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는 알페 디 시우시를 3시간 정도 걷고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세체다까지 잠깐 들렀다가 내려왔더니 시간은 이제 갓 오후 3시를 지나고 있었다. 때는 8월 초. 아직 해가 저물려면 시간이 꽤 남았던 터라 갈등이 일었다. 이대로 볼차노에 있는 숙소로 돌아가 쉴까. 아니면 다른 곳을 더 들렀다가 갈까.
그녀에게 의중을 물었더니 걷는 것만 아니라면 괜찮다는 답변이 돌아왔고, 그러자마자 떠오른 건 카레짜 호수였다. 주차장에서 걸어야 5분 거리라고 했고, 또 호수 자체가 크지 않아서 오래 걸을 걷도 없다고 했으니 숙소 가는 길에 겸사겸사 들러보자 그런 얄팍한 생각에서였다. 사실 만약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거였다면 아예 생각도 못했을 일인데 자동차로 이동하는 바람에 떠오른 욕심이었다.
어차피 가는 거라면, 멋진 길도 좀 둘러보고 호수도 보고 그렇게 하나라도 더 챙겨보자고. 그리하여 구글내비게이션에 카레짜 호수를 찍고 오르티세이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날은 맑았고, 가는 길도 아름다웠다. 구불구불 이어진 가르데나 패스의 고갯길과 높고 뾰족뾰족한 산봉의 군락이 시야에 걸릴 때면 아, 이게 자동차 여행의 묘미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기쁨은 얼마 가지 못했다. SS242 도로와 SS243의 갈림길에 들어섰을 때, 차량이 서서히 많아지기 시작하더니 카레짜 호수로 통하는 카나제이 방면 SS48 도로는 엄청난 차들로 멈추어 서버린 탓이었다. 오르티세이를 출발할 때만 해도 카나제이를 통과해 카레짜 호수까지 가는 건 넉넉잡아 1시간 20분이면 된다고 나왔지만, 그건 함정이었다. 늦은 오후 그 길은 극심한 정체구간이었으며, 차량이 다른 곳으로 빠지는 것도 요원했다.
여기까지 와서 이런 차량 행렬을 겪을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 물론 성수기에 돌로미티는 사람도, 차도, 자전거도 많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이렇게 피부로 체감하게 될 줄이야. 결국 3시간 가까이 걸려 카레짜에 도착했다. 그나마 늦은 오후 맑은 하늘 아래에 반짝거리는 호수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고생하면서 온 보람을 느낄 수 있었던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