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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Jan 27. 2023

너는 뭐가 되고 싶니?


어릴 때 엄마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바라셨다. 그 당시 엄마의 삶이 많이 원통하셨던 것 같다. 자신의 딸이 법관이 된다면 자신의 팔자도 바꿀 수 있다고 믿으셨다. 물론 그 꿈은 오래가지 않았다. 공부보다도 놀기를 좋아하는 철없는 딸의 모습에 일찌감치 그 마음을 접었으리라. 나이가 자라감에 따라 나의 꿈도 조금씩 변해갔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따뜻한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좀 더 커서는 외국회사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이런 딸의 꿈을 엄마는 묵묵하게 언제나 지지해 주셨다.


사실 내가 꼭 이루고 싶은 꿈, 지금도 아직 진행 중인 꿈이 있다.

지금도 그 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중학교 영어수업 시간이었다. 한창 영어에 흥미가 생겨 공부할 때인데, 선생님이 영어로 나의 장래희망을 물어보셨다.

"What do you want to be in the future?"

준비된 답은 아니었지만 영어실력이 짧다 보니 생각난 단어를 끄집어내어 유창하게 대답했다.

"I want to be a good mother."


반 친구들은 선생님이나 교수, 의사, 화가 등 멋진 직업을 말하는 데 나의 대답이 신선했는지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듯, 그때부터 나의 꿈 목록에는 '좋은 엄마'되기가 추가되었다. 아마 그 시절 아빠의 부재로 어린 마음에 아름다운 가정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보다. 불편한 아빠와 엄마 홀로 애쓰는 사랑보다 온전한 가족이 그리웠다. 때론 과분한 사랑을 주시기도 했지만, 내 안에 '제제'가 말하는 악마가 들어있었던 것일까? 엄마의 따뜻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사춘기를 겪으면서 많이 반항하고 투정을 부렸다. 삐딱한 나의 말과 행동에 엄마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긴 세월을 지나 딸을 낳고 '엄마'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얻었지만, 늘 죄책감에 시달렸다. 딸의 이른 사춘기를 겪으며 남편과 딸로 인한 힘든 시간을 겪을 때마다, 어릴 때 엄마 속을 썩이더니 '벌 받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죽음과 이별에 대한 장면을 보면 감정이입이 되어 매번 서럽게 울어댄다. 이렇게 울다 보면 어느새 엄마를 생각한다. 작년에 우연히 딸의 문제로 상담을 신청했다가 딸의 시간이 맞지 않아 내가 상담을 받게 되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은 딸과의 갈등이 나의 부모와 해결되지 않은 죄책감이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기존의 상담과 다르게 이번에는 방에 놓인 다양한 모양의 작은 인형들을 사용하여 상담이 진행되었다. 먼저 나의 부모와 형제, 남편과 딸, 나와 닮은 꼴의 인형을 골라 배열해 보라고 한다. 인형을 놓는 배열 자체만으로도 나의 마음이 보인다고 하셨다. 모노드라마 형태로 상담도 진행했다. 내 앞에 놓인 엄마 인형과 나의 인형을 놓고 역할을 바꿔가며 대화를 했다. 상담 선생님은 엄마가 살아계셨다면 하고 싶었을 말을 다 해보라고 했다. 엄마가 내 앞에 있다는 상상만으로 눈물을 흘리며 울먹거리자 선생님이 대신 엄마가 되어 주셨다. 다행히 잘 준비된 선생님과의 상담은 그동안 내 안에 깊숙이 박혀있던 아픔을 꺼내어 보듬어주었고 때론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상담이 끝나고 테이블을 보니 눈물과 콧물에 범벅된 휴지가 어찌나 많은지.. 지금도 꺼이꺼이 울던 그때가 생각난다.


기억하기로 10살 때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졌던 엄마에게 아빠의 외도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을에서 많은 사람의 입방아를 겪으며 감내해야 했던 엄마의 그 마음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자신의 자리를 차버리고 나오지 않으셨다. 우리에게 깨끗한 호적을 물려주셨다. 아빠는 긴 세월 지나 엄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딸인 내게, 용서를 빌었다. 결국 엄마는 winner였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지만 어떻게 자녀를 양육해야 할지 고민한다. 부족하기에 기도하지만, 그냥 배운 데로 내 감정에 충실하게 딸을 대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난 공사 중이다. 마지막 평가는 딸이 내릴 것이다. 다만 조금이라도 딸이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


예전에 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경이감을 주었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난다. 어느새 나이가 든 '노먼'이 홀로 강물에 발을 담근 채 낚시를 하는 장면인데, 노먼의 말이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사랑했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거의 떠났다.

 제시마저 떠났다.

 하지만 다들 내 마음속에 있다.

 대단한 낚시꾼이 되기에는 너무 늙었지만 친구들의 만류를 마다하고 넓은 강에서 홀로 낚시한다.

 어둑해진 계곡에 홀로 있으면 모든 존재는 희미해져 나의 영혼과 기억에 합쳐진다.

 블랙풋 강물 소리와 네 박자 리듬도 합쳐지고

 물고기가 튀어오리라는 희망도 마찬가지다.

 결국,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한다..


 흐르는 강물처럼

 대홍수로 만들어진 강은

 아주 먼 옛날부터 바위를 타고 흐른다.

 어떤 바위는 끊임없이 비를 맞았다.

 바위 아래에는 말씀이 있고

 말씀의 일부는 그들의 것이다.

 나는 강물에 사로잡혔다."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


사랑해서 돕고 싶어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무엇을 주어야 할지, 아무리 애를 써도 거절당하기도 한다. 그때 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롯이 이해할 수는 없지만 오롯이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엄마가 내게 주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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