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 써서 빗어 넘긴 머리, 먼지 한 톨 내려 앉지 않은 광나는 검은 구두에 더블 자켓 정장, 남탕 스킨로션 냄새가 아닌 뭔가 좀더 고급스러운 향, 그리고 존댓말. 아직까지 기억에 선명한 고교시절 과학 선생님에 대한 몇 가지 인상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숙제는 집에서.”
반말은 당연하거니와 욕설도 (더불어 폭력도) 일반인 남자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존댓말을 듣는 건 참으로 신선했고 그 이상으로 감동적이었다. 간단히 말해, 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였을까. 나와 반 친구들은 다른 수업시간에 비해 유독 과학시간에 조용했다.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어 지루한 나머지 딴짓과 잡담의 유혹이 수시로 일었음에도 우리 모두는 졸지언정 조용했다. 그런 선생님에게도 엄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숙제였다. 숙제를 안 해도 혼났지만, 숙제를 집에서 하지 않고 학교 와서 쉬는 시간에 부랴부랴 해도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해 똑같은 체벌을 받았다. 물론 체벌 역시 인격적이어서 우리는 그에 걸맞게 인격적으로 응했다. 쉬는 시간에 한 숙제를 집에서 했다고 거짓으로 말하는 학우들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숙제를 집에서 하지 않았다면 쉬는 시간에 했더라도 정직하게 벌을 받았다. 그 원칙이 정당했기 때문이다.
숙제를 집에서 해야 하는 이유는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단 한 가지였다. 숙제는 영어로 homework이고 문자 그대로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농담 같기도 한 이 원칙 이외에 다른 이유가 있었을 법도 하지만 나에겐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었다. 어쩌면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것 자체를 중히 여긴 건지도 모르겠다.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라는 것.
이렇듯 고교시절의 일화가 다시 떠오른 것은 잘 숙宿에 ‘별자리’라는 별개의 뜻이 있다는 걸 새삼 알게 되면서다. 별자리를 일컫는 성수星宿라는 단어를 찾으면서였다. 밤하늘의 별이 덩그러니 떠 있는 게 아니라 잠을 잔다고 생각해서 숙宿이라고 한 걸까? 단순히 별의 자리, 별자리가 아니라 별이 잠드는 자리라 여겼기에 숙宿이라 표현한 것일까? 별 성星 자와 가장 잘 어울릴 법한 숙宿의 뜻이 ‘자다’ ‘묵다’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숙宿 옆에 붙어 있는 다른 글자에 눈이 갔다. 제題. 한 단어로 숙제.
제題의 여러 뜻을 살펴본다. 제목, 글 쓰다, 물음. 그러니 숙제는 잠자는 곳에서 쓰는 글, 혹은 잠자는 곳에서 구해야 하는 물음이 된다. 사전은 이렇게 풀이한다. “복습이나 예습을 위해 집에서 지어 오게 하거나 풀어 오게 하는 문제.” “두고두고 생각해 보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 두고두고에 눈길이 간다. 숙宿의 한 가지 뜻인 묵다는 일정한 곳에 머무른다는 의미 말고도 묵은지의 경우처럼 오랫동안 그대로 남겨 둔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묵혀 답을 구하는 것도 숙제가 된다. 인생의 숙제라든가, 평생의 숙제라는 관용어는 아마도 두고두고 묵히다라는 뜻을 받아들인 표현이리라.
숙제의 뜻이 이러하니 쉬는 시간 10분만에 도시락 까먹 듯 해치우는 걸 숙제했다고 억지 부릴 수는 없는 일이다. 숙제의 진한 뜻을 우리 학생들에게 알려주려고 집에서 하지 않은 숙제를 아예 하지 않은 것과 같게 여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선생님 스스로 그 참뜻을 깨우쳐 홀로 실천했을 거라는 점은 우리들을 대한 그 정중한 외모와 언행을 보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더불어 여전히 오늘에도 그 뜻을 실천 중일 거라는 믿음도. 왜냐하면 문제는 비단 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곳곳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