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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Feb 03. 2024

어느 때 보다 즐거웠던 한 주

호주 28 주차(24. 1. 26. ~ 24. 2. 1.)

1월 26일(금)

오늘은 Australia Day. 무슨 날인가 싶지만 구글에 검색까지 해 볼 정도로 궁금하진 않아서 그냥 쉬는 날 정도로 생각했다. 휴대폰에 공휴일 알림 울리지 않기 설정을 해 놨는데 알람이 울려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버렸다. 가뜩이나 이번 주 내내 잠을 설쳤는데 쉬는 날마저 일찍 일어나버려 이만저만 피곤한 게 아니었다. 공휴일에는 어딜 가든 비싸기 때문에 외식이나 카페 가서 시간 보내는 것은 우리 관심 밖의 일이었고 바다에 다녀오기로 했다.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바다였는데 파도가 높지 않아 이른 아침부터 아이를 동반한 가족으로 해변이 꽉 차 있었다. 한창 수영하고 놀다가 집에 와서 샤워하는데 수영복 입은 부분 제외하고 피부가 새까맣게 타 있었다. 호주 햇빛은 정말.. 경험하면 경험할 수록 태양이 작열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몸소 느끼고 있다. 평소 피부가 외부 자극에 예민한 편인데 바다 다녀오고나면 꼭 쇄골 및 가슴팍이 간지럽고 따갑다. 다음부터는 선크림을 더 두껍게 발라야겠다.


바다 수영 후에 라면 먹는 건 국룰이기 때문에 집에 와서는 라면을 끓여먹었다. 냉장고에 남아있던 밥 까지 말아먹고 그 동안 못 잔 잠을 몰아자듯 낮잠을 아주 오래 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피곤해서 침대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덥지만 버틸만 한 날씨, 이른 아침부터 수영해서 지친 몸, 계속 잠을 설쳐서 겹친 피곤함까지. 침대 밖에 나가지 않을 이유는 충분했다. 


점심을 든든히 먹어서 그런지 저녁 생각이 없었다. 간단하게 빵과 우유로 식사를 대신하고 남편과 내일 있을 그릴 파티에 뭘 갖고 갈지 한참 고민했다. 술을 가져갈까, 고기는 얼마나 가져갈까..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바베큐 파티를 하는 건 연애할 때 이후로 처음이다. 거의 강산이 한 번 변할 무렵의 세월이 흘러 그 때는 어땠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1월 27일(토)

아침 일찍 마트 가서 상추, 삼겹살, 소세지, 콜라, 과자 준비하고 한인마트 가서 소주도 준비했다. 한국인들끼리만 파티한다면 소주 두 병으로 모자라겠지만 다들 술을 잘 안 하는 분위기라길래 두 병이면 충분할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쉬면서 시간을 보내다 가게로 가서 코워커 픽업한 후 약속 장소로 향했다. 남편이 다니는 학교 안에 있는 그릴이었는데 가스 냄새만 풍기고 작동은 안 하길래 한참 헤맸다. 남편 친구 기숙사에서 구워먹을까 하다가 다행히 작동하는 그릴을 찾아 야외에서 파티를 시작했다.


파티라고 하니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고깃집 야외 테이블에서 고기 구워먹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과 어울려 밥 먹고 마시고 노는 게 오랜만이었는데 정말 즐거웠다. 남편 친구 중 한 명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 얘기 들어주고(나보다 아는 연예인, 예능 프로그램, 드라마가 많다) 서로 언어 교환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끄럽게 떠들고 놀았다. 운전해야 하는 사람이 많아 아쉽게 소주는 많이 마시지 못했다. 외국인 취향 맞춰 과일 맛 나는 소주를 샀는데 내 입맛엔 영 아니라 나도 손이 잘 안 갔다. 결국 남은 소주는 다시 우리 집으로. 코워커가 마시멜로우를 갖고 와서 그릴에 구워먹는데 먹방으로만 보던 걸 직접 해 먹으니 너무 맛있었다. 그을린 마시멜로우에서 달고나 맛이 나다니. 바삭바삭 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남들과 같이 먹다보면 늘 많이 먹게 된다. 남산 같이 부른 배,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 좋은 기운으로 꽉찬 마음까지. 4시간 정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이 웃고 재미있었다. 다음에도 좋은 기회로 다시 볼 수 있기를.


1월 28일(일)

지난 저녁 그릴 파티의 피로 때문일까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 먹고 청소했다. 일 주일에 한 번 청소하는데 먼지가 참 많이 쌓이는구나 싶다. 호주에는 다양한 종류의 벌레가 많은데 크기도 큰 편이라 잡는 것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그래서 집을 최대한 멸균 상태로 유지하고 싶은데 방충망도 시원찮고 창문도 시원찮아서 어느틈엔가 벌레가 집에 들어오는 일이 잦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벌레 퇴치 약을 몇 번이고 뿌리는데도 보이지 않는 틈으로 들어오는건지 한 두번씩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보인다. 사실 가게에서 바퀴벌레 하도 자주 보는 통에 웬만한 벌레에는 무덤덤하지만 내 집만큼은 벌레로부터 안전했으면 좋겠다.


저녁으로는 어제 파티에서 먹지 못한 소세지를 남은 소주와 함께 먹었다. 밥 먹고 좀 쉬다가 운동했는데 술 먹고 얼마 안 돼서 그런가 운동 다 끝나고 토했다. 운동하다가 토 하긴 처음이다. 원래 술 먹고 운동 안 하는데 몇 잔 안 마셔서 괜찮을 줄 알고 했더니 탈이 났나보다. 다음 부터는 단 몇 잔이라도 술 마셨으면 굳이 운동하지 말아야겠다.


내일부터 다시 새로운 한 주 시작이다. 지난 주 내내 넉넉한 인원이 근무하다 다시 원상복귀 됐는데 부디 큰 문제 없이 하루하루 잘 넘어가기를 바란다.


1월 29일(월)

평일 역대 최저 매출을 기록했다. 덕분에 안 바빠서 나와 코워커는 좋았는데 괜히 보스 눈치가 보였다. 게다가 제빙기가 망가져 매니저가 급하게 밖에서 얼음을 공수해오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번 주 정말 더운데 하필 지금 말썽이라니! 거기다 냉장고 하나도 상태가 심상치 않다.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구만.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차분하게 할 일을 하는데 거래처에 물건 보내달라고 전화하니 정산이 안 된게 있어 못 보내준다고 했다. 지난 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또? 이번 주 주급이나 제대로 나올런지 모르겠다. 


코워커는 오늘 꽤 긴장한 것 처럼 보였다. 이번 주가 일 한지 세번 째 주인데 늘 세 명이 일 하다 두 명만 일 하니까 아무래도 평소보다 부담을 조금 느꼈을 것 같다. 다행히 손님이 정말 없어서 오히려 그녀에게는 마음의 준비를 할 좋은 기회였다. 하루 안 바쁘면 다음 날은 많이 바쁘고 다시 안 바쁘고의 연속이니 내일은 바쁘겠지..


요 며칠 과식해서 저녁은 속 편하게 양배추 밥을 해 먹었다. 운동도 했고 책도 읽었다. 돌아보니 특별할 거 없는 하루였지만 일 할 수 있고 코워커과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는 생각이 든다.


1월 30일(화)

어제 예상했던 대로 오늘 아침부터 바빴다. 커피 찾는 손님도 유독 많고 디저트, 샌드위치 먹고 가는 손님도 많아 정신 없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코워커 쉬는 시간에 잠깐 도와달라고 말 하는건데, 하필 오늘 코워커가 쉬는 타이밍에 손님이 한꺼번에 몰려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대체 왜 사람들은 늘 같은 시간에 몰려 오는 거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거는 알지만 한꺼번에 들어오는 사람들 보면 열이 안 뻗칠래야 안 뻗칠 수가 없다. 얌전히 기다리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자기꺼 언제 나오냐고 카운터에 서서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내 손이 두 개 밖에 안 되는데 얼마나 더 빨리 하기를 바라는 건지, 나 원 참.


짜증나는 순간순간이 있었지만 그 와중에 재미있는 일이 하나 있었다. 아침부터 손님이 많아 살짝 신경이 곤두 선 상황이었는데 손님 한 명이 뜬금없이 가게 안에 있는 화분에 대해 물었다. 사실 화분은 내 알바 아니고 어떻게 가꾸는지도 몰라 우리 모두 그냥 내버려뒀고 나무는 죽어가고 있었다. 손님이 갑자기 안 쓰는 버켓 하나만 달라그래서 줬더니 비료처럼 보이는 흙을 갖고와 화분에 채워넣고 우리에게 일 주일에 세 번만 물을 주라고 했다. 본인이 gardner라서 저런 화분 어떻게 관리하는 지 안다며 나중에 시간 나면 영양제 사서 주면 잘 자랄거라고 알려주었다. 남의 가게 화분에 저렇게까지 신경을 쓰나, 생각했지만 굳이 자기 물건(비료 같은 거)까지 쓰는 모습에 보답이라도 할까 싶어 커피 갯수에 맞게 도넛을 챙겨줬더니 '너희가 지난 번에 간식 챙겨줘서 오늘 저걸로 갚은 건데 또 주면 어떡해'라고 너털 웃는 것이다. 손님 입장에서는 그냥 서비스 받았다고 운수 좋은 날인 셈 치고 넘어가도 되는 일이었을텐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가 도움을 주다니.. 인터넷에서 떠돌아다닐 법 한 이야기 속에 내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세상에 저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구나. 


코워커가 일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바쁜 날이었는데 다행히 코워커도 나도 침착하게 모든 주문을 처리했다. 러시 시작되기 전에 둘이서 손님 밀려올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미리미리 부족 할 물건도 채워 놓았더니 바쁜 순가에 도움이 많이 됐다. 코워커는 잔 실수가 많았다고 하는데 이제 겨우 삼 주 째인데 당연히 실수 할 수 있는거고, 실수를 해야 우리가 알려줄 수 있고 너가 배울 수 있다고 말 했다. 실수 한다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니 그냥 우리가 해야 할 일만 잘 하면 되는 거라고 했더니 마음이 한 결 편해보이는 얼굴이었다.


내일부터 금요일까지 무더위가 예상되는데 가게 에어컨 하나가 말썽이라 체감 온도가 더 더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필 이럴 때 망가져... 


1월 31일(수)

뭐 했다고 벌써 1월의 마지막 날 일까. 호주는 이제 여름이 단 한 달 밖에 남지 않아서 일까, 오랜만에 40도를 웃도는 더위가 이번 주 금요일까지 지속 될 예정이다. 에어컨 바람 빠져나가지 못 하게 가게 문이란 문은 다 닫아 놓으니 조금 살만했는데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졌다. 이렇게 더운 날은 야외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만큼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도 없다. 손님이 없으니 할 일도 없고 코워커랑 같이 창고 비품 정리하고 청소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잘 정돈 된 창고를 보니 속이 탁 트였다.


하루 종일 야외 주차장에서 햇빛 아래 주차되어 있던 차에 올라타니 말 그대로 엉덩이 불 타는 줄 알았다. 핸들 커버를 씌웠는데도 너무 뜨껍고 기어 변속기 잡았다가 손바닥 데였다. 집에 오니 지붕 위로 햇빛을 계속 쬔 2층은 그야말로 사우나. 코워커들은 방에 에어컨 없다는데 도대체 에어컨 없이 어떻게 살 수 있는 건지.


내일도 오늘만큼 덥다는데 제발.. 버틸 수 있을만큼만 더웠으면 좋겠다.


2월 1일(목)

벌써 2월이다. 며칠 전 가수 윤하의 '기다리다'라는 노래가 발매된 지 18년인가 되었다길래 깜짝 놀랐다. 체감상 길어야 10년이 채 안 된 것 같은데 발매 20년이 다 되어가다니.. 시간은 늘 가던 대로 갔는데 나의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건지 아니면 추억에 젖어 사느라 현실의 시간 흐름을 못 따라 가는건지..


오늘도 오전에 많이 한가해 코워커와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덜 힘들면서도 효율적으로 일 할 수 있을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 1회 대청소와 같은 굵직굵직 한 일은 최소 세 명 이상 일 하는 날 하기로 결정했다. 그 동안은 토요일 고정이었는데 주말은 평일과 달리 손님이 오는 시간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청소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시간을 단축 시킬 수 있는 효율적인 동선 등 의견을 공유하면서 앞으로도 좋은 방법을 찾아가기로 했다.


퇴근할 때 근처 정류장에 코워커 내려주는데 오늘은 날도 더운데다 코워커 컨디션이 영 안 좋아 보여서 집까지 바래다줬다. 집에 오니 매니저가 이번 주 일요일에 다 같이 저녁 파티 한다고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고 단체 대화방에 문자를 보냈다. 아무도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어떻게 할 지 생각 중인 듯 하다. 가는 건 좋지만 나는 월요일 아침 일찍 출근 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부담스럽다. 중간에 먼저 간다고 일어나면 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9시까지는 있어야 할텐데.. 생각만해도 피곤하다. 나는 9시면 자는 사람인데. 코워커들은 나 간다면 간다 그러고, 나는 너네 가면 갈 거라 그래서 결국 다 가게 생겼다. 내일 매니저 만나면 월요일 출근 때문에 약간 부담스러워서 고민중이라고 해야겠다. 월요일에 임시 휴업 하면 얼마든지 늦게까지 놀다 갈 수 있는데 그럴 일은 없겠지.


내일은 오랜만에 마감 안 하고 일찍 끝난다. 그래봤자 한 시간 일찍 끝나는 거라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이게 얼마만이야. 할 게 없지만 기분 좋아서 뭐라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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