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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Jan 13. 2023

상처가 별이 된 '제제'

사랑의 말..


[이 세상에 '제제'처럼 아픔을 겪은 아이들이 적어지길 소망한다.]

'나의 오렌지나무'라는 제목이 낯익어서 이 책을 다 읽은 줄 알았다. 이번에 이 책을 다시 읽게 되면서 '제제'의 이야기에 푹 빠졌다. 한 소년의 아픈 성장과정을 적은 책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특히 제제아버지가 왜 자신의 아들에게 그토록 매질을 가했을까? '제제'는 '글로리아' 누나나 엄마, 남동생 '루이스'를 제외하면 어느새 가족들로부터 맞고 사는 소위 동네북이었다. 아빠는 가사의 뜻도 모른 체 노래를 부르는 '제제'를 혼내준다고 벨트로 죽기 직전까지 패고, 손위 누이인 잔디라는 자신의 동생을 힘들어 못 때릴 때까지 패기도 한다. 직장을 잃은 제제아빠, 남자친구와 싸운 잔디라에게 제제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냥 화풀이 존재였을까?


제제가 좋아하는 뽀르뚜가 아저씨와 함께 강변에 놀러 갔을 때, 강가에서 실컷 물장난을 치며 노느라 옷이 더러워지자, 뽀르뚜가는 "점심을 먹기 전에 일단 옷을 벗고 물가에서 좀 씻고 오라!"라고 말한다. 제제가 머뭇거리자 어리둥절해하는 뽀르뚜가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벗은 몸을 보여준다. 온갖 구타로 인한 멍과 상처 자국이 가득한 몸을 보여준다. 그 몸을 보고 뽀르뚜가는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제제는 겨우 5살 어린아이 일 뿐이다. 영특해서 5살에 글을 깨우쳤고, 험한 말을 할 때도 있지만 아버지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구두를 닦아 돈을 벌기도 하는 의젓한 아이였다. 그런데 제제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어떠한 존재였기를 바랐을까?


나도 자녀를 키우면서 항상 좋은 말과 행동만 한 것은 아니다. 남편에 대한 분노를 딸에게 표현하거나 계속 내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릴 때 히프를 아프게 때린 적도 있었다. 어리석게도 딸이 빨리 철들기를 바랐던 것 같다. 마음은 아프지만 부모니까 훈육할 수 있고, 회초리를 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제'가족이 겪는 경제적인 어려움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만큼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는 가지만 그 선을 넘어선 제제아버지의 모습은 학대 그 자체였다. 어린 제제 가슴에 새겨진 아버지의 그늘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더 글로리]라는 드라마를 시청했다. 주인공인 '문동은'은 고등학교 시절 그녀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잔인한 학교폭력과 고문을 당한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하다 결국 자퇴를 하게 된다.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동은'은 온 생을 걸어 자신을 괴롭히던 학교 폭력 가해자들을 응징하기 위해 철저하고 치밀한 복수를 감행한다는 스토리이다.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자꾸 생각난다. '동은'을 좋아하는 성형외과의사 '주여정'에게 그녀는 학폭으로 생긴 그녀의 몸의 상처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녀의 몸을 보고 너무 끔찍해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복수가 성공하길 응원했다.


학대든 학폭이든 한 사람의 영혼을 부서지게 만드는 일은 어느 누구도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결말에는 '제제'의 몸이 회복되고, 제제아버지는 취직이 된다. 그는 '제제'에게 자신의 이해를 구하며 앞으로 크리스마스 선물도, 가족여행도 많이 다니자고 말한다. 그러나 '제제'는 마음속으로 외친다. '... 저 사람은 내 아빠가 아냐..'


살아오는 동안 감사하게도 누군가로부터 이해가 되지 않은 학대를 받거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 당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다. 부모님은 허용적인 편이었고, 오히려 언니가 나를 훈육하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 말 안 듣다가 언니한테 들켜 혼날까 봐 줄행랑을 쳤다. 그런데 끝까지 따라온 언니한테 잡혀 매를 맞은 적도 있었다. 언니는 직장과 결혼으로 우리 곁을 떠났지만, 무섭게 대해도 잘해주는 언니를 참 좋아했다. 그러나 갑자기 고3 때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나의 상황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혼자 이겨내기에는 난 단단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 터널을 지나오면서 내가 엄마가 된다면 내 자녀는 사랑도 주지만 단단한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에 딸을 낳았다. 딸을 키우면서 훈육을 전제로 엄격하게 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태도는 남편과 갈등의 소지가 되었다. 소위 효자에 속하는 남편은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지금도 매일 부모님께 전화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남편은 부모의 엄격함으로 힘들었던 유년 시절을 토로한다. 1남 2녀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을 것 같은데 혼낼 때는 심하게 맞기도 했다고 한다. 간혹 그 상처를 드러내는 남편을 보면 자녀에게 엄격하게 대할지라도 감정적으로 아이를 때리는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사춘기를 지나오기까지 우리 부부도 조금씩 성장해야만 했다. 서로 다투기도 하고 비난도 했지만, 때론 용서를 빌었고 새롭게 배우면서 그 시간들을 견뎌낼 수 있었다.


'제제'가 가족과 힘든 시기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 아닌 '밍기뉴'와 '뽀르뚜가' 덕분이었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밍기뉴'라고 불리는 라임 오렌지나무가 있고, 발에 심한 상처를 입은 '제제'를 데려가 치료해 주고 함께 여행도 같이 떠나기도 했던 뽀르뚜가도 있었다. 제제에게 따뜻함과 사랑의 소중함을 가르쳐 준 뽀르뚜가를 친아버지처럼 여기며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내던 어느 날, 뽀르뚜가는 열차와의 교통사고로 죽게 되고 이 일로 제제는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고 병이 난다. 제제는 생애 첫 이별을 통해 슬픔을 경험하면서 점차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제제'는 자신을 착하다고 믿는 어른들에게 심한 장난을 치지 않는다. 잘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어긋날 때가 있다. 내 자녀가 성장하기까지 주위의 많은 분들의 기도와 사랑이 있었다. 영어를 포기할 뻔했던 딸은 자신을 믿어주는 선생님이 계셔서 영어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보다 내 딸의 가능성을 믿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인 글이다. 저자가 어린 시절의 잊고 싶은 기억들을 드러내어 글을 쓰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쓰다 보면 조금씩 우리 마음속 깊이 감추어진 이야기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된다. 나 또한 글쓰기를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드러낼 때마다 아프지만 치유를 경험했다. 이제 '제제'가 겪었던 상처는 별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많은 울림을 남기는 작품이 되었다. 꼬마 '제제'의 사랑스러움과 가슴 아린 슬픔, 애잔함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다. '제제'에게 넌 태양이라 별들이 네 주변에서 빛나게 될 거라고 말해주던 에드먼두 아저씨의 말처럼 그는 브라질의 작은 마을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전 세계에 빛나는 인물이 되었다. 누군가 믿어주는 그 한 사람의 힘을 알기에 딸의 내면을 살필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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