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살까지 애기인가요?

애기: 올바른 단어는 아기, 의미는 어린 젖먹이 아이

by 플로터

요즘 학부모들과 관련한 꽤 시끄러운 기사들을 자주 접했다. 심지어 왕의 DNA까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정말 초등 교사는 할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이 듣기는 했지만 몇몇 극성 부모의 행동인 줄 알았는데 정말로 어쩌다 한 명 있는 극성 학부모의 문제였다면 교사가 되어 매우 행복했을 그 젊은 선생님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났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못된 교사도 물론 있지만 못된 부모들은 더욱 많아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초등학생들을 가르쳐보면 말하는 것이나 행동이 정말로 놀랍기도 하니까. 나야 잠깐 가르치고 말 학생들이라 그저 놀라움으로 그치지만 그런 아이들을 매일 그것도 1년 내내 가르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꽤 머리가 어질 해지는 느낌이다.


요즘은 대부분이 외동이고 그래서인지 부모의 관심과 애정이 한 아이를 향해 지나치게 쏠리고 있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아닐까. 조금만 아프다거나 힘들다고 했을 때 그것이 외부 요인으로 인한 것이면 득달같이 전투 모드에 돌입하는 부모들이 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전투태세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부모들이 자녀의 잘못에 너무나 너그러운 듯하다.


가게에서 상품에 발길질을 하는 아이에게 한마디를 했다가 낭패를 본 가게 주인의 기사를 읽고 괌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고모는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있어?"라고 물었다. 같은 자영업자로서 꽤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무인 매장에서 물건을 훔친 자녀의 피해 보상을 하지 않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부모의 이야기는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수준이지 않는가.


그 유명한 오은영 박사의 조언마저도 듣고 싶은 방식으로 해석해서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면 안 돼'니 아이의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아이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오케이 하는 이상한 방임 주의가 생겼다는 기사를 읽었다. 아이가 기죽으면 안 된다는 말이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되다 보니 아이의 행동의 옳고 그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자녀가 하는 행동은 그것이 무엇이건 다 괜찮고 용납된다고 생각하는 고슴도치 부모들이 너무 많아진 것 같다. 타인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보이는 잘못이 왜 부모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역시 휴가철이라 그런지 만석이 된 비행기를 타고 괌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매우 좁은 비행기였고 그로 인해 식사를 서빙하는 승무원들과 자꾸 몸이 스쳐서 가뜩이나 불편한 자리가 더욱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잘 먹히지도 않는 터치 스크린과 누가 이기는지 힘겨루기도 하듯 힘차게 모니터를 쳐대는 뒷 좌석 사람으로 인해 머리에 구멍이 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지경이었다.


"애기가 화장실이 급하대요." 잘못 들었을 것이다. 이 좁은 비행기에서 이제 막 식사가 나왔는데 내가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잠을 자고 있던 아이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서 굳이 왜 화장실이 급해야 하는가. 나는 마음먹고 싸우기로 작정하지 않는 이상 딱히 타인과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꼭 지금 가셔야 할까요?"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그 좁은 비행기 복도에서 아이가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밥을 들고 서 있고 싶지 않았다.


"애기가 급하대요." 애기라는 단어를 들었기에 단호하게 거절하기도 애매했다. '그래! 애기들은 화장실 참기 힘들지.'라는 생각으로 억지로 자리를 비켜주었더니 혼자 의젓하고 차분하게 화장실을 가는 너무 성장한 애기가 나왔다. '애기?' 애기일 정도면 비행기에서 화장실은 엄마가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닌가? 급하면 어른도 좀 다급해 보이지 않나? 그 어떤 상황에도 해당하지 않는 '엄마 눈에 애기'가 화장실을 갔다. 그리고 그 '애기'가 화장실에 다녀올 동안 밥을 들고 서있을 자신이 없던 소심하지만 성격이 너그럽지도 못한 나는 서너 숟가락 뜬 밥을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치워달라고 했다.


그 좁은 비행기 바로 옆 좌석에서 내가 자신의 자녀로 인해 밥을 먹지 못했단 사실을 모를 리가 없는 애 엄마는 애가 돌아와 아무 일 없단 듯 자리에 앉아 천연덕스레 핸드폰을 하는 내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었다. 심지어 엄마와 아이가 모두 밥에 손도 안 대고 핸드폰만 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간만에 맛있는 밥이었는데!


나는 부모가 아니라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가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나 부모가 조금만 더 예의를 지켰다면 비행 내내 속으로 그 엄마와 아이를 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화장실에 가겠다는 아이에게 그 엄마가 '조금만 참을 수는 없겠니?'라고 한마디라도 물어봤다면 그렇게까지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눈에는 아기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충분히 10분 정도 화장실을 참을 수 있는 아이였고 굳이 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애기'가 도대체 몇 살까지 통용되는 단어인지 모르겠다. 다만, 내 기준의 애기라 함은 최소한 그렇게 큰 아이를 지칭하는 단어는 아니다. 너무 쉽게 '맘충'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견에 꽤 동의하는 편이지만 가끔 이런 '무작정 내 아이 최우선'모드의 부모를 만나니 나 역시 '맘충'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사실 엄마들이 조금만 더 예의를 지켜준다면 사람들이 너도 나도 아이 키우느라 고생하는 엄마들을 맘충이라 매도하진 않을지도 모른다.


제발 자신의 아이가 모든 사람들의 눈에도 너무나 예쁘고 무조건적 배려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주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아이는 아니지만 배려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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