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와 AI로 시작하는 소설 습작기

by 드림그릿 박종숙

"운명 위에 내 몸을 태우는 것, 그것이 기록이 가진 진짜 힘이다."


한동안 제 일상의 든든한 파트너는 MKYU 다이어리였습니다. 세련된 딥 브라운과 초록색 커버를 든 채 카페에 앉아 있으면, 왠지 내 삶이 근사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자부심마저 들곤 했죠. 하지만 작년 한 해를 돌이켜보니 빈 페이지가 보였다.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다이어리는 책상 한구석에서 잠잠히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하죠? 12월 중순, 새해 준비를 위해 다시 찾았을 땐 이미 모든 수량이 품절되었더군요. '늘 거기 있겠지' 하는 안일함에 예약 판매 기간을 놓쳐버린 겁니다. 아쉬운 대로 남은 공책에 기록을 이어가려 했지만, 마음 한 편의 허전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운명처럼 김익한 교수님의 '연간 이룸 다이어리'를 만났다. 이미 유튜브를 통해 기록의 힘을 역설하시는 교수님의 철학에 공감하던 터라, 작성법 영상을 보며 고민한 끝에 결국 결제 버튼을 눌렀다. 조금 늦은 감은 있지만, 어제부터 기록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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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라 의욕이 앞선 나머지 글자가 칸을 넘치기도 하고, 남들의 멋진 기록법을 흉내 내다보니 금세 지저분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결심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철저히 나를 위한 기록을 하자."


작년에 품었던 소박하지만 원대한 꿈 하나, 바로 문예지 등단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새롭게 시작한 강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매일의 일상조차 기록하지 못하는 마당에 '소설'은 그저 사치스러운 욕심처럼 느껴졌다.


사실 저는 소설을 즐겨 읽는 편도 아니었다. 인문학이나 자기 계발서 위주의 독서를 해왔고, 소설이라는 장르를 한때는 가볍게 치부하기도 했죠. 그런데 왜일까요?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꾸만 '내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고 싶다는 갈망이 멈추지 않았다. 가까운 가족에게도 선뜻 내비치지 못했던 이 마음을, 아이러니하게도 AI에게 털어놓았다. 판단하지 않고 묵묵히 들어주는 존재에게 꿈을 던져놓으니 비로소 길이 보이는 듯했다.


그동안 익숙했던 ChatGPT나 Gemini를 넘어, 이번에는 클로드(Claude), 노트북 LM(NotebookLM), 젠슨파크(Genspark) 같은 낯선 도구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사실 AI와 대화하는 것도 상당한 에너지가 듭니다. '어떻게 질문해야 핵심을 찌르는 답변을 얻을까?' 고민하며 화면을 응시하다 보면 금세 기운이 빠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 멋진 도구를 외면하기엔 제 갈 길이 너무 멉니다. 전문적인 작법 교육을 받지 못한 제게 AI는 최고의 협력자이자 친구가 되어줍니다. AI와 협업하며 저는 세 가지 태도를 배웠다.


주도권은 나에게: 글은 결국 내가 쓰는 것. AI는 막힌 곳을 뚫어주는 조력자일 뿐입니다.

무비판적 수용 금지: AI의 답변을 덥석 받기보다 나의 색깔을 입히는 과정이 필수입니다.

겸손하게 배우기: 내 글을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시도하고 피드백받으며 성장하기.


AI와 머리를 맞댄 끝에 매력적인 소재들을 추려냈다. '도서관 반납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엘리베이터 안의 풍경'. 거창한 사건은 아닐지라도 가장 나답고 내가 잘 아는 공간에서 시작해보려 합니다. 여러 번의 습작 끝에 언젠가는 소설이라는 결과물이 내 손 위에 놓이길 기대해 본다.


"도전하지 않으면 올해도 '소설 나부랭이'조차 써보지 못하고 핑계만 대며 살아가겠지."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적어둔 이 문장을 매일 아침 되새긴다. 목표를 잊지 않기 위해 수첩을 펼치는 이 순간, 저는 이미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떼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안의 바람과 욕망에 깨어있는 채로 계속 써 내려가는 힘이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바를 기록하고 다듬다 보면, 어느덧 내 바람과 딱 맞닿는 '운명적인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운명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는 자에게 오지 않는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그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끊임없이 준비해야 한다.


내가 바라는 삶과 관련된 역량을 키우고, 그 과정을 스스로 인지하며 '준비된 운명' 위에 내 몸을 태우는 것, 그것이 기록이 가진 진짜 힘입니다. 운명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와 사회의 흐름 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온다. 즉, 운은 네트워크를 통해서도 온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확인하고 기록할 때, 비로소 그 꿈에 응답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제가 오늘 AI라는 낯선 도구와 손을 잡고 다이어리에 소설의 첫 문장을 적어 내려가는 것 역시, 새로운 네트워크를 향한 간절한 시도이다.


여러분의 새해 다이어리에는 어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 담겨 있나요? 서투른 시작을 응원하며, 저와 함께 기록의 힘을 믿어보시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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