빠져 쓸모 없는 울퉁불퉁한 조개껍데기를 그 형태와 무용에 눈을 두지 않고 미묘한 빛깔이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원천으로 다시 본 이. 껍데기를 갈고 마름질하고 닦아내 보석으로 탈바꿈시켜야 하는 다단한 수고를 기꺼이 받아들인 이. 그이가 가만히 서서 물끄러미 보고 있던 것에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흔한 것이라 부르는 많은 것들은, 늘 지나치지만 단 한번도 오랜 눈길을 주지 않았던 그 흔한 것들은 흔하지 않은 눈으로 다시 봄에 의해 애초에 태어난 것들이리라. 이 세상 아무데나 있으나 아무렇게나 나온 것 하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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