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충분히 생각하고 말을 내뱉는 것은 아니다. 특히 술을 마실 때면 술기운에 쓸데없는 얘기가 길어지고 다음날이 되면 나의 쓸데없는 말들을 후회하는 일이 많다. 그나마 맨 정신에는 제어가 되는 수다 본능이 술이 들어가면 전혀 제어가 되지 않아 할 말 안 할 말을 아주 길게 늘어놓는 주사로 인해 '누군가와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를 피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한 적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다 보면 당연히 상대에게 실수를 하기도 하고 굳이 알리고 싶지 않은 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미 내뱉어진 말을 주어 담을 길이 없어 기억나지 않는 척 상대 또한 나의 술 취한 말들을 잊어주길 속으로 기도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고는 인간다움을 버리지 못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는 불편한 것들이 꽤 많은 사람이다. 까다로운 부분들도 있고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다 보니 나에게 당연한 것을 상대가 모르면 그것이 잘 이해되지 않고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아. 저걸 저렇게 생각할 수 있구나'라고 차분하게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다가도 어느 날에는 '왜 저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들키면 꽤 곤란한 생각이나 감정을 가지는 일도 종종 있다.
시골에서 생활하며 엄마의 친구분들을 뵐 기회가 자주 있다.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하는 이야기들은 꽤 흥미진진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너무나 거침이 없어 그 자리에 있는 내가 다 부끄러워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너무 거침없는 말들을 공공장소에서 당당히 소리 높여 외치는 어르신들의 노골적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라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아직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고 적절히 필터링을 거친 말들이 편하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너무 노골적인 말들은 불편하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과 친구인 나의 수준에 대한 다소 심각한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어릴 때의 나에게는 괜찮았던 이야기, 그 당시의 나 역시 뇌를 거치지 않고 수없이 많은 쓸데없는 말들을 쏟아냈었다. 그리고 그것이 쿨하다고 느끼던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이제 그 시간은 지났고 나는 조금 더 내가 하는 말에 조심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 저급한 평가 속의 주인공이 나라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혹시라도 내가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어땠을까? 타인 앞에서는 절대로 못할 성희롱을 마치 그 사람에 대한 칭찬이라도 되는 듯이 말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 '그건 칭찬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건 그저 성희롱일 뿐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로 인해 이어질 쓸데없는 말다툼이 너무나 뻔히 예상되어 못 들은 척한다. 피하기로 하자. 나의 지적이 상대의 변화가 아닌 기분 상함으로 이어질 뿐이니 그냥 못 들은 걸로 한다.
나는 노골적인 이야기가 불편하고 나의 장래 희망 중 하나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말을 가려서 할 수 있는 점잖은 어르신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친구라도 조금은 조심스럽게 말을 해주었으면 한다. 당신은 그 말들이 자신을 개방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할 것이라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듯 하지만 당신이 방금 내뱉은 말은 그저 저급한 성희롱일 뿐이다. 아무리 포장해도 이야기의 본질은 변하지 않고 내가 들어서 싫은 말이 다른 누군가에게 칭찬이나 듣기 좋은 말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조금만 조심한다면 굳이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남에게도 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굳이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조금은 답답하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는 순간이 온다고 해도. 나의 모든 생각이 소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몰상식하다고 욕하는 어떤 사람의 모습이 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무리 친구라도 아무 말이나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조금 더 점잖은 어른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하는 말은 남들이 보는 나의 모습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