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그치고 나니 예상했던 대로, 아니 기대했던 대로 지난 몇 달 간 몸과 맘을 축 늘어지게 했던 한더위가 비구름과 더불어 물러나고 한기 섞인 바람이 솔찬히 불어온다. 그리움의 대상이 반드시 고향이 아니어도 된다는 넉넉함을 허용한다면 계절을 그리워 하는 마음에도 향수鄕愁라는 단어를 붙여도 될까. 하물며 그 계절이 가을이라면야.
수愁. 근심, 시름, 슬픔, 원망… 을 뜻하는 글자이지만 수愁와 묶인 단어들을 살펴보면 단순히 슬픔이라고만 칭할 수 없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배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인 향수鄕愁, 깊이 스며든 서글픈 마음인 애수哀愁,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의 마음인 여수旅愁, 시름에 잠겨 있는 마음인 우수憂愁. 그 복잡미묘한 감정의 근원을 쓸쓸함, 또는 그리움이라 하면 어떨까. 그것도 가을[秋]에 찾아드는 쓸쓸한 마음[心]이라면, 가을을 못내 그리워 하는 마음이라면.
수愁는 흔히 추수 후의 세곡稅穀에 대한, 또는 가을 다음에 찾아오는 긴 추위에 대한 걱정 등을 뜻하는 글자라 한다. 다분히 농경사회를 염두에 둔 글자 원리의 해석이지만, 어쩌면 농민들을 대하는 식자층의 자의적 관점에서 나온 해석일지도 모르지만, 너무도 삶의 고단함만을 담은 듯한 시선이어서 글자의 섬세한, 더 나아가 삶의 섬세한 면모가 그 고단함의 그늘 속에 가려져 있는 듯하다. 그 어둑한 곳에 다른 눈길로 은은한 빛을 드리운다면 가을의 마음, 즉 수愁의 신중한 뜻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을걷이를 다 마친 빈 논과 밭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 세 계절 동안 땀방울 쥐어짜고 몸뚱이 갈아가며 소출을 만들어 낸 뿌듯함 이후 홀연 닥쳐오는 헛헛한 마음. 그리고 다시 돌아올 계절들, 뿌리고 가꾸고 거두어들이고 비워낸 계절들을 기다리는 마음. (허나 이러한 계절들을 지내고, 이러한 마음들을 갖게 되는 게 어디 비단 농부들만의 일일까.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이라는 논밭을 일구고 사는 농부들일 터인데.) 이 마음들을 가을의 마음, 차마 그리움이라 불러본다. 향수, 애수, 우수, 여수… 이 단어들에 배경처럼 펼쳐져 있는 그리움의 정서, 가을의 외로운 심정.
쓸쓸하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은 모든 걸 비워냈기에 의지할 대상이나 보람으로 여길 만한 것이 사라진 상태를 말한다. 그런 텅 빈 마음을 지닌 채 가을의 한복판에 허허로이 서서 기나긴 겨울의 스산함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그 마음이, 가을의 마음이 곧 그리움이라 한다면 이 또한 나의 자의적인 시선일까. 허나 겨울과 같이 매몰찬 계절이라 해도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기어이 거쳐야 할 수순임을 깨달아 차라리 그리움의 시간으로 삼는다면, 그 앙상한 계절에도 미소하게 나마 온기와 수분을 간직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