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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Dec 30. 2023

새로운 직원 : 너는 누구니?

호주 18 주차(23.11.17.~23.11.23.)

11월 17일(금)
아침에 웬일인지 매니저가 와서 내일 일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토요일에 일 하는 직원이 콘서트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어 대타를 구했는데, 매니저 대신 출근 할 사람을 찾는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대타로 출근할 예정인 직원은 내가 가장 좋아하지 않는 직원이기에 할 일이 있다고 거절했다.
 
오늘은 아침에 두 명이 트라이얼 하러 왔다.
오전 8시, 11시에 각각 두 시간씩.
오전 8시에 왔던 A는 인도네시아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왔고, 11시에 온 B는 우리 가게 직원의 친구다.
내 기준 A가 훨씬 괜찮았는데 칼 질을 할 줄 알고 손이 빨랐다. 트라이얼이라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하겠다는 적극성도 있었다.
B는 지각을 해서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오전 10시 30분에 오기로 했는데 30여분이 지나 11시를 조금 넘겨 도착한 것이다.
A가 10분 전에 도착한 것과 비교되어 좋은 첫인상을 남지기 못했다.
그래도 B가 있던 덕분에 점심 러시 시간을 조금 덜 힘들게 보낼 수 있었다.
매니저가 두 명 어땠냐고 묻길래 A가 훨씬 괜찮았다고 했더니 조금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아마 B가 영어를 더 잘해서 B에게 기대를 더 했던 것 같다.
 
다음 주 화요일에 기존 코워커가 일을 못 한다고 해서 누가 나랑 같이 일 하게 될지 궁금하고 걱정도 된다.
오늘 같이 일 한 A가 온다면 차근차근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가 올지 다음 주 로스터 나오는 걸 봐야겠다.
 
11월 18일(토)
어젯밤에 남편과 내일 어디 가냐로 한참 입씨름을 하다 피곤해서 그냥 잠들어버렸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남편이 알아 놓은 해변에 가기로 했다.
도착했는데 사람이 거의 없고, 주차장에는 캠핑카를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돼 있었다. 이미 주차하고 자리 잡은 캠핑카도 두 대 있었다.
그런데 말 똥 같은 게 주차장 바닥에 있길래 뭔가 했더니 캠핑카 화장실에 있던 인분을 버리고 간 것으로 보였다. 더러워라.
 
바다는 정말 맑았고 강아지를 데리고 온 몇몇 견주들이 여유롭게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만져달라고 달려오는 강아지 몇 번 쓰다듬어주고, 잔잔한 파도 소리 들으며 물에 발 담그며 걷고 있는데
무심코 쳐다본 바다에서 뭔가가 위로 계속 들쑥들쑥 올라왔다 내려갔다 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돌고래였다! 갈매기도 같이 몰려 있는 것을 보니 물고기가 많은 곳에 같이 자리 잡아 밥 먹는 중인 것 같았다.
세상에... 동물원, 아쿠아리움에 갇힌 돌고래만 보다가 자연 속의 돌고래를 보다니. 머리털 나고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사진, 동영상 찍고 있으니 귀여운 똥강아지 두 마리를 데리고 온 외국인 아줌마가 이 부근에서 돌고래 자주 보인다고 말을 걸어왔다.
정말 진귀한 경험이었다. 맑은 물에서 서식한다는 돌고래를 내 눈으로 보다니. 돌고래 보는 크루즈도 있는데 비록 엄청 가까이서 본 것은 아니지만 무료로 돌고래 구경을 하다니! 
한참 보이던 돌고래는 자리를 옮겼는지 어느 순간부터는 보이지 않았다. 
 

간신히 포착한 돌고래 지느러미


이후 내 비자 때문에 보험회사에 상담받으러 쇼핑센터에 들렀다.
새로운 비자를 받으려면 남편과 함께 커플 보험을 들어야 하는데 추가 비용이 만만치 않다. 아니 무슨 보험이 그리 비싼지... 
비자 신청을 늦추면 늦출수록 보험 가입일도 줄어 보험료가 저렴해지는데... 일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이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돈을 내고 보험에 가입하고 싶지는 않아서.
 
오랜만에 맥주 먹고 싶다길래 지난번에 실패한 맥주를 사러 갔다. 이번에 새로운 곳으로 갔는데 신분증 검사 안 하던걸?
지난번 그곳에서 괜히 내가 외국인이라 까탈스럽게 굴었다는 것에 거의 확신을 가지게 됐다.
아무튼 맥주 구매에 성공하고 칼칼한 닭가슴살 볶음 해서 배부르게 먹었다. 
오늘 열심히 돌아다녔으니 내일은 집에서 푹 쉬어야지.
 
11월 19일(일)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대청소했다. 
빨래, 청소, 세차 그리고 대망의 에어컨 청소까지.
다음 주 무려 40도까지 올라가는 기온에 에어컨을 안 틀 수가 없기 때문에.
입주 전 청소 했다고 하는데 안 쪽이 너무 더러웠고, 그걸 본 이상 청소 안 한 에어컨을 그대로 틀 순 없다.
벽걸이 에어컨이라 청소하는 데 조금 힘들었지만 할 수 있는 만큼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니 뿌듯했다.
 
청소 후에는 마땅히 할 게 없어 집 안에서 하루종일 있었다.
나가서 커피라도 한 잔 할까 했지만, 너무 더운 데다 자외선 지수가 워낙 높아 집에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시간이 잘 안 가는 와중에 다음 주 로스터가 나왔다.
처음 보는 이름이 로스터에 들어가 있는데 지난 금요일에 트라이얼 하러 왔던 A인 것 같다.
손이 워낙 빨랐던 친구니까 금방 잘 배우고 같이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다.
 
11월 20일(월)
정말 의외의 상황이 발생해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날이다.
내가 기대했던 A는 오지 않았고 처음 보는 여자애(C)가 와서 우선 1차 당황.
오늘이 트라이얼이라는데 로스터에는 C가 화, 금요일에도 일 한다고 되어있어서 2차 당황.
그러니까 트라이얼을 하기도 전에 이미 쉬프트를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알고 보니 C는 매니저의 친구의 친구인데, 지난주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기존 직장에 출근할 수 없어 잘렸고
그 사실을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우리 매니저랑 연결을 해 준 것이다.
아니, 그게 말이 돼? 심지어 트라이얼을 하기 전부터 쉬프트를 준다고?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애랑 내일 단 둘이서 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사로잡았고 엄청난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코워커가 좋게 좋게 생각하자고 하는데, 내가 고생할 게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어떻게 좋게 좋게 생각할 수 있을까.
 
거기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자기 지인이라고, 호주인이라는 이유로 트라이얼을 하기 전부터 쉬프트를 주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지난주 금요일에 왔던 그 두 명에게는 왜 오라고 했으며 나에게 그 둘은 어땠냐고 왜 물었던 건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다. 와중에 내 표정이 정말 안 좋았는지 오후에 잠시 들린 보스가 괜찮냐고 물었다. 괜찮겠냐고요...
스트레스를 너무 받은 건지 저녁에 입맛이 없었지만 먹어야 사니까 듬뿍 먹고 운동까지 했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 걱정이 많다.
 
11월 21일(화)
아침 일찍 출근했다. 
다행히 C는 제시간에 왔고, 그녀에게 아침에 내가 하는 일을 알려줬다.
간밤에 여러 이유로 잠을 설쳐 4시간도 채 못 잔 상황이었지만 그런대로 컨디션은 괜찮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최대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녀에게 이것저것 도와달라고 했다.
요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그녀의 말답게 그녀의 샌드위치 만드는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다. 
어찌어찌 잘 마치고 오전 손님이 다 빠져나갔을 즈음, 그녀는 부엌을 청소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깔끔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신경 쓰지 않은 곳을 철 수세미로 닦고 헹구고. 보이는 곳 청소는 끝내주게 잘하는구나 싶었다.
 
그렇지만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그녀는 지난 10년의 바리스타 경력으로 이곳에서도 당연히 커피 만드는 일만 할 줄 알았는데
kitchen일 까지 해야 할 줄 몰랐다면서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
매니저가 그녀에게 이곳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으리라.
근데 네가 당황스러운 것보단 내가 더 당황스럽고 힘들어. 심지어 나는 스트레스도 받아..
 
일 하는 와중에 한 가지 마음 아픈 일이 있었는데 지난 금요일에 트라이얼 하러 왔던 A가 찾아온 것이다.
매니저에게 일요일에 나는 어떻게 된 거냐고 물었더니 월요일에 다시 연락 주겠다고 하고 연락이 없어 직접 방문했다고.
연락이 없다는 것은 거절의 의미나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얼마나 간절했으면 직접 왔을까 싶었다.
내가 대신 미안하다 나는 사실 금요일에 매니저에게 너 칭찬 많이 했고 너랑 같이 일 하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고 말했다.
우선 나도 매니저에게 다시 연락해 보겠다고 돌려보냈다.
 
여러 가지로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집에 와 이전 코워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모조리 다 얘기했다.
이런 복잡한 사정을 아는 것은 그녀뿐이라 시시콜콜 미주알고주알 다 얘기했더니 함께 분노해 주고 공감해 줘서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왜 이렇게 힘든지. 전에는 육체적으로만 힘들었는데 요 근래는 정신적으로도 힘들다.
정말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어제 잠을 잘 못 잤으니 오늘은 좀 잘 수 있기를.

11월 22일(수)
오전부터 보스가 출근해 정신없었다.
기존 코워커가 사실상 당일 퇴사를 감행하는 바람에 인력 공백으로 머릿속이 복잡해 보였다.
졸지에 시니어 직원이 된 나까지 나가려는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느껴졌다.
직원 관련 된 얘기가 나오는 바람에 어제 있었던 일도 이야기하고 지난 금요일에 트라이얼 했던 애가 정말 괜찮았다고 말했다.
있는 그대로 사실만 이야기 한 거지만 매니저와 대척점에 서 있는 상황인지라 말하면서 조금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트라이얼 때 매니저가 자리에 없었던 점에 노한 보스가 그 자리에서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했고, 결국 C의 예정된 금요일 근무가 취소됐다.
가게를 떠난 후에도 나에게 전화해 금요일에는 A가 올 것이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라고 했다.

와중에 매니저가 퇴사한 코워커에 대해 offensive 하게 보스에게 말을 전한 사실이 드러났고, 모든 것이 오해였음을 알게 된 보스가 코워커에게 전화를 할 거라고 했다. 아마 사과의 뜻을 전하기 위함이었으리라.
부재중 전화가 남겨있는 것을 본 코워커는 겁에 질려 나한테 연락했고, 다이내믹한 오늘 아침 상황을 다 전해주고 나서야 상황이 정리됐다.
결국 문제는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상주했어야 하는 매니저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보스가 매니저에게 원한 것은 와서 청소상태, 직원 복무점검 등을 챙기는 것인데 그게 잘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거니까.

여러 가지로 정신없는 데다 날씨도 더워서 너무 힘들었다.
40도는 태어나서 처음 겪는데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룩주룩 난다.
손님들 들어오라고 문을 열어놓는데 하필 뜨거운 바람이 세게 불어서 에어컨을 틀어도 실내가 더웠다.
주방은 말할 것도 없고.

내일도 마찬가지로 덥다는데 벌써부터 지친다.

11월 23일(목)
오늘 아침은 손님도 없고 여유로웠다.
코워커랑 신나게 떠들면서도 여유 있게, 그렇지만 왜 손님은 항상 같은 시간에 몰려오는 걸까.
한꺼번에 3팀이 우르르 왔다가 한꺼번에 나갔다.
여기서 일 한지 4개월이 다 됐지만 여전히 이해도 적응도 안 된다.

날씨가 더우니 밖에 나오는 사람이 없어서 여유 있는 틈을 타 구석구석 청소했다.
쭈그리고 앉아서 철 수세미로 찌든 때 같은 거를 벅벅 닦다 보니 너무 더워서 얼굴이 순식간에 벌게지고 땀범벅이었다.
보다 못한 매니저가 좀 더 쉬라고 해서 15분 정도 쉬었는데, 쉬는 동안 물을 안 마시니까 회복이 안 되는 거다.
결국 사과를 착즙해 주스 만들어 먹고 나서야 에너지가 생겨 좀 살만했다.
땀을 흘렸을 때는 그만큼 수분보충을 해 줘야 하는데 여기서는 탭워터 즉, 수돗물을 마신다.
근데 수돗물 마시기 싫단 말이지. 그렇다고 내 돈 주고 생수 사 먹는 것도 싫고. 집에서 브리타로 정수 한 물 싸 오는 것도 한계가 있다. 아침이면 싸 온 물 한 통을 다 먹으니..

덥고 바빴던 하루를 간신히 버텨 보내고 늘 그렇듯 남편과 퇴근길에 만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너무 힘들어서 밥 할 기운도 없어 미리 해 놓은 반찬과 저녁 식사 해결.
1층은 시원한데 안방이 있는 2층은 너무 덥다. 지붕에 내리쬐는 햇볕으로 인한 열이 2층을 뜨겁게 달궈놓는다.

내일은 A가 아침부터 출근한다.
부디 많이 바쁘지 않아 차근차근 알려줄 수 있기를. 사실 시간에만 쫓기지 않으면 얼마든지 잘 알려줄 수 있다.
손이 빠른 친구였으니 기대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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