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잘하면 되나요?

그대도 잘해주세요

by 플로터

우연히 연예인 덕질에 관한 웹툰을 읽었다. 원래는 완결 웹툰이 아니면 읽지 않지만 심심해서 클릭한 이 웹툰에 매료되어 매주 새로운 에피소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70이 넘어 어떤 아이돌에게 빠진 어르신 팬의 이야기. 나이 든 팬이라는 망설임과 그럼에도 엄청난 찐 애정으로 곧 성덕이 될 것 같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며 느껴지는 바가 꽤 남달랐다.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덕질을 했던 사람으로 덕질은 꽤 익숙한 삶의 일부이다. 휴덕은 있어도 탈덕은 없다는 말처럼 나는 꽤 끊임없이 무언가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다. 어느 때는 연예인, 어느 때는 드라마나 뮤지컬처럼 종류에 관계없이 꽤 깊이 무언가에 빠지곤 한다. 습관적인 덕질에 가깝다 보니 사실 실제 덕후라고 말하기에 내 열정은 다소 모자라고 그렇다고 일반 기준으로 따지기엔 다소 집착이 강한 애매한 중간 단계랄까.


아주 오랜만에 새로 시작한 덕질의 대상은 아이돌이다. 아이돌 덕질은 처음이라고 신선함과 문화 충격을 느끼고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꽤 다수의 아이돌에 빠졌던 전력이 있었고 심지어 현재의 덕질에 꽤 유용한 일본어 실력은 과거 깊이 심취했던 일본 아이돌 덕에 습득한 스킬이었다.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잊을 수 있는 걸까...


분명히 너무나 좋아했고 절대로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마음이 있었다는 기억조차 없어져버리다니. 기억해보니 나는 좋아하던 아이돌이 다니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한 적도 있고 콘서트에 혼자 갈 수 없어 친구, 친지에게 부탁을 해서 동일 공연을 10회 이상 갔었던 꽤 열심히 덕질을 했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아이돌이 나의 첫 아이돌 덕질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좀 어이가 없는 중이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장점뿐이었다. 인생의 활력이랄까. 덕질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있어야 하므로 의도치 않아도 좀 더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되는 긍정적 측면. 그래서인지 이제껏 연예인 덕질을 부정적으로 보는 어른들, 주로 학부모님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 덕질은 오랜만이라서인지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인지 이전과는 조금 다른 경험과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하나, 최근의 아이돌 덕질은 마음만으로 되지 않는다. 물론, 이전에도 콘서트에 가거나 아이돌 관련 굿즈들을 사곤 했으니 전혀 물질적 부담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아이돌 팬은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내 아이돌을 위한 투표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상당한 문화 충격을 받았다. 내 시간을 쓰는 것만으로 부족하다니!! 매년 팬클럽을 위한 굿즈를 판매하거나 (사용 및 순장용으로 2개를 사는 것이 근래 팬 문화인 듯싶지만 난 쓰다가 손때 묻은걸 순장할 예정이라 1개만 구매했다), 아이돌님의 생일, 데뷔일, 콘서트 등에 맞추어 다양한 기부 및 행사를 진행하는 바람에 코 묻은 액수의 돈이지만 쏠한 지출이 있다.


두 번째는 과거에는 또래였던 팬들이 이제는 한참 어린 친구들이 되었고 나의 아이돌 오빠님 역시 그 호칭이 무색하게 나보다 어린 분이라는 부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 웹툰처럼 때로는 '아, 이건 좀 주책인가?'라는 현타가 오는 순간들이 꽤 자주 있다. '이렇게 춤을 따라춰도 되나 (이미지 속 몸짓만 닮고 현실은 이미 그 춤이 아닐 테지만), 이렇게 굿즈를 입고 다녀도 되나'라는 생각들. 어린 팬이었을 땐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나이 든 팬이 되니 좀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렇게 망설임과 용기를 가지고 하는 덕질이라 그런지 바라는 것도 많아졌다. 나의 아이돌님이 좀 더 오랫동안 나의 애정의 대상으로 남아주기를 기도한다. 맹목적인 애정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그 모습으로 멋지게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일방적으로 내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 팬심일 텐데 지금의 나는 내가 쏟은 노력과 지출을 내 아이돌님도 좀 책임져줬으면 하 욕심을 낸다. 어느 날 갑자기 결혼한다는 중대 발표가 없기를, 갑자기 엄청난 사건에 휘말리지 말아 주기를. 내가 가진 이 애정을 내 스스로 잃어버리기 전까지 내 아이돌님은 지금처럼 계속 나의 애정의 대상이 되어 주기를.


어릴 때는 아무리 일방적이어도 좋았던 마음이 이제는 자꾸 무언가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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