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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다시 시작 : 새 직원과 호흡 맞추기

호주 19 주차(23.11.24.~23.11.30.)

11월 24일(금)
내가 추천했던 새 직원이 오는 날.
새 직원은 환한 미소와 함께 아침 일찍 가게에 도착했다.
이것저것 알려줄 것도 많고, 들어오는 손님 응대도 해야 하고 정신없는 아침이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새 직원이 잘 따라와 줬다.
부담 갖지 말고, 하나하나 배우면 된다고 말했지만 그녀가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나 역시 알려줄 게 많다 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제대로 된 체계 없이 일을 가르치는 게 배우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지난밤부터 머릿속으로 어떤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줄지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그녀가 과연 이 일을 즐길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그래도 직업을 구했다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아 다행이다.
오늘 같이 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주말에 푹 쉬고 다음 주에 보자는 긴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하루 마무리.

11월 25일(토)
날씨가 너무 좋아서 바다 보러 다녀왔다.
호주에 오고 나서는 바다에 가는 것을 좋아하게 됐다.
어쩌면 그동안 바다를 싫어했던 것은 바다 그 자체가 싫었다기보다 한국의 사람으로 꽉 찬 해변을 거닐기 싫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강아지 키우고 싶은데 키울 여건은 안 되고, 그런데 강아지는 보고 싶어서 강아지 입장이 가능한 해변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반려인들이 강아지들을 데리고 해변에서 놀고 있었다.
대형견들은 주인이 던지는 공을 갖고 오는 걸로 노는데 마음이 급했는지 한 강아지가 저 멀리 걸어가는 주인을 놓치곤 우리한테 공을 던져달라며 발 밑에 자꾸 공을 갖다 놓았다.
주인의 허락받고 몇 번을 던졌는데도 자꾸 우리한테 오길래 결국 주인이 공을 가지러 올 정도.
처음 호주에 왔을 땐 대형견이 너무 많아 무서웠는데 하도 마주쳐서 그런가 이제는 무섭지 않다.
기본적으로 사람에게 짖거나 경계하는 개가 없기 때문에 사람도 개에게 호의적일 수 있는 것 같다.

오후에는 너무 더워서 집에 있다가 집 근처에서 크리스마스 동네 행사를 한대서 다녀왔다.
술 파는 푸드트럭이 있길래 맥주 한 캔에 칵테일 한 잔 달라했더니 28불 나왔다. 예상치 못 한 많은 지출에 당황했지만 하하 호호 가족, 친구와 함께 웃으며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틈에 있으니
가끔은 이런 기분 느끼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11월 26일(일)
어제 예상치 못한 지출도 있었도 날도 덥고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월요일이 걱정되는 건 덤.
새로운 직원이 아무리 잘한다 한들 둘이서만 함께 일 할 생각을 하니까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내가 처음 일 할 때는 나 포함 세 명이 일을 했기 때문에 한 명이 나 가르치는 데 집중하고 다른 한 명은 본업에 집중해서 가게가 잘 굴러갔는데,
이제 새 직원 포함 두 명뿐이니 어디에 어떻게 집중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화요일을 제외하고 4일을 같이 일 해야 하는데,
부디 내일 하루 무사히 넘기고 하루하루 그녀가 잘 적응하기를 바라본다.


11월 27일(월)
대망의 월요일.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된 월요일 아침은 가뜩이나 정신이 없다.
심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지쳐서 새로운 직원에게 마냥 집중할 수 없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손님은 들이닥치지, 새 직원이 커피를 만들 줄 몰라서 오전에 오는 모든 손님들을 내가 다 맞이해야 하는데
거기다 일도 알려주고 내 할 일을 또 해야 하니 정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오전 시간이었다.

중간에 물건 가지러 온 셰프에게 하소연도 하면서 지친 몰골과 표정을 보여줬더니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갔다.
다행인 것은 손님이 한꺼번에 몰리지 않고 한 명 한 명씩 와서 새 직원이 일에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가 잠깐 들렀는데 새 직원이 맘에 들었는지 나한테 사람 보는 눈이 있다고 했다.

내일은 기존 직원이랑 같이 일 하는 날이라서 마음이 조금 놓인다.

11월 28일(화)
아무리 생각해도 수, 목, 금 3일 동안 새로운 직원과 단 둘이 있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 셰프에게 한 명 더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상황을 모르니까 새 직원이 익숙해질 때까지만 점심시간에 사람이 한 명 더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매니저에게 오라고 일러놓겠다고 했다.
다행이다.

오늘은 희한하게 아침부터 30팀이 넘는 손님이 왔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많은 손님이 방문했다.
1시 30분쯤이면 여유 있게 청소를 시작하는데 어쩐 일인지 그때까지도 손님이 물밀듯이 들어와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본격적인 청소를 시작했다.

불 같았던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니 너무 피곤하다.
얼른 자야지.

11월 29일(수)
오전에 비가 세차게 와 손님이 없었다.
그 덕분에 새 직원과 여유 있는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월요일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
셰프가 말로만 알려주면 기억을 다 못 하니까 종이로 정리해서 알려주는 게 더 좋을 거라는 팁을 줬다.
나도 그게 좋다는 걸 알지만 그동안 정리 할 시간이 없어서 못 하고 있었다.
다행히 오늘 시간이 많이 남아 레시피며 재료며 정리해서 건네주니 좋아했다.

이제 겨우 3일 째지만 하루하루 실력이 느는 게 보인다.
포스기 앞에서도 많이 헤매지 않고, 빵칼로 빵도 거의 완벽에 가깝게 잘 자른다.
에스프레소 샷 내리는 것만 도와줘도 바쁜 아침에 도움이 많이 되니까 샷 내리는 것 월요일에 알려줬는데,
오늘 아침에 뚝딱뚝딱 옆에서 도와줘서 나는 거의 우유 스팀만 하고 커피를 짧은 시간 안에 뽑을 수 있었다.
매일매일 더 잘할 것 같다.

하루 종일 비교적 여유가 있었던 덕에 서로 호구조사도 하는데 세상에 2001년생, 22살이라고 한다.
그때도 사람이 태어났구나... 너는 완전 baby라고 했더니 baby는 아니라고 한다.
내가 22살 일 때는 호주 와서 워킹홀리데이로 일 할 생각은 못 하고, 그냥 공부만 잘하면 되는 줄 알고 학교만 열심히 다녔는데...

같이 일 한지 벌써 3일 째다.
호흡을 맞춰가고 있지만 워낙 알려줄 게 많다 보니 아직 손도 못 댄 부분이 많다.
뭐 하나 알려주려면 손님이 와서 응대하느라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하루가 다 간다.
일이 복잡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좋은 직원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11월 30일(목)
벌써 11월의 마지막 날이다.
올해 초만 해도 내가 호주에서 연말을 맞이하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는데,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을 이럴 때 쓰나 보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오전에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주방에서 일하다 말고 나가서 주문받고 다시 주방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코워커에게는 이번 주에 3가지 레시피만 익히라고 했는데 3일째 되니 벌써 익숙해진 건지 혼자서도 이제 잘하고 있다.
다음 주에는 조금 복잡한 것들을 할 차례인데 너무 힘들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날이 더운 날은 디저트 판매율이 저조한데, 당일 판매가 원칙인지라 버리느니 나눠주자는 생각에 가게 오는 손님들에게 무료로 하나씩 나눠줬다.
며칠 째 판매하지 못하고 있는 디저트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코워커와 감탄하며 먹었다.

부지런하게 마감하고 집으로 귀가.
코워커는 하루하루 성장하는 중이다.
아직 우유 스팀을 할 줄 몰라 커피는 내 담당이지만 샷을 내릴 줄은 알고 있으니 아이스라테는 직접 만들 수 있다.
처음부터 모든 걸 알려주기보단 하나하나 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런 거는 매니저가 계획하고 해야 되는데 어째서 내가 하고 있는지...

내일은 금요일.
사실 오늘 아침에 눈 떠서 '오늘이 금요일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하게 하루종일 피곤한 걸 보니 체력적으로 조금 지친 것 같기도 하다.
내일만 일 하면 이틀 쉬니까, 하루만 더 고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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