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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그릿 박종숙 Jun 11. 2023

시인을 만나다.

"언니! 한번 봐요. 날 잡아서.."


우리 아파트 근처에 사는 지인이자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집사님의 카톡을 받았다. 서로 바쁘다 보니 가까이 살아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만나기로 한 날이 토요일 오후 5시다. 함께 동네 주변을 걸을 생각이었는데, 그녀가 '세종호수공원'으로 가자고 해서 급기야 차를 타고 장소를 옮겼다. 낮에는 약간 더웠지만 늦은 오후가 되니 살살 바람이 불어서 쾌적한 느낌을 주었다. 호수공원이 그리 먼 길이 아님에도 가족과 함께 이곳을 걸어본 지 오래되었다. 호수 위로 펼쳐진 아름다운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사람들이 쉴 수 있도록 작은 공간을 곳곳에 만들어 놓아서인지 여유롭게 쉬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신선한 바람과 향기를 맡으면서 걷다가 작은 카페에 들어갔다. 음료를 시킨 후 호수가 잘 보이는 바깥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둘 다 말없이 고요한 호수 공원을 바라보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참 좋지요. 언니! 세종시는 참 아름다운 장소가 많아요"라며 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네.. 우리 자주 오자~"라고 화답했다.


어느새 홍시처럼 이쁜 색깔을 지닌 태양이 내일 보자며 인사하듯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 고요한 호수 주변에는 젊은 남녀가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강아지 줄에 이끌려 걸음이 빨라진다. 근처 공연장에는 곧 있을 공연 준비를 하느라 음향 소리가 들린다. 굵고 탄탄한 바리톤 소리가 우리의 귀를 기울이게 하더니 곧 장고 치는 소리에 우리의 어깨도 신명 난다. 

난 바보처럼 살아온 걸까! 이런 대자연이 주는 포근함을 자꾸 잊어버린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리 좋은 곳이 많은데 직장과 집만 맴도느라 거의 오지 못한다. 이런 내가 은퇴 후 시간이 난다고 해도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 푸르른 자연을 좋아하지만 혼자 산에 가거나 여행을 한 적은 손꼽을 정도다. 물론 근처 동네를 걷거나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생동감을 얻을 수 있다. 우리 옆집에 사시는 아주머님은 간호사이신데 '암'이 걸리신 후 아침마다 규칙적인 걷기와 산행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동안 사느라 바빠 건강을 못 챙겼는데 건강을 한번 잃고 나니 돈도 일도 예전보다 욕심이 덜 생긴다고 한다.

시인인 그녀는 어떤가!! 요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편은 서울에서 착실하게 직장을 다니고 있고,  딸은  대학 기숙사에 있다 보니 집에 잘 내려오지 못한다고 한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외롭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행복한 그녀도 지난 아픈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을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 예전에는 일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자신의 서재 방을 만들어 놓고 필사도 하고 시도 쓰면서 보낸다고 한다. 내가 꿈꾸던 널찍한 나무 책상에 앉으면 창문 바깥으로 바로 산도 보이고 새소리가 들리니 그 자체가 힐링이 된다고 한다. 최근 주민센터에서 배운 기술로 예쁜 가방을 만들었다며 보여주는데 너무 근사해 보였다. 이제는 건강 챙기며 편안하게 살고 싶다니 그녀는 전생에 덕을 많이 쌓았나 보다~

그래서인지 그녀를 만나면 나도 쉼을 얻는다. 함께 걷다 보면 걷는 데 바쁜 나와 달리 주위에 핀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들여다보고 사진 찍고 좋아한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보게 되면 "난 왜 이리 마음이 바쁜 거지!"라며 질문하게 된다. 이럴 때는 은퇴 후 무언가 하려는 초조한 마음조차도 다 내려놓고 쉬고 싶다. 대학 졸업 후 지금까지 육아휴직 2년 이외에는 거의 쉰 적이 없다. 쉬는 것이 익숙지 않거나 어떻게 쉬어야 할지 잊어버린 것 같다. 쉼이 있어야 다시 살아갈 용기도 생기는데 말이다. 

그녀 덕분에 잘 쉬었고, 이제 쉬고 싶으면 이렇게 시간을 내서 걸으면 된다. 시인의 삶이 솔직히 부럽긴 했지만 감동은 되지 않았다. 그 길이 다 옳고 행복한 것은 아니니까.  앞으로 각자의 주어진 삶을 살아나갈 것이고 건강해질수록  다른 사람을 돕는 일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함께 걸어가야 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다들 그 길을 찾아가길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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