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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쿡크다스 Feb 03. 2024

어딘가 이상한 손님

호주 27 주차(24. 1. 19. ~ 24. 1. 25.)

1월 19일(금)

세 명 일 하는 게 아니었다면 얼마나 정신없었을지.. 오늘따라 점심시간 한 시간 동안 끊임없이 손님이 밀려들었다. 말 그대로 혼란스러웠던 한 시간이 끝나고 숨을 돌리며 코워커와 근무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좀 더 적극적으로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어필을 하기로 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한 명의 인원이 오전부터 점심까지 상주해 바쁜 시간에 조금 덜 힘들고 손님들에게도 원활하게 서비를 제공하는 거다. 오늘처럼 바쁜 시간에 주문받을 사람 한 명만 더 있어도 모든 게 원활하다. 코워커는 당장 내일 셰프를 만나게 되면 말을 해 보겠다고 한다. 


새로 온 직원이 근무 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것을 다 파악했고 정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영어를 잘해서 금방 적응한 것 같기도. 한편 다른 지점으로 발령 난 다른 코워커는 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녀를 제외하고 3명의 신규 직원이 고용됐는데 혼자서 세 명을 데리고 가르치고 일까지 하려니 매일매일이 지치고 뉴비들 중 한 명이 일은 안 하고 수다만 떠는 통에 더 골치 아프다고 했다. 어떤 직장이든 새로운 사람이 오면 최소 두 명이 한 명을 트레이닝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혼자서 세 명을 가르치려니 얼마나 힘들지 감히 상상이 안 된다. 나도 이 문제로 이번 주 초에 셰프에게 강하게 컴플레인을 걸었고, 그 덕분에 나를 포함한 두 명이서 새 직원을 트레이닝하게 돼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 되었다. 해고하라면 해고하라지, 앞으로도 계속 불합리한 것에는 끊임없이 컴플레인할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는 너무 배고픈 나머지 폭식했다. 떡볶이를 만들었는데 부족하다고 느껴져 먹다 말고 중간에 떡을 더 추가했다. 남편은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됐다는데 나는 오전 10시에 점심 먹은 후로 땀 흘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해서 그런지 오후 4시가 되면 배가 엄청 고프다. 남편 배 고플 때까지 기다리자니 내가 굶어 죽을 것 같아서 못 참고 결국 일찍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나와의 식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 다음에는 점심을 간단하게 먹거나 먹지 않겠다고 한다. 


이번 한 주 정말 매일매일이 바빴다. 날씨도 덥고 새로운 직원 문제로 머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하나하나 잘 정리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피로해서 그런가 내일은 특별한 계획이 없다.


1월 20일(토)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어디 갈지 고민했다. 바다 가고 싶은데 수영은 하기 싫어서 도그비치 가서 남의 집 강아지 구경하다 남편 학교에 가서 산책하기로 했다. 해변에서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강아지들 보는 것은 힐링 그 자체다. 목줄 없이 온 힘들 다 해 뛰어다니고 수영하는 강아지를 보고 있자면 나도 행복해지는 기분이 든다.


남편 학교는 방학이라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 덕분에 여유롭게 캠퍼스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햇빛이 점점 강렬해지고 오래 걸어서 당 떨어지는 느낌에 캠퍼스 내 카페에 가서 커피를 한 잔씩 마셨다. 시원하게 앉아있다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집에 왔고 나른한 오후를 즐겼다.


한 편, 어제부터 이어진 코워커와의 문자는 오늘까지 지속됐다.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매니저에게 계속 컴플레인을 거는 것 말곤 없다는 것뿐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땐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응어리가 해소되니 그녀 역시 나와의 대화로 마음이 조금 풀렸기를 바라본다.


그나저나 셰프가 다른 직원에게 주말에 일 할 수 있냐고 물어봐서 기존 주말 직원이 그만두는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1월 21일(일)

로스터가 나왔는데 세상에, 우리가 원하던 대로 매일 한 명을 더 추가(?)해줬다. 매주 이렇게 로스터 나오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가오는 금요일이 공휴일이라 가게 문을 닫아서 직원들 Day off 주고, 남는 날에 인원 한 명씩 더 추가한 것 같은데 그다음은? 누군가는 7일을 일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 누구도 주 7일 근무를 원하지 않는다. 우선 지금은 새로운 로스터를 즐기도록 하자.


남편 친구들 중에 한국 문화를 정말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나를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주변에 아는 한국인이 남편밖에 없어서 그런가 여자 한국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녀의 소원성취(?)겸 다 같이 모여 놀기로 했다. 아직 정확한 날짜는 안 정했지만 공휴일이나 토요일을 생각하고 있다. 만약 이 만남이 성사된다면 나는 호주에 와서 코워커 외에 다른 사람들과 처음으로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재미있겠지? 고기 구워 먹을 것 같은데 소주 맛을 보여줄까 생각 중이다.


내일 신나게 하루 잘 보내보자.


1월 22일(월)

새로 온 코워커와 오픈을 같이 했는데 잘 따라와 줘서 다행이었다. 이제 일 한지 겨우 2주 차지만 상당히 많은 것을 혼자 할 수 있게 됐다. 내일 오픈도 수월할 듯싶다.


오전 중에 마약 한 것처럼 보이는 손님 세 명이 가게에 왔다. 행동이 느리고 말도 어눌하고 한참을 말없이 가만히 있고, 커피 고른다면서 카운터에 고개 처박고 메뉴판을 뚫어져라 보는 거다. 거기다 가방에서 돈 꺼낸다면서 갑자기 졸기까지. 졸은 건지 약에 취한 건지.. 살면서 마약 한 사람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고 어떤 짓을 할지 모르니 코워커와 긴장 상태였는데, 마침 매니저가 도착해서 한 시름 놓았다.


더불어 단골손님 한 명이 왔는데, 이 손님은 동네 순찰하는 Ranger다. 정확히 무슨 일 하는지 모르겠지만 셰프에게 물어보니 동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도움을 주는 hard worker라고.. 아무튼 타이밍 좋게 단골손님과 그 무리가 한 공간에 있었고, 심상치 않음을 느낀 손님이 가게를 나서고도 한참 그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했다. 마약 무리가 떠나고 나서 가게로 돌아와 너희 괜찮니, 쟤네 가게 안에서도 밖에서도 이상하게 굴어서 계속 지켜보다가 내가 경찰에 리포트했단다,라고 말해주는데 얼마나 든든하던지!


매니저한테 저 손님들 약 한 것 같은데 이럴 때 한국에서처럼 경찰 불러도 되냐니까 그 무리가 직접적인 상해를 가하지 않으면 경찰 불러도 안 올 거라고 했다. 그래서 제발 얼른 나가라고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는데 단골손님이 든든하게 우리를 봐주다니.. 내일 오면 서비스 가득 드려야지.


이번 주부터는 점심 도시락으로 밥을 싸 가기로 했다. 한참 빵 먹다가 쌀국수 먹었는데 물리기도 하고 속도 부대낀다. 빵 보단 쌀국수가 낫지만 밥 먹는 느낌이 안 난달까.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대충 한 끼 때우는 느낌이라 늘 밥이 그리웠다. 밥 먹으니 이렇게 든든하고 좋은 걸. 귀찮더라도 매일 밥 싸가려고 한다.


저녁으로는 간장 양념 한 돼지고기를 먹었는데 BHC에서 파는 맛초킹 맛이 났다. 남편이 맛초킹 참 좋아했는데 내가 안 좋아해서 많이 안 먹었는데, 이렇게라도 먹는다. 호주에서는 한국에서 파는 치킨을 찾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한국식 치킨 판매하긴 하는데 가격이 비싸서 시켜 먹을 엄두가 안 나고, KFC는 뭔가 부족한 맛이다. 음식 타령 잘 안 하는데 치킨은 정말 간혹 생각날 때가 있다. 다른 건 얼추 비슷하게 만들어도 치킨은 만들 수가 없으니.


요즘 날이 시원해서 살만하다. 한동안 더워서 힘들었는데 견딜만한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호주 와서 제일 좋은 게 뭐냐고 물어보면 날씨라고 대답할 만하다. 내일도 열심히 일 해야지.


1월 23일(화)

이틀만 일 하면 쉰다! 어제 Ranger단골손님이 아침에 왔길래 고맙다면서 바리바리 싸서 줬다. 우리 가게 도넛이 이 동네에서 제일 맛있다고 말했는데 마침 도넛 만든 셰프가 그 자리에 있었고 부끄러워하는 셰프의 모습을 보는 게 아주 재미있었다.


어제 일을 이야기하니 그런 애들 오면 해달라는 대로 해 주고 얼른 내보내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경찰에 신고는 할 수 있지만 생명에 위협받는 상황이 아니면 3시간 뒤에 온다고.. 진짜 위급상황이면 2분이면 온단다. 이 나라 시스템이 이러니 잘 알아두고 위험한 상황이 생기면 잘 대처하라고 알려줬다.


주말에 일 하는 직원이 그만두고 코워커가 그 자리에 들어가게 됐다. 나 없이 일할 때 어떻게 일하면 되는지 하나씩 알려주는데 꽤 부담스러운 것 같다. 나도 나보다 경험 많은 코워커랑 일 할 때는 하나도 걱정할 게 없다가 졸지에 시니어가 되었을 때 그 부담이 상당했는데, 이제 일 한 지 두 달 된 애가 주말을 책임 질 생각을 하니 걱정이 많아 보였다. 별 수 있나, 잘할 거라고 괜찮을 거라는 말 말고는 해 줄 게 없었다.


오늘은 가게에 보스가 안 왔는데 내일은 올 것 같다. 오는 건 좋은데 내 할 일은 할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보스가 어질러놓고 간 거 치우는 거 너무 힘들다.


1월 24일(수)

굉장히 한가했던 하루였다. 이렇게 바쁘지 않았던 게 얼마만인지. 올 것 같았던 보스도 안 와서 마음도 편했다. 오늘 마감은 새로운 직원과 같이 했는데 하나하나 알려주면서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만 최대한 하나하나 꼼꼼하게 알려주고 있다. 내가 처음 일 했을 때는 일 하는 직원이 많아서 일을 빨리 배울 필요도, 한 명이 나를 종일 붙들고 일을 가르쳐 줄 일도 없었다. 배우는 입장에서는 서두르지 않아도 돼서 좋았는데 모두가 느슨한 환경이라 체계적이지 않았다. 졸지에 시니어 직원이 된 지금은 매뉴얼을 만들어 새로운 직원이 일 하는데 헷갈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은 매우 flexible 하기 때문에 매뉴얼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언제든지 변수는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 장 봤는데 아이스크림, 과자, 시리얼까지 계획에 없던 지출이 생겼다. 자극적인 음식이 얼마나 당기던지. 일 끝나고 바로 장 보면 몸이 지친 상태라 그런지 군것질 거리가 많이 당긴다. 그래도 어쩌다 한 번이니까 괜찮다고 합리화를 해 본다.


내일만 일 하면 이번 주는 끝이다! 신난다.


1월 25일(목)

보스가 가게에 들렀는데 신메뉴 출시는 잠시 미룬다고 했다. 무슨 사정이 생긴 것 같은데 우리야 좋다. 오전 내내 조용해서 묵은 때 여기저기 벗기면서 시간을 보냈는데 12시가 넘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몰려오는 사람들을 보니 아득했다. 약 한 시간에 걸친 러시가 끝나고 난장판이 된 카페. 거기다 커피 머신까지 말썽이라 급하게 사람을 불러 고치느라 퇴근이 늦어졌다.


내일은 Australia Day라는데 무슨 날인지 모르겠지만 공휴일이다. 공휴일에 일 하면 시급이 두 배라 우리는 일 하고 싶은데 가게 입장에선 오히려 손해라 문들 닫는다. 사실 나는 쉬는 게 더 좋긴 한데 통장에 찍히는 돈 보면 일하는 것도 괜찮다는 내 말에 코워커도 격하게 동의했다. 어딜 가든 평소보다 15%인가 가격을 올려 받기 때문에 내일 특별히 나갈 계획은 없다. 모레는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 벌써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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