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인정하자.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던 그 사람. 매우 심심하던 와중에 나의 쓸데없이 강한 호기심을 자극한 그 사람은 불필요할 정도로 자주 내 눈에 띄었다. 글을 자주 올리기도 하고 아무래도 나와 비슷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소개글을 읽었기 때문인지 계속 관심이 갔다. 영어 과외 선생인데 날마다 물건을 파는 포스팅을 올리고 때로는 영어 강사 파트직에 지원하기 위해 공부 중이라는 글을 올리는 사람. 하지만 쓸데없는 것에 대한 기억력만큼은 완벽에 가까운 나는 이미 이전 포스팅의 '원어민급 영어 구사'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앞뒤 다른 그 사람의 글에 자꾸 의심을 품고 있었다.
아주 한가하던 어느 날, 기어이 그 사람이 있는 매장에 방문했다. 나의 소비 범위를 넘어서는 가격이었으나 한가한 가게에 들어갔다 그냥 나올 자신이 없어 손 떨리는 과소비를 하며 그 의문의 인물과 조우했다. 그리고 그 인물과 더불어 그의 부친까지 만나게 되어 나의 호기심은 조금은 안타까운 감정으로 변했다.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내가 읽은 포스팅 내용 속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가 투자 실패로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는 50세 중년이 아니었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팩트 체크를 하고 난 이후 이제 관심을 끄고 싶은데 그의 포스팅이 계속해서 눈에 띈다. 그리고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취합한 자료를 바탕으로 약간의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읽기에는 정신없어 보이는 그 사람의 글이 정말 소설이 된 적이 있었다는 검색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영어 강사 지원에 성공한 듯 인터넷 영어 강의 사이트의 강사로 등록되었다는 포스팅이 있었다.
내가 문장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이었나? 나에게는 매우 정신 산만하게 보였던 글들이 소설이 된다고? 그런 중구난방 한 글을 쓰는 사람이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다고? 내가 가장 거슬렸던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글,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타인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나? 하는 다분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인한 의심.
역시 세상이 달라졌다. 자비 출판업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인쇄소 같은 개념으로 누구든 자신의 글을 자유롭게 올리고 그것을 실제 책으로 출판하고 싶다면 출판 권수에 따라 돈을 내면 되는 시스템인 듯하다. 아무리 다시 읽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글이었는데 실제 출간한 소설이 있다는 결과에 '하도 책을 안 읽어서 문장 이해력이 떨어지게 된 건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아무런 검열 없는 자비 출판 소설임을 알게 되니 다소 안도감이 들었다.
약간의 의문이 해소되었고 심지어 더 커져버린 의문도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하려고 한다. '그냥 그런 사람도 있다'라고 인정하고 이제 스토커 행위를 멈추어야겠다. 꽤 기분 나쁜 행위임을 알면서도 너무 궁금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서 나를 모르는 사람의 뒷조사를 하고 말았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 그런 뒷조사를 벌인다면 분명히 기분이 나쁠 것이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은 아니다. 내 이해를 벗어난다고 그것이 거짓이거나 문제일 필요도 없다. 나는 아직도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다소 예민해지는 면이 있다. '부족한 사회성으로 인해 내가 이 상황을 못 받아들이나? 모난 성격 때문에 이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나?' 하는 자기비판적 사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나 혼자만의 결론을 내리곤 한다. 그것의 진실 여부는 모르지만 일단 뭐라도 결론을 내려야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런 나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신기한 사람. 앞뒤 없는 글들을 올려대는 통에 나의 호기심에 불을 지핀 사람에 대한 탐구를 이제 그만할까 한다. 모든 사람을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깨달음을 결말로 이 호기심을 멈춰야겠다. 진실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짓이라 한들 그 사람의 거짓을 비난할 자격이 완벽한 타인인 나에겐 없다. 진실을 말하건 거짓을 말하건 그것은 말하는 사람이 선택할 사항이지 내가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호기심 탐구는 접고 그냥 열린 마음으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겠다. '그동안 실례가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