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볼차노 숙소에서 체크아웃 한 후 오르티세이를 스쳐 지나가 파소 가르데나와 파소 포르도이 길을 신나게 달렸다. 날은 여전히 맑고 쾌청했으며, 적당한 바람이 불어와 드라이브 하는 기분을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덕분에 다소 아쉬울 수 있었던 이탈리아 돌로미티 서쪽과의 이별도 가볍게 지나칠 수 있었다. 제법 구불거리는 길을 달리는 건 꽤 신나면서도 스릴을 느끼게 하고는 했다. 이런 순간마다 나는 느끼고는 한다. 내가 정말 운전을 좋아한다는 걸. 그런 내게 이토록 원없이 운전해 볼 수 있는 기회란 꽤 설레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며칠 간 쉬지 않고 오갔는 데도 힘들지 않았느냐 물었을 때 단숨에 '즐겁다'고 말할 수 있었으리라.
차가 꽤 많은 라가주오이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돌로미티를 여행할 때 빼먹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바로 슈퍼 썸머 카드이다. 얼마나 여행하느냐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는 이 패스는 돌로미티 전역에 있는 케이블카과 곤돌라, 리프트 등을 무한으로 탈 수 있는 것인데, 가격이 꽤 비싸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이용해서 '뽕'을 뽑을 수 있다고 했다.
라가주오이도 그런 과정에서 잠시 들린 곳으로 정상 꼭대기에 있는 라가주오이 산장까지는 경사가 꽤 되는 빨간색 케이블카를 탑승하게 된다. 신기하게도 케이블카 출입문은 직원이 수동으로 개폐해주어야 했으며, 승객이 어느 정도 차기 전까지는 기다리는 여유가 필요했다.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아 케이블카가 오르기 시작했고 금세 멈추었다.
세체나와 알페 디 시우시에서 보았던 것과 또 다른 느낌을 주는 풍경은 끝내줬다. 뭐라고 해야할까. 서쪽이 깍아지른 듯한 날카로움이나 섬세한 느낌을 지녔다면 동쪽에서 처음 마주친 풍경은 웅장하면서도 준엄한 분위기를 풍겼다. 같은 지역임에도 이토록 느끼게 다른 수 있다는 것도 이탈리아 돌로미티가 지닌 매력이려니 싶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산장 카페에서 약간 출출하여 커피에 빵 하나를 사서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보내는 시간도 꽤 괜찮았다. 문제는 다음에 있었다. 두번째 목적지였던 친퀘토리에 갔는데 도저히 주차할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널찍한 공터에 내 차 하나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수가! 이곳에서 처음으로 8월 성수기의 사람 많음을 체감했다.
미련이 남아 한 바퀴 더 돌았다가 결국 포기하고 코르티나 담페초로 향했다. 그곳에서 독특한 맛의 사슴고기 스파게티와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로 점심을 해결하고, 마트에 들러 물과 맥주 납작 복숭아를 산 채 아우론조 산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하루를 숙박하고 다음날 돌로미티 동쪽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트레치메 트래킹을 할 계획이었다.
산장 체크인을 끝내고 카디니 디 미주리나를 가기 전, 잠시 또 그녀와 조율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번 통증이 일어난 허리는 도통 나을 생각이 없었기에 갈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녀는 이번에는 같이 가는 것을 택했다. 아마도 내가 보여주었던 카디니 디 미주리나의 풍경에 홀딱 넘어간 게 아닐까 싶었다.
길도 그다지 험하지 않아서 쉬엄쉬엄 걸어서도 1시간이면 금세 원하는 장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내 욕심은 그보다 30분은 더 걸어서 이른바 '핫플' 이라는 지점까지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그건 가만히 내려놓았다. 이렇게 바라보는 풍경도 참으로 장관이니 충분히 만족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