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쏘룽고와 산타 막달레나 - 계획적인 듯 제멋대로인 듯

by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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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은 1년 전부터 준비했다. 항공사 마일리지로 비행기 티켓을 끊기 위해서였는데, 유럽은 15년 만이고 또 한 달 넘게 떠나는 장기 여행도 오랜만이라 이리저리 찾아볼 것도 공부할 것도 많겠거니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여행을 시작할지, 어디를 마지막으로 할지도 항공권을 구매하면서 이미 결정해둔 터였다.

이탈리아로 들어가서 스페인으로 나와야지. 15년 전 첫 나홀로 여행이자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방문했던 곳이 이탈리아와 스페인이었고, 가장 아쉽게 기억되는 나라기도 해서 그녀와 여행 해야지 생각했을 때부터 마음 먹은 곳이기도 했다. 일정 역시 일찌감치 정해두었다. 8월 초 성수기에 시작하는 만큼 무조건 미리 숙소를 정해둬야 저렴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4년 여행을 23년부터 부지런히 계획하고 준비했을 만큼 나름대로는 오랜만에 떠나는 유럽을 꼼꼼하게 챙겼다고 자부했다. 떠나기 전 미리 교통편도 찾아보고, 입장권이 얼마인지도 찾아보고, 예약해야 할 곳들도 미리미리 체크해두고 시기가 오면 하나씩 처리했으며 어느 포인트에서는 뭘 봐야하는지도 다 해놨으니 이만하면 된 거지 싶어서. 그런데 막상 돌로미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또' 그 병이 도졌다.

분명 계획표 대로라면 전날 세체다와 알페 디 시우시 그리고 산타 막달레나를 갔어야 했는데 제멋대로 중간에 카레짜 호수를 끼어넣었고 이번에는 사소룽고를 즉흥적으로 추가한 것이었다. 덕분에 코스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어제 갔던 페소 셀라를 오늘도 다시 가는 그런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염두에 두지 않았던 사쏘룽고는 독특한 지형과 유쾌한 케이블카, 풀잎을 뜯는 소의 딸랑딸랑 워낭 소리가 즐거운 여행지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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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쏘룽고로 올라가는 2인용 케이블카. 좁고 긴 모습이 꼭 연필통 같이 생겼는데, 정말 딱 두 사람만 탑승이 가능하다. 그나마도 앉아 갈 수는 없고 서서 가야하는데 워낙 비좁다 보니 자리 배치도 꽤 중요하다. 그녀와 나는 서로 풍경을 보기 위해서 등을 지고 섰는데 가끔 바람이 불 때마다 겁이 많은 그녀가 무서워하기도 해서 좀 걱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디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 분명 그녀를 즐겁게 했으리라 장담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꽤 추웠던 케이블카 승강장에서 몇 장이나 인증샷을 남기지는 않았겠지. 비록 좀 비계획적인 목적지였어도 동행이 만족했다면 나쁘지 않지 싶었다. 물론 그게 나의 오만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그때는 그랬다.


사쏘룽고를 내려와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타구사(Tagusa)라는 곳으로 왔다.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산타 막달레나라는 곳으로 이탈리아 돌로미티 석양 포인트로 유명하다. 구글 내비도 산타 막달레나라고 치면 나올 정도니 어쩌면 전세계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장소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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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를 마치고 조용하고 작은 동네를 산책하듯 걷다가 보면 푸른 언덕과 흰 선봉우리와 세모난 지붕과 탑이 매력적인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여기가 사진을 찍는 포인트는 아니기에 더 걸어야 했는데, 이때부터 또 그녀의 눈치를 살살 봐야했다.


어제 무리했던 그녀는 허리가 아파서 오늘도 늦게 일정을 시작했지만 통증이 완화되지 못했다. 그랬기에 30분 이상 걷는 걸 버거워했고, 이탈리아 돌로미티의 늦은 오후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지점까지 가는 내내 힘들어 했기 때문이었다. 즉흥적으로 움직인 여파가 이렇게 돌아올 줄 알았다면 좀 더 신중하게 굴었어야 했건만 하고 후회해도 늦은 일. 힘들어 말이 없어진 그녀와 마침내 원하는 곳에 도달했을 때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더랬다.


가만히 서 있는 것도 아파하는 그녀를 더 무리하게 할 순 없어서 오들레 산군이 붉게 물드는 시간까지 기다리고자 했던 계획은 포기하고 일찌감치 다시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늦은 오후의 부드러운 볕 아래 따스한 색감으로 물든 풍경이 참 예뻐서 오기는 참 잘 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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