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무슨 일을 하던 응원하겠습니다
갑자기요?
가끔 선생님들이 아프시거나 사정이 생기면 대타로 가는 학원이 있다. 남양주에 살 때는 한 30분 거리이기도 했고 시간당이 아니라 일당으로 주는 아르바이트비는 꽤 꿀이라 내가 좋아하는 알바 중 하나였다. 작년에는 거의 괌에 있다 보니 연락이 와도 계속 거절했는데 이번에 4월 한 달 대타로 수업을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온라인 수업이 자꾸 성사가 안 되는 바람에 괌 들어가기 전까지 꼼짝없이 손님 없는 카페를 지키며 수입 제로의 생활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던 차에 딱 적당한 길이의 알바라 신이 나서 덥석 받아들였다. 장기 수업이니 일당을 좀 적게 받음 안되냔 말에 강원도에서 출퇴근은 못하니 숙소도 얻어야 해서 일당 그대로 받아야 한다니 매우 쿨하게 오케이 하신 원장님.
이래서 사람이 머리가 좋아야 몸이 고생을 안 한다는 말이 있나 보다. 단기 숙소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거란 내 생각은 매우 보기 좋게 어그러져서 결국 하루에 5시간 운전을 하며 출퇴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출근을 위해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부터 집에 되돌아오는 시간까지를 나의 업무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계산하다 보니 시간당 최저 시급의 알바였고 심지어 출퇴근 시간을 제외한 순수 업무 시간만 따져도 이 알바는 꿀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꿀은커녕 개고생이 시작되었다.
나는 목소리도 크고 꽤 엄격한 말투를 가지고 있어 사실 이제껏 나의 대타 알바는 꽤 편한 편이었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처음 보는 선생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거기에 내 목소리까지 더해지면 적어도 며칠 정도는 아이들이 꽤 긴장해서 내 마음에 드는 면학 분위기가 조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너무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아서 과거 기억이 미화되었던 것인지, 아니면 불과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아이들이 변해버린 것인지 처음 본 나를 상대로 절대 지지 않는 말대꾸와 편안함을 선보이는 아이들 덕에 이번 알바는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대형 학원으로 바뀐 덕분에 커리큘럼이 다 갖춰진 상태여서 난 그냥 가르치기만 하면 돼서 편했지만 시스템이 꽤 복잡해서 딱 하루 오리엔테이션을 들은 이후 수업을 시작한 나는 수업 자료도 찾지 못해서 버벅거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당황해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데 어떤 아이의 "와 벌써 10분이나 지났어"라는 타박성 발언을 들으니 정말로 멘탈이 거의 박살 나기 직전이었다. 겨우 겨우 첫날을 마치고 그렇게 첫 주는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이제 시스템에 적응이 되니 슬슬 이 멍청한 선택과 나의 멍청한 머리가 저지른 실수를 깨닫기 시작했다. 11시경 집을 나서 2시간 넘게 운전을 하고 그 와중에 고속도로 이용료를 지불하고 매일 기름을 넣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면 거의 11시. 거의 12시간에 육박하는 업무 시간에 톨비와 기름비를 내면 나는 도대체 돈을 벌러 가는 것인지 쓰러 가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래, 손님 없는 카페를 지키는 것보다는 그래도 얼마라도 버는 것이 중요하지!'라며 스스로를 다독이며 겨우 길고 길었던 알바를 마쳤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안 할 거라고 속으로 굳은 다짐을 하며 신나서 학원을 나서는데 원장 선생님이 날 잡더니 고맙다며 들기도 무거운 과일 바구니를 주셨다. 출근하는 내내 돈 계산하며 짜증이 잔뜩 난 상태였는데 어차피 돈 받고 한 알바에 고맙다고 선물까지 주시니 갑자기 마음이 몽글해졌다. 이제껏 아무리 다녀도 이런 선물은 안 주시던데 역시 장거리 출퇴근의 성과인가. 순간 '기왕이면 돈으로 주시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안 줘도 되는데 챙겨주시는 성의에 매우 고마웠다.
'그래! 앞으로 또 대타를 부탁하시면 열심히 해야겠다!'라며 방금까지의 내 굳은 다짐을 철회하며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갑자기 '앞으로 무슨 일을 하건 응원한다'라고 하신다. '아.. 나 이제 안 부르시는 건가?' 선생님이 펑크만 나면 어차피 젤 먼저 찾으시면서 갑자기 너무 거창한 응원을 받으려니 조금 어색했다. 그리고 다른 선생님들도 마치 약속한 듯 똑같은 인사를 하는 통에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이런 정형화된 인사치레를 잘 못한다. 사회성이 다소 떨어지기도 하고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생활이 아니다 보니 특정 상황에서 모두가 알아야 하는 일반 상식 수준의 인사나 예절이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이 알바는 늘 하던 알바고 나는 그냥 다음에 또 부르면 언제가 되었건 다시 만날 사람인데 굳이 이렇게 거창한 인사말을 들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 어색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무슨 일을 하건 응원한다"라는 말은 무슨 일이건 하라는 전제가 깔린 말이어서 갑자기 좀 더 현타가 왔는지도 모른다. 아.. 뭔가 응원받을 일을 해야 하나? 별로 응원받을 만한 계획 없는데...
매우 감사하고 고마운 인사지만 뜬금없이 받아버린 응원을 곱씹으며 퇴근하다 보니 나의 부족한 사회성에 대한 반성과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부담감이 생겨버렸다. 이제 좀 쉬다가 괌 들어가서 또 알바할껀데... 너무 계획이 없는 인생인 건가? 아... 정말... 부담스러운 인사를 받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