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무휴였다!

놀아야겠다!

by 플로터

추석이다. 긴 연휴가 시작되어 공항은 벌써부터 북새통이라는 기사를 보았지만 나에게는 오늘 또한 별 다를 바 없는 하루의 반복이다. 애초에 직장인이 아니다 보니 연휴라는 개념 자체가 나에게 크게 의미가 없기도 하고 나에게 긴 연휴란 절대로 여행 계획을 세워서는 안 되는 바가지 성수기라는 인상이 더 강하다.


딱히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나게 근면성실한 것도 아닌데 나의 카페는 연중무휴로 운영되고 있다. 나는 중간중간 여기저기 간다는 핑계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빈번하지만 그래도 나의 가게만큼은 명절에도 온전히 문을 닫은 적은 없는 매우 성실한 영업장이다.


영업 중이라고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워낙 손님이 띄엄띄엄 오는 가게다 보니 대부분 가만히 앉아서 인터넷을 하거나 음악을 듣고 잠시 멍 때리다 보면 문 닫을 시간이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래도 역시나 누군가 올지도 모르는 영업장에서 보내는 한가한 시간은 아무리 편안해도 휴식이라거나 뒹굴거리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올해 초 이런저런 이유로 내 집이 사라졌다. 일주일에 이틀 정도밖에 못 가던 집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사라진 것이다. 혼자 있다고 뭔가 대단한 것을 했던 것은 아니다. 대부분은 알람도 꺼두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 뭔가 해 먹고 티브이 보며 졸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음주를 즐기다 잠드는 그냥 게으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것뿐이다.


모친과 함께 지내는 것은 크게 불편한 일은 아니다. 같은 집이긴 하지만 공간적으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고 워낙에 바쁜 모친이라 함께하는 시간도 많지 않아 우리는 적당히 사이좋은 모녀 사이를 유지하며 평화로운 동거 생활 중이다. 다만 한 가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문제점은 '심심하니 가게를 연다'는 모친의 연중무휴 영업 방침이 '오늘은 하루 종일 뒹굴거리고 싶다'는 나의 게으름을 방해한다는 것뿐.


'어제 너무 피곤했으니까 오늘은 쉬자'라고 했던 어머니는 지인분의 전화 한 통에 즉각 영업을 개시하고 그러면 모처럼 휴식이 될 뻔했던 나의 하루는 다시 영업 모드로 전환된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누군가 불러주기를 기다리는 사람 좋아하는 어머니는 일단 누군가 온다고만 하면 신이 나서 문을 열어 영업을 벌려놓고 그러면 결국 문을 닫을 때까지 영업을 이어가는 것은 내 차지가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서 뒹굴 거리며 하루를 보낸 것이 언제였던가! 나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 거지? 하루도 쉬지 않고 영업을 한다는 것은 워라밸의 중점이 워보다는 라에 찍혀있는 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좌시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문제다. 이렇게 근면성실하게 살아가서는 안된다!


물론 거짓말이다, 근면성실은. 근면한 것은 모친이지 내가 아니고 성실하다고 하기엔 손님이 너무 없는 가게라 성실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쉬는 날도 없이 근면성실한 삶을 살고 있다는 자각은 갑자기 목에 족쇄가 둘러진 듯 숨 쉬는 것이 갑갑해진다. 나는 엄청나게 자유로운 영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실한 영혼도 아니어서 나의 성실함이 부담스럽다.


1년 동안 학원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도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말을 안 듣는 학생들이 아니라 1년 내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잠드는 내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뭘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하는 거지?'라며 우울해하곤 했었다. 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지만 일하는 부분만큼은 평범하고 규칙적인 생활이 반복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자영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가졌던 가장 큰 두려움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유 없는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엉겁결에 시작한 나의 카페는 사실 크게 자유를 구속하지 않았고 유의미한 영업 이익을 올리지도 못했기에 직업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포지션으로 자리 잡다 보니 일이라는 개념보다는 뭔가 심심하지 말라고 하는 소일거리 같은 느낌이 좀 더 강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 긴 연휴에도 문을 열고 손님 없는 가게를 지키고 앉아있다 보니 나의 취미 같은 소일거리가 무거운 책임감처럼 다가온다.


놀아야겠다! 나의 즐거운 소일거리가 무거운 책임감으로 변질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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